[프라임경제] 박희태 국회의장의 투철한 국가관과 ‘역사인식’이 화제다. 박 의장은 국회에서 직접 관할하는 입법고등고시(국회에서 5급 사무관으로 근무할 직원을 뽑는 시험, 통상적으로 행정고시 준비생들이 함께 준비해 왔다.)에 국사를 필수과목으로 넣자는 국사사랑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 같은 박 의장의 행보가 고위 공직자로서의 품격과 도덕성면에서는 존경을 받을 만하다는 평가가 온라인상에서는 많다. 하지만 이러한 면과는 달리 법적으로는 문제가 적잖다는 해석이 가능해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에 따르면, 올해 입법고시(3월 예정)부터 1차 시험 과목에 국사가 포함될 전망이다. 박 의장은 18~19일 국회사무처?입법조사처?도서관 및 예산정책처 등 국회 내 각 부서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 같은 구상을 밝혔다. 박 의장은 이 자리에서 입법고시에 국사과목을 포함시킬 것을 지시했다고 한종태 국회 대변인이 20일 밝혔다.
국사가 입법고시 1차 시험에서 사라진 것은 2006년부터다. 당시 각종 고등고시를 관장, 채용 문제를 제어하는 기구인 중앙인사위원회는 헌법과 영어, 행정법 등 다수의 암기 과목 위주의 시험을 개선한다는 취지에서 공직적격성평가(PSAT)로의 1차 시험 전환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1차 필수 과목이던 국사를 폐지했다.
◆중요한 건 알겠는데, 올해 당장 시험에 넣어라?
그런데 근래 역사관에 문제가 있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국가에 봉사하는 공무원을 선발하는 과정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을 거를 최소한의 장치가 없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는 독도 영유권 분쟁 문제에 대한 국민 전반의 소양 부족, 한국전 도발 책임 소재에 대한 인선 혼선 등 여러 실질적 사례에서 심각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고민한 끝에 박 의장은 국사 시험과목 도입과 관련, 초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박 의장은 이 도입 지시 자리에서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는 올바른 국가공무원이 될 수 없다”면서 국가공무원, 특히 고위직 공무원일수록 우리 역사를 바로 알고 투철한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일 늦게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다수의 네티즌들은 박 의장의 견해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하는 의견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같이 당장 도입을 추진할 경우 문제 소지가 없지 않다.
실제로, 1999년도 공무원임용시험시행계획공고가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공권력의 행사인지를 다툰 전례가 있다. 실제로 헌재 2000.1.17,99헌마123 사건이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은 바 있다. 이 사건은 고시 중 하나인 지방고등고시(국가공무원이 아닌 지방공무원 중 사무관으로 신규채용 될 자를 뽑는 시험. 이후 행시로 통합됐음)에 응시해 1차 합격 후 2차 시험을 기다리던 사람이 갑자기 당국의 변덕으로 응시 자격을 눈뜨고 뺏김으로써 문제가 되었던 사안이다.
◆그간 고수한 시험일정 함부로 움직이면 안돼
즉, 예년에 특정 기간(예를 들어 5월)에 시행되는 것을 관례로 해 오던 2차 시험을 갑자기 변경해 시험을 몇 달 뒤에 실시하기로 당국이 결정한 사안이다. 이 고시생의 경우, 나이가 이미 많아 갑자기 2차 시험 진행 기간이 상당 기간 늦춰짐으로써 시험응시가능연령을 불과 5일 넘기게 됐다(당시에는 고시에 연령 제한이 있었으므로). 청구인은 이후 시행될 지방고등고시 제2차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되어 헌법상 보장된 청구인의 공무담임권이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고, 헌법재판소는 문제가 있다(위헌)고 판시했다.
하다 못해 시험 기간을 몇 달 후로 변경, 이로 인해 불과 며칠간의 차이로 시험연령을 넘기게 되는 사람이 1명이라도 있어서는 위헌적 행정행위가 된다는 게 헌법재판소의 ‘신뢰보호 존중 판단’이었다.
행정청은 행정을 함에 있어 상당한 재량을 갖기는 하지만, 국민이 행정청에 대해 갖는 각종 신뢰(법이든 관행 등 여러 공신력 있는 기준에 의해 보호받는 게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믿음)에 대해 보호할 의무 또한 진다. 그런데 하물며 불과 시험 두어달 전에 시험의 과목이 하나 추가된다는 것은, 아무리 고시에 도전하는 인원이 고급 두뇌라고 ‘단정’한다고 해도 “그저 무턱대고 국사책을 암기해 한 과목 더 응시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게 된다. 위의 지방고시 응시자격 논란 사건보다도 더 위헌 여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법조인 출신 의장이 헌법 경시해서야…’
무엇보다 이 같은 카드를 꺼내든 박 의장은 서울대를 졸업한 이후 검사로서 요직을 두루 거치고 법무부장관까지 지낸 법률 전문가라는 점에서, 이런 판단을 했다는 점이 더더욱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법률을 만드는 과정에 늘 헌법 준수 여부(즉 합헌 여부)를 감안해 발의, 처리되도록 주의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의무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박 의장은 국회의장으로서만이 아니라 여러 번 국회의원과 정당 대변인 등을 역임한 원로 정치인으로서 주의 의무가 더 크다는 점에서 이번 국사 논란은 안타까운 감이 더욱 크다 하겠다.
이에 따라 박 의장의 입법고시 국사 추가 문제는 의도는 좋았으나, 그 초헌법적 논리 비약으로 인해 당장은 해프닝으로 끝날 공산이 크며, 또 해프닝으로 일단 끝나는 게 옳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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