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금융회사 임·직원들의 재산 증식 수단, 그리고 회사입장에서는 애사심 고취 수단이자 위기돌파의 한 방편으로 인기를 끌던 우리사주가 '찬밥'이 되고 있다. 금융위기 등 대규모 구조조정 상황으로 어쩔 수 없는 손실을 직원들이 입는 경우도 있지만, 금융회사들이 자사주를 가진 직원들에 대한 배려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KB국민은행 직원들 자사주는 '주총장 입장도 안 되는 주식'?
13일 KB금융지주의 임시주주총회에서 지주 주력 기업인 국민은행 직원들이 가진 자사주가 푸대접을 받는 상황이 연출됐다.
국민은행은 2005년 직원 사기 진작을 위해 보유 자사주중 200만주를 계약직까지 포함해 전직원에게 무상으로 나눠줬고, 국제금융위기 여파로 은행권 경영이 어렵던 2008년 연말에는 임직원들이 '자사주갖기 운동'을 펼쳤다. 당시 지주 고위층인 황영기 전 회장과 김중회 전 사장 뿐 아니라 일선자회사 즉 은행 등의 직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나선 것. 부장급 이상은 200주, 팀장 및 팀원급의 경우 100주 등 KB금융지주 주식을 장내에서 매수하기로 자율 결의했다.
한편 최근 황 전 회장에 이어 강정원 전 행장까지 금융당국 압력설의 피해자로 거론되면서 최근 국민은행 노조도 자사주 매입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노조는 특별회계를 투입한 자사주 매입 추진과 직원 우리사주 위임 방안 추진 등을 함께 검토한 것을 알려졌다. 관치금융 논란의 와중 특히 정권 실세의 회장 선임 가능성에 대비, 주주로서 노조의 목소리를 높이겠다는 포석을 깔았던 것인데,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과 동문인 어윤대 회장이 회장으로 낙점되면서 이 카드를 노조가 꺼내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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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KB금융은 주주총회장 출입자에 대한 통제를 펴, 자사주를 통한 발언권 행사를 노린 노조를 원천 봉쇄했다.> | ||
하지만 자사주를 사들인 만큼 회사 경영에 일정 부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13일 완전히 무너졌다. 대다수 노조원들은 주주총회장 진입을 봉쇄당했다. 극소수 노조 고위관계자만 주주총회장에 입장, "어 회장 선출 안건 백지화를 요구한다"며 발언권을 행사했지만 사회자(강정원 전 행장)에 의해 무시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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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국민은행 노조는 "주주를 못 들어가게 하는 주총이 어디 있느냐"며 13일 오전 내내 시위를 벌였다.> | ||
◆주가 부양, 부채 감당 등에 수시동원,하지만…
KB금융지주 외에도 금융권에서 자사주 갖기 운동을 통해 각종 목적을 달성하려는 회사는 적지 않다.
현재는 신한지주로 인수, 신한카드로 바뀐 구 LG카드는 경영이 어려워진 가운데 이를 타개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자사주가 도깨비 방망이로 활용됐던 케이스다. 금호생명의 경우도 금호그룹의 형편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자사주 취득이 한 방편으로 사용됐다.
삼성생명 역시 삼성그룹이 삼성자동차 부채 문제로 시달리던 1999년 직원들에게 자사주 배정을 하는 묘안을 짜냈다.
하나금융지주는 주가 부양에 직원들 쌈짓돈을 끌어다 쓰는 경우다. 2003년 봄에는 하나은행 직원들이 주가부양을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선 적이 있고, 금년 봄에도 지주 직원들이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이번 매입 추진은 주가 부양용으로, 하나금융지주가 우리금융지주의 유력한 인수·합병(M&A) 후보로 일각에서 거론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처럼 '전가의 보도' 격으로 자사주 매입을 독려하고 있지만 막상 금융회사들이 자사주를 인수한 직원들을 크게 배려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 혹은 만만한 약자라서?
한화증권의 경우 M&A라는 대의 앞에서 자사주 취득 직원들을 속앓이하게 한 경우다.
M&A를 통해 급성장해 온 한화그룹은 최근 금융권 강화의 화룡점정을 위해 푸르덴셜증권 인수를 추진했는데, 이때 매입 자금 조달 구상 과정에서 우리사주 가치희석 문제가 대두된 바 있다.
한화증권은 지난 2008년 3월 2600만주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실시한 바 있고 한화증권 직원들은 우리사주조합을 통해 한화증권 520만주를 주당 7280원에 청약받았다. 이 우리사주의 경우 1년간 보호예수조항에 묶여 매각이 금지됐다. 한화증권 직원들은 우리사주를 배정받은 지 1년 후인 지난해 3월경부터 매도가 가능할 때까지 회사를 믿고 자금을 묻어둔 셈이다.
하지만 한화증권 주가는 한때 주당 6820원까지 내려선 것도 모자라, 이후 푸르덴셜증권 인수가 확정되면서 인수자금조달 방법으로 유상증자가 유력하게 거론돼 직원들이 속을 끓여야 해야 했다. 증자는 순수 자본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이 같은 부담이 없다는 점에서 가장 유력한 자금조달 방편이지만, 유상증자를 실시할 경우 단기적으로 주식수가 늘어나므로 주당순이익(EPS)가 줄어들게 된다. 기존 주주들의 주식 가치가 희석되는 것.
한화증권은 속앓이 수준으로 끝났지만, LG카드나 금호생명의 자사주는 감당하기 어려운 큰 손실을 입힌 경우다.
2003년 말 LG카드 사태가 발생하고 자사주를 가진 LG카드 직원들은 43.4대 1의 감자를 당해 큰 손실을 입었다. 금호생명 역시 균등감자로 시끄럽다. 금호생명 노조에 따르면 감자안이 금융위로부터 승인을 받을 경우 대주주를 제외한 금호생명 임직원과 설계사, 소액주주들이 최소 약 1200억원, 개인당 평균 5000만원의 손실을 입게 된다. 이 두 회사는 모두 금융회사의 경영 악화 국면에 회사의 전 대주주였던 LG 일가나 금호그룹 측의 책임은 묻지 않은 채 그 책임을 우리사주나 소액주주들이 나눠진다는 불만을 샀다는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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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팠으니 손해도 모두 안아라? 금호생명이 금호그룹 유동성 위기와 매각 과정 등 파란을 겪은 가운데, 우리사주들이 손실에 항의하고 있어 장기간 법정 공방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사진은 균등감자에 반발하는 금호생명 노조 회견> | ||
◆정보비대칭 소액주주+회사에 목맨 약자 '이중으로 불리'
결국 이처럼 금융회사 직원들이 자사주로 우는 경우가 많은 것은 회사 사정이 어려워질 때 모른 척 하기 어려운 약자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LG카드 사태에서도 당시 회사는 증자만 하면 문제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고, 정보가 부족한(상황 판단 능력이 떨어지는) 소액주주들은 증자에 뛰어들었으나 대주주들은 지분율을 낮춰 추가손실을 낮추는 방향으로 거꾸로 움직였다. LG카드 부실을 정리하는 과정 그리고 그 후에, LG 오너 일가가 법적인 책임은 없으나 도덕적으로 문제있다는 시장의 지탄을 받은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사주들은 소액주주의 행동 패턴에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곤란함이 겹쳐 더더욱 우리사주 동원을 할 때 모른 척 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회사가 어려운 경우가 아니더라도 임원, 고위급 직원들이 대다수 우리사주들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도덕적 해이도 심각하다. 하나은행이 주가 부양이라는 미명 하에 자사주 매입 독려를 2003년 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데, 2005년에 하나은행 고위 인사들은 일반 직원들이 얻기 어려운 정보를 이용, 자사주 단기 매매를 해 차익을 거두는 리더십 부재 상황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하나은행 종합검사 과정에서 임직원의 자사주 단기매매 혐의를 확인했는데 관련 임직원은 10명선. 대개 고위급이다. 증권거래법상 회사 내부정보의 접근이 쉬운 상장법인 임직원이나 주요 주주는 자사주를 취득한 뒤 6달 이내에 되팔 수 없도록 돼 있고 미공개 정보이용 여부와 관계없이 6개월내 단기매매로 얻은 이익은 모두 회사에 반환토록 규정돼 있다.
이처럼 돈의 흐름을 다루고 늘상 돈을 만지는 금융회사들이 회사 직원들의 개인 자금을 끌어내 융통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정확한 셈법을 사용하지 않고 '주머니 돈이 쌈짓돈'이라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데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금융회사가 산업그룹에 속하는 경우 자금 활용 창구 정도로 인식하다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버리는 경우 부작용이 더 높았다는 점은 이같은 무책임함과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직원들의 약한 입지를 악용해 쉽고 조용히 자금 조달을 떠맡기는 수단 정도로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 않고, 정보 비대칭에 대한 해결에 적극적이지도 않고 노조 등을 통한 목소리 내기도 사실상 성가셔 하고 있음이 이번 KB금융 주주총회를 계기로 부각됐다고 하겠다. 이에 따라 자사주 취득에 대한 활용이 늘 수록 이에 수반되는 회사의 의무 역시 명확하게 그리는 논의가 시작될 필요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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