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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서울 숭례문 인근에 자리잡고 있는 삼성생명 본사> |
하지만 2010년 봄 ‘공룡 삼성’의 질주를 막을 마지막 사슬이 끊어지는 데 비하면 이러한 충격은 아무 것도 아닐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중간지주사 도입론이 다른 재벌사의 규제방안으로는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지 몰라도, 삼성에게는 크게 약효가 없거나, 오히려 삼성이 바라거나 대비해온 시나리오대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어떤 그물을 쳐도 삼성그룹을 견제할 방안이 없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으로도 읽혀 특히 주목된다. 아울러, 이 와중에 논란의 중심에 ‘국내 1등 보험사’ 삼성생명이 자리잡고 있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의 ‘특별한 역할’
금융권 재편 과정과 주요 기업 지주사 전환 국면 등 2개 필드에서 ‘중간지주사’가 개념이 2010년 화두가 될 전망이다. 중간지주회사는 업무 효율을 위한 지주사 분리작업에서 키워드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각광받은 바 있고, 최근에는 공정거래법 개정 국면에서 18일 언급됐다.
산업자본, 즉 일반 기업들(내지 기업군, 즉 재벌)이 금융자회사(은행 등)를 거느리는 문제는 오랫동안 금기시돼 왔지만, 자본시장통합법 마련 이후 어느 정도 족쇄가 풀렸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완전한 실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간 융합은 어렵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 개정은 예를 들어, 삼성이 지주사로 순조롭게 전환하고 또 그 산하에 금융기관을 잘 거느릴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완결판으로 필요한 중요 부품이다.
공정거래법은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허용 문제 등’ 쟁점을 처리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으나 1년 넘게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17일까지의 상황을 종합하면,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공정거래법 개정안 간담회를 여는 등으로 수정안 통과에 어느 정도 물꼬를 트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8일 야당이 재수정안을 들고 나왔는데 여기서 등장한 중간지주사 관련 논의가 원점부터 이뤄져야 할 전망이다. 야당은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 직접 소유함은 허용하지 않되, 일반지주사 내에 금융지주사법의 적용을 받는 중간지주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니 간접 지배하도록 법을 재정하는 것을 검토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야당 측 안은 감독이 느슨한 일반 지주사가 금융자회사를 보유할 경우 자칫하면 금융자회사에까지 손실을 끼칠 수 있는 만큼, 금융감독기관의 통합감독을 받는 중간지주사를 통해 금융자회사를 간접 소유토록 하자는 것으로 눈길을 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산업자본 즉 일반지주회사로 대표되는 재벌 기업이 은행 등 금융자회사를 줄줄이 거느리는 1개 지주사 산하에 금산 통합 가능성을 견제하는 사실상 유용한 아이디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삼성, 오래 전부터 오늘 예견했다?
그러나 중간지주사를 도입한다고 해서, 일명 재벌기업이 금융기관(금융자회사)을 거느리는 데 규제를 하는 데 완벽하지는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더욱이 상대가 이미 중간지주사 도입을 전제로 한 시나리오를 예상범위에 넣고 대응방안을 오래 연구해 왔다면 변칙적인 금융업 지배가 더 쉬울 수도 있다. 중간지주사의 경우, 금융지주회사법이 적용되는 대신 공정거래법 적용에서 제외되게 된다. 이 경우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반 지주회사의 경우 계열사에 대한 출자가 제한될 수 있지만, 금융지주사법이 적용되는 중간지주사는 출자가 무한정 가능해지는 '제한 규정 회피'가 가능해진다. 결국,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뒤섞이고, 경제력 집중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 가능성은 여기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삼성이다. 삼성은 삼성그룹의 순환 출자(환상형 구조 즉 고리 모양으로 서로 출자를 해 기업을 지배하는 것)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이에 따라 언젠가는 지주사로 전환을 해야 하기는 한다는 분석이 넓게 공감대를 형성한다. 다만 이 과정에서 금융자회사들을 일반지주회사가 거느리는 게 제약이 큰 것이 문제였는데, 중간지주사 도입으로 공정거래법이 개정된다면, 골칫거리가 상당히 줄어든다.
그리고 이 추진안에 쓰일 傳家의 寶刀는 ‘삼성생명’이다.
야당이 중간지주사 도입을 거론하는 2010년 연초 현재, ‘공교롭게도’ 삼성그룹은 삼성생명 상장은 추진 중이다. 늦어도 5월이면 그림 그리기가 끝날 것이라는 분석이 나돌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오비이락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이미 2008년 4월 삼성그룹은 ‘쇄신안’을 발표하면서 각종 물의에 대해 ‘반성’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내막은 그렇지 않다는 평가가 없지 않았다. 당시 쇄신안을 보면 삼성그룹을 이끌던 이건희 전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전략기획실을 해체하는 내용이 담겨 있고, 실제로 이 아이디어들이 단행됐다.
또한 비자금 등 비리 연루 간부들이 삼성화재와 삼성증권 등에서 물러나고, 삼성그룹 삼성생명·화재·증권 등 비은행금융사들의 경영에 매진하되 은행업에는 진출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나 당시 금융계에서는 이 쇄신안의 ‘진정성 여부’에 백안시하는 분위기였다. 삼성생명 등 보험을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터다지기가 아니냐는 시선을 보냈던 것이다.
쇄신안에서 삼성생명을 축으로 화재, 증권, 카드를 아우르는 비은행 금융업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것이 보험지주회사 설립을 이미 준비한 것으로 본 분석이었는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각각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에서 시장점유율 1위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개연성이 있었다. 실제로 이번 삼성생명 상장에 발맞춘 중간지주사 도입안 등장으로 더욱 더 설득력이 높아졌다고도 할 수 있다.
현재 상장을 추진하는 삼성생명의 경우 상장으로 인해 발생되는 차익을 지주회사 전환에 사용할 수 있고, 삼성생명을 중간지주사로 정해 버리면 그룹의 복잡한 환상형 고리 구조(circulation system)를 지주사 체제로 바꾸는 일석이조가 가능하다는 풀이다.
삼성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약 20조원의 자금과 법적 문제가 이번에 모두 처리되는 셈이다.
◆심상정 폭로 문건, 결국 사실이었던 셈
삼성그룹은 실제로 이 중간지주사 관련 논의를 오래 전부터 했다는 의혹이 그전에 정치권에서도 나온 바 있다. 17대 국회 회기 중에 당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현재는 진보신당으로 당적 이동)은 삼성그룹이 금융업을 포기하지 않고도 지주사로 전환하는 안을 추진할 치밀한 계획표를 담은 삼성 내부문건을 입수해 전문 공개한 바 있다.
‘삼성금융계열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로드맵(2005.5)’이라는 제목을 단 이 문건은 건은 2005년 ‘금산분리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내용을 공론화하는 방안부터 2007년 ‘금융지주회사법의 개정을 성사시킨다’는 방안까지 담고 있었다.
더욱이 5대 추진과제로,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정책에 대한 이론적 대응 △비은행 금융지주회사제도의 도입 △은행업, 증권업, 보험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금융산업정책 수립 유도 △비은행 금융기관의 은행업 진출방안 마련 △경제력 집중에 대한 올바른 인식 유도 등을 적시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정책 수립 유도, 인식 유도 등이 절반 이상 성공한 결과가 이번 야권의 중간지주사 도입을 통한 일반기업군(산업자본)의 제한적 금융자회사 소유라고도 풀 수 있기도 하다.
◆중간지주사 통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 일본 정도만 활용
이에 따라 삼성 좋은 일만 시키는 중간지주사 도입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예방하고 진지하고 세밀하게 검토하여야 할 필요도 제기된다.
우선 산업자본 지주사가 중간지주사를 거느리는 경우는 찾기 쉽지 않다.
아예 금융지주회사가 중간지주사를 거느린 사례는 국내에도 있다. 2008년 한국금융지주가 자산운용사업을 총괄하는 중간지주회사를 설립했다. ‘금융지주사가 계열사 일부를 아우르는 별도의 중간지주회사를 세운 케이스’이다.
미국이나 유럽권에서도 중간지주사를 통한 금융자회사 지배에서 사실 이 구조를 활용하고 있다. 네덜란드 그룹인 ING가 갖고 있는 중간지주사 제도, 미국 AIG가 활용하는 중간지주사의 경우 ING, AIG 모두가 금융업을 주로 하는 지주사로서, 사실상 산업자본이 금융자회사를 갖는 완충재로서의 중간지주사 케이스들은 아니라는 평가다.
이런 삼성식 추진안의 예로는 일본 정도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우정 개혁 국면에서 중간지주사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다. 지난 2일 일본의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금융대신은 “일본의 우정사업 민영화는 사회적 합의 없이 추진돼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면서 “이를 전면 수정하는 법안을 오는 3월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현재 일본의 우정그룹 경영형태는 지주회사 하에 우편사업회사, 우편국회사, 우정은행, 간포생명이 딸려 있는 5사 체제로 돼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반 지주회사가 자회사들(금융과 일반산업 자회사들을 모두) 거느리는 직할 체제다.
그런데 일본우정그룹의 새로운 경영조직 형태로서 제시된 안 중 유력한 것으로는 우편사업회사와 우편국회사의 통합 지주회사 하에 금융지주회사를 설립하고, 그 밑으로 우정은행과 간포생명을 두는 4사 체제다.
일본 소니가 갖고 있는 중간지주사(를 이용한 금융자회사 보유) 제도도 산업자본의 금융자회사 보유 건으로 눈길을 끄는 사례다.
일명 ‘소니 파이낸셜 홀딩스’는 ‘전자 왕국’ 소니가 금융자회사를 갖기 위해 만든 중간지주사다. 성공적으로 활동한다는 평가를 얻었고, 도쿄 증권거래소 제 1부에 상장되기도 했다.
◆중간지주사, 삼성 폭주와 삼성생명 공룡화 ‘칼’ 빌려줘서야
결국 이렇게 일본의 특유한 제도에 가깝다고까지 평가할 중간지주사를 끼워넣는 산업자본의 금융자회사 보유 제도 허용은 결국 삼성만 좋은 일로 끝날 우려가 없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에버랜드를 사실상 지주사로 쓰면서 ‘이건희 일가에 의한 지배’를 용인하는 것보다 삼성생명 상장과 보험지주(중간지주)로 흘러가는 구조가 전혀 낫다고 볼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도입까지 신중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 도출도 추진되어야 할 전망이다. 현재까지는 보험사의 지주사 전환 가능성에 대해 보험연구원 외에는 의미있는 논의를 한 전례도 없다시피 하다. 관련 논의의 활성화 여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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