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대학살 발표 직전 '보유지분 모두 털어내'
지난 25일 건설사 등 총 65개 기업이 구조조정 대상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실명 발표를 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결국 공정공시 등을 통해 명단이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 우리은행 등 6개 채권은행들의 손에 사실상 기업의 운명까지는 몰라도 당장의 주가 향배 등 절대적 권한이 부여된 셈이다. 이같은 절대적 권한을 인정한 구조조정 제도는 기업 회생과 체질 강화라는 대의를 위한 것. 하지만 벽산건설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구조조정 대상기업 발표 직전에 이 회사의 지분을 전량 매도,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처분해 차익 실현에 혈안이 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8일 공시 내용을 종합하면 우리은행은 보유 중이던 벽산건설 지분 5.3%인 147만주를 전량 매도했다. 8일부터 대량의 매도를 시작, 사실상 며칠새 이어진 주가 하락을 유발했다는 의혹도 있다. 내부 규정에 따른 손절매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사실상 자가 발전에 의한 하락과 이어진 연쇄 매도를 했을 뿐이라는 해석이다. 즉 구조조정 대상 살생부를 손에 쥔 채권단 입장에서 얻은 미공개 정보의 유혹에 빠진 것에 다름아니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합그룹 사건' 등 손에쥔 정보 악용 유혹 못 떨쳐 구설수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금융감독 당국의 제재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구조조정 명부 조율 단계(신용정보위험평가 과정)에서 등급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런 정보를 주식운용팀에 연락을 했다든지, 등급이 확정되고 나서 연락을 줬다면 미공개 정보 악용으로 저촉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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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민영화 추진을 앞두고 부동산PF논란에 미공개 정보 악용 논란 등 갖은 입방아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은행> |
2001년 11월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도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빛은행은 주식 처리와 관련한 부적절한 처신으로 물의를 빚었다.
당시 채권금융기관협의회를 통해 사업분할을 결의했던 고합에 대해 한국통신엠닷컴 (KTF) 우리사주조합이 제동을 걸면서 한빛은행의 주식 처분 방해 행위 역시 문제 삼은 바 있다.
사주조합은 고합이 회사 분리후 채권자 보호를 위한 담보 제공을 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 권리보호 등 가처분 준비를 진행했으며, 이에 앞서서는 한빛은행을 상대로 7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는 고합이 보유했던 한솔PCS 주식 212만주를 당초 약정대로 조합측에 팔지 않았기 때문인데, 고합은 주식 가격이 오르자 당초 약속을 어기고 장외에 팔아 200억여원의 차익을 남겼다(시세차익은 고합측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의 대출금 상환에 사용).
이 과정에서 한빛은행은 고합으로 하여금 사주조합에 주식을 매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까지 휘말렸다.
이같은 행보는 고합의 회생 처리 과정에 다른 은행들은 소극적이나 한빛은행만 의욕을 보였다는 등 다른 문제와 맞물리면서 더 많은 구설수를 낳았다. 결국 돈을 회수하기 위해 정상적인 주식 거래 약정을 파기하고 채권 회수에만 열을 올리는 문제를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기업 회생 여부를 결정짓는 채권단의 공정성과 판단력을 의심케 하는 처신을 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정보 비대칭 즐겼다 비판
비단 고합 뿐만아니다. 이미 언급한 2000년 부실기업 정리 과정에서 한빛은행 등 채권단과 금융당국은 매각 대상 기업 명단 발표를 거부해 논란을 빚었다.
당시 한빛은행 등의 논리는 합병작업의 경우, 상대방이 있는 만큼 발표 자체가 해당기업에 피해를 줄수 있다는 것. 하지만 이같은 미공개 논리는 오히려 금융당국은 물론 한빛은행 등의 도덕적 해이일 뿐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당국은 대우계열사를 비롯해 그동안 '구조적 유동성 위기 기업중 조건부 회생가능 기업'으로 알려졌던 상당수 기업을 정리대상 52개사에 포함시키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아 결국 투자자의 잘못된 판단을 방치했다는 지적이다.
또 한빛은행 등 해당 주채권은행들은 판정결과를 파악하고 있음에도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구조적 유동성 위기 기업중 회생불가' 등급으로 판정된 사실을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는 한빛은행이 대우 관련 부실채권이라는 폭탄을 안고 있었던 사정(한빛은행은 그 다음해인 2001년 결국 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재무상태나 영업사정이 지극히 불량한 대우 계열사 10개 업체에 대해 적절한 채권보존 대책없이 부실하게 대출, 5726억원의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다)과 겹쳐보면 결국 채권은행들이 숨고르기를 할 시간을 벌기 위해 허울좋은 미공개를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호아시아나 문제 해법에서도 "입만 살아가지고"
한빛은행 이후 우리은행으로 간판을 바꿔 단 이후에도 정보에 휘둘리고 이를 회사 이익에만 사용하는 단견을 보여준 사례는 없지 않다.
위의 벽산건설 논란 외에도 근래의 금호아시아나그룹 워크아웃 과정에서도 우리은행의 부적절한 행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우리은행은 금호산업의 워크아웃을 결정하기에 앞서 금호석유화학에 매각한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에 대해 정상화를 요구해 채권단 사이에 장마전선이 형성된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은행 측이 금호산업의 기업가치가 훼손됐고, 경영정상화에 사용할 수단이 마땅찮다면서 아시아나항공 지분에 대한 단도리 의지를 비친 것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우리은행은 아시아나항공의 지분매각논란과 관련 금호그룹에게만 금호석유화학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 금호산업에 돈을 지급할 것을 요구했을 뿐, 산업은행에는 공식적 문제제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12.7%(약 2227만주)를 952억원에 금호석화로 넘겼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의 행보에 비판을 제기하는 소리가 나왔지만, 우리은행 역시 불만스러운 기업의 행동에 대한 예측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결국 아무런 실질적 행동을 워크아웃 협의회 등에서 적극적으로 옮기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일반 소액 주주 등에 대해서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큰 말을 움직이는 우리은행 등이 해법 논의와 방법론 선택 문제에서 임무를 게을리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인없는 은행 체질이 몸에 뱄나? '자기밖에 모른다'
이처럼 우리은행과 그 전신기관의 행보에는 은행은 금융'기관'이라 하여 공익적 가치 판단을 하도록 요구받는 우리 정서(현재는 많은 변화가 있음)와 괴리되는 부분이 상당하다는 지적이다.
이 배경을 놓고 우리은행의 태생적 한계가 아니겠냐는 우려섞인 해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은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합쳐져 공적자금을 투여한 한빛은행의 후신이다.
상업은행은 1976년에 무역협회에 지분이 넘어갔고, 한일은행은 80년대 초 지분이 매각돼 '민영'이 됐다.
하지만 지분이 넘어갔다고 해서 무협 소속인 상업은행이 민간 은행이라고 보는 기류가 강했던 것도 아니고 한일은행 역시 민영화 이후 당국의 입김과 방임이 교차하면서 활동을 지속하다가 이후 합병, 공적자금 투입 은행이 돼 현재 민영화를 기다리는 수순이다.
이처럼 오래도록 주인없는 은행이라는 역사를 갖고 있는 곳들이 합치다 보니 단기적 성과와 가시적 결과물을 내놓는 문제나, 매뉴얼에만 집착, 거시적으로 문제 상황을 초래하는 등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
이번에 벽산건설의 지분 매각 사정에서도 변명처럼 등장한 '내부 매뉴얼에 따른 손절매였을 따름'이라는 대목을 보면, 이같은 내부 규정이 존재해도 현행법에 저촉되면 이를 필터링해 내야 하는 것인데 전체적으로 작은 문제에 매몰돼(매뉴얼 기준 충족) 당당하게 미공개 정보 거래로 의심받을 행동을 저지르는 쪽으로 해당 문제 결재라인의 전직원이 동일한 판단착오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최근 겪고 있는 PF 관련 내부통제 곤란 등 각종 문제를 처리한 이후에는 정보에 대한 취득과 내제적 제한 등의 문제를 첫단추부터 다시 꿰어야 할 요구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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