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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소외받는 한국·한국기업

3대 신용평가사, PIGS 국가보다 韓 저평가 등 공신력의문 상승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0.05.10 16:41:27

[프라임경제]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의 신용 평가 등급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무디스, 스탠다드 앤 푸어스(S&P), 피치 등 유명 신용평가회사들의 국가와 기업신용등급은 투자자들의 주요 포트폴리오 구성에 판단 기준으로 중요하게 활용된다.

하지만 최근  국제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이들 국제 신용평사회사들의 공신력 자체에 의문이 제기됐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가들과 유럽 국가간에 불평등한 처우가 적용되고 있다는 의구심마저 높아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에 더 가혹한 판단잣대

이들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구미 국가와 아시아 국가들간에 불공정한 처우를 하고 있다는 우려는 처음 제기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그리스 재정적자 문제가 드러난 것은 지난해 10월.

당시 그리스의 새 내각은 "2008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12.7%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당초 시장에서 예상하던 재정적자 비율(6%)의 두 배나 되는 수치였다. 하지만 신용평가회사 피치는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A'에서 'A-'로 하향조정하는 데 그쳤다. 이후 이 문제는 두바이 국가부도 위기로 재정 적자 문제가 심각한 이슈로 떠오르기 전까지 잠복해 있었다. 지난 10월 첫 경고음이 나올 당시만 해도, 당시 유로화 가치가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하는 등 유로존 경제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에 위험을 과소평가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지난해 말 피치는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BBB+로 낮췄고, 5월 현재 피치의 그리스 등급은 BBB-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IMF 구제금융을 받을 무렵에는 이보다 신속하고 가파른 등급 하향 조정이 이뤄졌었다. 피치의 경우 IMF 구제금융 무렵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외환위기 전의 AA-에서 12단계나 내리기도 했다. 피치가 당시 우리 나라 신용등급을 투자부적격인 B-까지 내린 것과 유사하게 S&P는 B+, 무디스는 Ba1까지 하향조정했다.

국제신용평가회사인 피치가 일본의 국가부채 문제를 지적하며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을 언급한 점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의 고질적인 재정문제가 원인으로 언급되지만,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9.2%로, 피치의 신용등급은 AA-다.

다만 피치는 영국(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11.6%), 미국(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9.9%)에 대해서는 AAA 투자등급을 부여하고 있으며 2010년 현재 이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같은 선진국이라 해도 아시아 국가인 일본에게만 냉정한 시선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재정위기 남유럽 국가들, 韓보다는 모두 등급 좋다?

최근 우리 나라가 무디스로부터 IMF 이후 첫 A1 국가신용등급을 부여받았다는 뉴스가 전해진 바 있다.

물론 이는 우리 나라의 경제 체력이 회복됐다는 평가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아일랜드·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 등 유로존 전반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불안요인들로 꼽히는 이른바 PIGS 국가들에 대한 신용등급과 비교해 보면 마냥 좋은 소식만은 아니다.

일례로 무디스는 우리 나라를 A1으로 보고 있지만, 스페인을 Aaa로 평가(우리 나라보다 4단계 높음)하고 있고, 포르투갈과 이탈리아는 Aa2(한국보다 2단계 위), 아일랜드 Aa1(한국보다 3단계 위)로 보고 있다.

피치 역시 한국을 A+로 평가하는 동시에 스페인은 그보다 4단계 위인 AAA, 포르투갈·이탈리아와 아일랜드는 한 단계 위인 AA-로 평가하고 있다. 구제금융을 실제로 신청한 그리스는 우리보다 5단계 낮다(BBB-).

S&P 역시 스페인을 AA등급으로 보는 등(A등급을 받은 한국보다 3단계 높음) 전반적으로 위기 상황으로 우려되는 남유럽 국가들 대부분을 우리 나라보다 경제 여건이 낫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나라의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은 지난해 5.4%에 불과한데 그리스보다 GDP 대비 재정 적자 비율이 높을 것이라는 우려를 받는 스페인이나, 9.4% 수준인 포르투갈에 비해 낮은 평가 를받고 있는 셈이다.

◆선진국 지수 편입시켜도 효과 상쇄 우려

이렇게 투자 등급을 평가받는 문제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 손실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신용등급의 오르내림은 조달금리에서 차이를 주게 된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달 14일 무디스가 한국의 장기외화 신용등급을 기존 A2에서 A1으로 상향조정한데 대해 대외조달금리가 낮아지는 효과와 환율 절상 압력이 동시에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당시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보고서에서 "한국의 대외신인도 상승이라는 상징적 의미 외에도 펀더멘털상의 영향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또 현대증권은 당시 조달금리의 하락 효과를 예상하면서 금융주를 수혜주로 꼽기도 했다.

바꾸어 말하면, 제대로 평가등급을 받지 못하는 만큼 이자를 더 내고 자금 조달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통 기업의 신용등급은 국가신용등급과 유사하거나 더 낮으므로(국가신용등급보다 높은 회사도 더러 존재하지만) 국가신용도 문제는 전체적인 기업의 유·불리를 정한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로 국가신인도의 왜곡된 평가는 투자 포트폴리오 구성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에 증시의 선진국 증시 편입 등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현재 한국은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선진국지수 편입에 이어 오는 6월 우리 증시의 MSCI(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인덱스) 선진국 지수 편입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는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을 선진 시장으로 보고 우리 기업들에 (특히 장기적인) 투자를 늘리는 포트폴리오를 구성, 투자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큰 호재로 받아들여지지만, 신용등급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문제는 이처럼 다른 영역에서의 호재를 상쇄해 버려 우리 경제에 그만큼 손실을 입힌다.

극히 일부의 기업들은 이런 신용평가사의 국가·기업 신용등급 부여에도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지만(예를 들어, 2009년 3월, 삼성전자는 피치가 회사 등급을 하향조정한 상황에서도 이후 약 10일간 주가가 5% 가량 오르기도 했다. 피치의 평가보다 삼성전자가 D램 시장에서의 반사이익을 거둘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기 때문이다.) 이런 체력을 갖지 못한 시장참여자가 더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삼성처럼 펀더멘털 튼튼한 기업은 극소수…평가회사 횡포 막을 방안은?

이에 따라 국제신용평가회사들로부터 받는 불이익을 개선하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금융상품 판매와 신용평가를 사실상 함께 하는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의 구조적 모순을 미국 스스로가 신용평가사 규제 법안 마련으로 바로잡는 것도 기대해 볼 수 있지만, 당장 구조 해결이 어려운 경우에는 이로 인한 손실분을 구하는 국제 소송 등도 방안이다. 예를 들어, 최근 무디스가 신용등급 조정을 게을리했다는 문제에 대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행정조치를 검토하고 있는데(이 기관은 사기 혐의로 골드만 삭스를 고발조치하기도 했다), 등급조정에 불만이 있는 경우 이런 고발 조치나 민사소송도 방안이 될 수 있다.

유럽국가들이 유럽중앙은행(ECB)의 일부 리서치 조직을 분리해 신용평가기관으로 육성할 것이라는 외신 보도는 이런 고민을 유럽권에서도 심각하게 하고 있음을 방증하며 신용평가 방식에 대한 다극화 가능성을 점치게 하고 있어 이에 대한 적극적 참여 등이 근원적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한신정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등이 활동 중인데, 이들은 아직 신용평가등급의 상향 평준화 경향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지난 2009년 이들 기관들은 920건의 신용등급을 매겼는데 BBB이상의 투자등급이 79.1%나 됐다.) 한신정평가가 아시아 지역 10여개국의 신용등급 평가에 나서기로 하는 등 공신력 강화와 역량 강화가 추진되고 있다. 한신정, 한신평, 한기평 등을 육성하는 한편 이같은 신설 해외 기구 설치 동향을 관찰하는 것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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