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신한금융그룹 라응찬 회장의 2010 M&A 대전 관전법이 드디어 윤곽을 드러냈다. 라 회장은 은둔의 행보를 간만에 깨고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행보와 그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은 여러 모로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다.
라 회장은 국내 최장기 근무 CEO다. 그런 그가 이끄는 신한금융은 최근 일각에서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받아 왔다. 더욱이 그간 우리금융 민영화, 외환은행 매각 등 여러 논의 과정이 진행되면서, 한동안 국내 금융시장 관련 논의에서 주연급이었던 신한금융이 M&A 대전의 스포트라이트가 닿지 않는 곳으로 밀려나 있는 듯한 느낌을 줘 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라 회장은 이번 행보로 이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건재함을 과시하는 것은 물론 신한금융그룹 전반의 대응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 라 회장 曰 "KB금융은 무섭고 큰 적" 속내는?
라 회장은 17일 신한미소금융재단 서울망우지부 현판식에 모습을 드러냈다. 금융그룹(지주) 회장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인 동시에 그간 은둔을 즐겨온 라 회장답지 않다는 점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라 회장은 이 자리에서 "메가뱅크 논의는 시장 규모를 봐라"라며 사실상 부정적 입장을 드러내는가 하면, 신한금융은 우리금융 M&A에 나서지 않을 방침임을 나타내고 전반적으로 M&A 문제에 신중함을 견지할 것임을 의미하는 발언들을 내놨다. "신한이 인수에 나서기엔 점유율 등에서 너무 커져서 문제"라는 인식도 드러냈다. 다만 라 회장은 다른 금융기관들의 인후합병전에 대해서는 "말릴 수 없지 않겠느냐"며 사실상 상황이 되어 가는 대로 일단 관망할 가능성을 보였다.
아울러 라 회장은 사회공헌 활동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라 회장은 KB금융 어윤대 신임 회장이 연일 신한금융을 벤치마킹 모델로 높이 평가하는 데 대한 소감을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KB금융은 원래 우리보다 규모가 크지 않느냐"면서 "새 회장을 맞이한 만큼 무서운 적이 등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상당히 의식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라 회장의 이같은 발언은 한때 조흥은행, LG카드 인수 등 굵직한 인수합병을 지휘한 백전노장 입장에서 현재 M&A가 시너지 효과를 내는 면이나 자금조달 등 여러 내부적 문제에서도 구미가 크게 당기지 않거나 진행에 난점이 많은 상황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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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둔 행보 깬 것은 건재 과시하고 금융그룹 방향 지정 위한 것? 망우리 우림시장 방문에 나선 신한금융 라응찬 회장> | ||
사회공헌 강화, M&A 일단 관망, 주요 사업에 대한 직할 체제 재정비 등으로 요약되는 구상은 KB금융이나 하나금융 등 외부의 경쟁자를 단속하고, 내부적인 동요를 잠재우면서 3대 금융지주의 할거(우리금융은 민영화 추진 대상이므로 논외로 한다) 구상을 담은 것으로 풀이할 수 있어서 주목된다.
◆ 라응찬版 '천하삼분지계'
서기 207년 등장한 삼국시대의 절묘한 키워드를 천하삼분지계로 일컫는다. 제갈량은 "지금 조조는 100만이나 되는 무리로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고 있으니 그와 다투는 일은 불가능하다. 손권 역시 삼대의 통치로 안정돼 있는데다 능력 있는 이들을 등용하고 있어 연합세력이 될 뿐이지 공략할 수는 없다. …형주는 지리적으로도 반드시 차지해야 할 곳으로 지금 이곳을 차지한 자는 지킬 능력이 없으니 여기를 취해야 한다"며 3대 세력의 분할 국면으로 장기전을 도모할 필요를 제시했다.
이는 서남쪽에서 웅거하면서 관망하다 "천하의 형세 변화가 있을 때 형주와 익주 양면에서 북벌을 감행한다면 통일의 패업은 달성될 것"이라는 발상을 담은 것이다.
라 회장의 이번 구상은, KB는 이미 신한보다 규모가 커서 경쟁하기에 쉽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다만 하나금융이 5조원 동원 가능설을 컨퍼런스콜에서 내놓는 등 적극성을 드러내고 있지만, 인수합병전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몸집으로 인한 열세를 만회하려는 것이어서 실제로 하나금융의 의중대로 흘러가도 과거 우리, KB, 신한의 3대 금융지주 경쟁 구도가 단순히 KB, 신한, 하나로 변한다는 면에는 별반 변화가 없다.
라 회장의 고민은 여기서 시작된다.
향후 발전을 위한 성장을 추진해야 한다는 대전제는 성립한다 해도, 현재로서는 M&A를 섣불리할 수 없다. 시너지 효과나 추진 능력 등에서 마땅찮기 때문이다.
마땅한 매물이 나서지 않거나, 매물이 너무 크거나(이는 대우인터의 교보생명 지분 문제 등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혹은 자금이 여의치 않다거나(실제로 조흥은행 인수 빚을 모두 갚았다고 해도, 앞으로 LG카드 인수 과정의 부실을 털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나마 신한금융은 KB나 우리, 하나금융 등이 각종 부실의 덫에 걸리는 과정을 무난히 넘겨 왔고, 또 포트폴리오 배분도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무리한 M&A를 진행해 체력에 무리를 주거나 혹은 "신한이 너무 커졌다"는 지탄을 받을 가능성을 열 필요는 없다.
이에 따라 현재 포트폴리오에 따라 영업을 당분간 진행하고, 사회공헌을 강화해 대국민 신뢰도와 평판을 높이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
◆상생 사업 과정, 회장이 직접 챙기는 이유? '사회공헌 성과 과실 따기+내부균열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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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7일 신한미소금융재단 망우지부 개점식에 라응찬 회장이 몸소 나타난 것은 격이 안 맞는다는 말이 나온다. 한편 라 회장은 이번 행사 외에도 상생 공헌 사업은 직접 챙긴다는 이례적 방침을 내놨다.> | ||
스스로 구상한 삼분지계를 금융시장 전반이 요동치는 사정 속에서 섣불리 누구에게 맡기기 어렵다는 점에서 "상생 사업은 직접 챙기겠다"는 방침이 나온 셈이다.
이같은 대규모 사업을 통해 신한금융은 가장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나는 회사, 신뢰감이 가는 데다 사회공헌도가 높은 '착한 기업'으로 이미지를 제고할 여지를 얻을 수 있다. 현재 주요 대기업의 상생 프로그램이나 사회공헌이 정부의 '팔비틀기'와 이에 마지못해 내놓은 답변 정도에 머물고 있고, 주요 언론이나 국민들이 이를 대부분 인지하고 있음을 보면 신한금융이 이같은 상생 프로그램 마련에 스스로 말하듯 "저희 신한금융은 지난해부터 직원들의 급여를 모아 중소기업 채용을 독려하는 등 활동에 나서왔다"는 상황과는 대조적인 것이다.
아울러 신한금융이 상생 프로그램을 라 회장이 직접 챙기는 상황은, 최장수 CEO로서 여전히 판단력과 경영능력이 출중함을 과시할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의 여러 불안 가능성을 사회 공헌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으로 방지하면서, 금융시장 지형이 신한금융의 재도약에 유리한 사정으로 변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엔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금융권 M&A 전문가로서는 물론, 금융인으로서도 쉽게 비교대상을 찾기 어려운 라 회장인 만큼, 긴 침묵을 깨고 17일 나들이에 나선 점이나 각종 발언은 이같은 그림을 스케치한 뒤에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M&A 대전이 지지부진해지고 금융권 재편 필요성은 높아질 수록, 라 회장의 정중동에 새삼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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