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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제 심급마다 뒤죽박죽 결정…노동자권익 속수무책

[심층진단] 부당노동행위 구제절차 불신 고조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0.02.22 08:57:57

[프라임경제] 부당노동행위 구제 절차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 통념과 동떨어진 판단을 각급 노동위원회가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지나치게 단계가 많아 구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 매 심급마다 판단이 오락가락 엇갈리는 정도가 커 진심으로 승복하기 어렵다는 이른바 논리 결여의 문제도 제기된다. 부동노동행위 구제 절차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봤다.

무엇보다, 정작 여러 단계를 거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결정의 핑퐁게임을 지켜보려면 그때까지 생활자금을 스스로 감당하면서 버틸 정도로 자금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 역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오랫동안 버텨서 구제 결정을 받아도, 막상 직장이 폐쇄돼 버리는 경우 하소연할 곳이 없기 때문에 정작 ‘안 망할 신의 직장’ 소속인 노동자에게만 구원의 동앗줄이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노동위 결정에 비판 봇물

지난 21일, 네티즌들은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 한 건을 놓고 비판을 쏟아냈다. 노동위 결정이 인구에 회자되는 경우는 법원의 리딩 케이스들이 법조 주변인사가 아닌 일반 시민들에게 화제가 되는 일보다도 드물다. 그럼에도 이처럼 여론이 비등한 것은 결정문이 상식에 너무도 동떨어져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서울메트로(서울에서 지하철 4호선까지를 운영하는 회사. 5~8호선은 서울도시철도가 맡음)는 ‘야간근무 중 잠을 자다 적발돼 해고된’ 직원을 복직시키라는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에 불복, 행정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등에 따르면, 서울메트로는 “야간근무를 할 때 잠을 자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지키지 않은 직원을 해고한 것은 정당하다고 확인해 달라”며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을 냈다.

서울메트로 등에 따르면, 이 해고 직원은 야간근무를 하면서 잠을 자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음에도 몇 번 적발돼, 수차례 징계를 받았다는 것. 그럼에도 해임처분이 과다하다는 결정이 났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포털사이트들을 중심으로 네티즌들이 분개하고 있다. “(저러면서) 야근수당은 꼬박꼬박 받았을 것 아니냐”, “해고는 당연하다”(포털 야후 등)는 비판이 쏟아질 정도로 비상식적인 결정이 나왔다는 지적이 많다.

   
  <사진='서울메트로 해고 부당' 중노위 결정에 대해 비상식적인 처사라면서 야후에 올라온 리플들>  

◆‘안 망하는 직장’ 다녀야만 유리하다?

노동위부터 복직 결정을 받아도 회사가 버티기 방침(소송으로 끌고 가는)으로 들어가면 경제력이 약한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이라는 문제점도 부각된다.

위에서 언급된 ‘잠자다 잘린 공사 직원’의 경우는, 본인이 어느 정도 저축 등을 그간 해놨을 것으로 추정되는(신의 직장이라는 말로 흔히 공사 직원을 표현) 해고노동자가 긴 결정과 소송 과정을 버티기만 하면 절대 안 망하고 그때까지 존속하고 있을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두 가지 점이 충족돼 ‘해 볼 만 하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라고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긴 쟁송 과정을 거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판단을 받아내도 직장 자체가 사라지거나 하면 실제 이익은 미미한 경우도 많다. 결국 시간과의 싸움에서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사람부터 나가떨어지는 구조라는 것이다.

일례로, ‘콜트악기’ 사건이 있다. 경영상 위기로 인한 해고가 맞느냐는 논란이 기본 줄거리인 이 사건은, 당초 해고가 부당하다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이 나왔다. 그러나 콜트악기는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 취소를 냈고, 행정소송(1심 판결)에서는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단으로 노동위 결정이 뒤집어졌다.

   
  <사진=공정성과 법원을 상징하는 정의의 여신. 엄정한 판결의 상징이지만 부당노동행위 구제 사건에 있어서는 정확한 판결이 아닌 오락가락이라는 오명이 붙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12부는 2009년 “주문량이 줄고 동종 업계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단기간에 매출이 확대되거나 재무 상태가 현재보다 개선될 여지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경영상 해고해야 할 긴박한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회사 쪽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행정소송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행정1부는 지난해 8월,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문제는 여기 있다. 이렇게 엎치락뒤치락 하는 동안 콜트악기는 공장을 이미 해외로 옮겨 버렸고, 결국 법원에서 승소해도 돌아갈 곳이 마땅찮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아진 노동자들은 금년 1월 미국 서부에서 열리는 NAMM Show(악기박람회)에 가서 시위를 벌이며 콜트악기에 항의해야만 했다.

◆수많은 절차, 복잡해서 어리둥절

아울러,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를 호소하려는 노동자가 밟을 단계가 너무 많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종적으로 행정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지방노동위원회→중앙노동위원회→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 등 무려 다섯 번의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리 절차가 현재 노동위원회와 법원으로 이원화돼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 결과, 문제가 일반 사건보다 더 심급이 많은 ‘사실상 5심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공인노무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노동위 판정에 이은 행정소송, 그리고 이와 별도로 해고무효확인소송과 임금청구소송 등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등 구조가 드렁칡처럼 얽혀 있다. 이에 따라 노동사건에 있어 절차가 지나치게 많고 복잡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민사와 행정소송 간 판단 뒤엉켜 

그 결과, 심급마다 답이 너무 뒤죽박죽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중앙노동위원회의 ‘2006년 노동위원회 연보’를 보자. 2006년 지방노동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한 비율은 54.5%로 이 중 초심이 취소된 비율은 재심신청된 1680건 중 200건으로 약12%에 달한다.

더욱이 지난 2006년 대법원과 전국 법원에서 확정된 노동소송 사건 319건 중 21%에 해당하는 65건에서 중노위 재심판정이 뒤집혔다는 통계도 있다. 2005년 법원의 중노위 재심판정 취소비율이 16.7%이었던 것보다도 높아진 것.

심급마다 결과가 뒤죽박죽이어서 최종 확정판결이 떨어져도 결과에 수긍 못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노동위원회의 구제신청과 법원에 민사소송 제기라는 선택권을 주면 더 유리할 것 같지만, 긴 시간과 복잡한 절차에 지치는 한편, 더욱이 서로 엇갈리는 결정들 때문에라도 더욱 불만만 높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독일 노동법원’이 대안?

이에 따라 노동법원을 설치해 처리 과정을 단축시키고 전문성을 키우자는 논의가 해결방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독일은 일반 민사법원, 행사법원 등과 별개로 노동법원을 설치하고 있고, 연방노동법원의 경우 연방 헌법재판소와 함께, 노동관련 부문에 있어서만큼은 쌍벽을 이루는 법리 계발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7월 노동 관련 법적 분쟁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노동법원 설치’ 문제가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의 정식 안건으로 논의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도 우리 실정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과 논의를 통한 제도 재편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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