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 경제가 얼어붙은 가운데,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안정과 통화량 관리 등의 소극적 역할에서 '구원투수'로 위상 변화를 요청받고 있다. 이미 선진 제국 중앙은행들이 이런 역할 분담을 위해 재무부처들과 협업에 나섰고 우리 나라 역시 '한국은행법 개정'이 새 화두로 떠오른 바 있다.
이 와중에서 한국과 미국의 중앙은행 수장들이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콘트롤해야 하는 경제 규모나 상황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으나,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에 임기 만료를 앞둔 이들이 정치적 외풍에 영향을 받는 상황은 태평양의 거리감과는 별개로 상당히 유사하다.
◆대공황 전문가 버냉키, 전임자 빛에 가리고 민주당 눈치보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버냉키 의장이 이달 31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버냉키의 연임 여부는 미 증시를 좌우할 정도로(일례로, 현지시간 25일 나흘만에 뉴욕 증시 상승을 가져온 이유가 '버냉키 연임 가능성說'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큰 이슈다.
미국은 영란은행, 일본은행 등과 유사한 중앙은행 제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중앙은행 역할을 하고 있고 버냉키의 움직임이 미국 경기는 물론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강한 횩하를 갖고 있다.
하지만 버냉키는 파란만장한 임기를 보냈다. 전임자 그린스펀에 이어 등극하면서 아무래도 비교·위축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고, 주택 대출 문제와 복잡한 파생상품 논리가 가져온 서브프라임 사태와 그 진동을 에상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데 굼떴다는 비판으로 상처를 입었다.
이로 인해, 정치권의 입김에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이에 따라 현지시간 25일, '월스트리트저널'은 그의 연임에 관해 정치권(여당인 미 민주당)에 종속되는 길을 택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인 리드 의원이 "버냉키가 향후 (소기업과 소비자들의) 대출 이용이 가능하도록 노력을 배가(redouble)할 것이고, 조만간 이 같은 계획의 윤곽을 밝힐 것이라고 밝혔고, 자신은 이를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한 일을 상기시키면서, 이같은 점을 감안할 때 정치권의 공격을 받는(달러를 정부가 원하는대로 더 찍어내지 않았다고) 그가 금리를 (소신껏) 올릴 가능성은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아울러 월스트리트저널은 '정치적 압력에 너무 민감(too susceptible to political pressure)'하다고 '버냉키 연준 체제'를 평가하기도 했다.
이어서 월스트리트저널은 "연준이 1년여 동안 제로금리 수준을 유지해왔고, 1.25조달러 어치나 모기지담보증권을 사들였는데 "배가(redouble)라니?"라고 되묻고, "(버냉키가) 추가로 1.25조달러 어치를 사들이고, 제로금리를 앞으로 14개월간 더 연장하려 하는가?"라며 강한 우려감을 나타냈다.
![]() |
||
<사진=한국은행은 내부승진 첫 총재인 이성태 체제가 연장될지 여부로 시선을 모으고 있다.> |
◆'내부승진 한은 총재', 연임 어렵다 관측
한편 우리 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역시 외풍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지금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이는 이성태 총재. 이 총재는 부산상고를 나왔고 서울대를 졸업한 뒤 첫 내부 승진 한국은행 총재가 됐다. 탁월한 업무 능력이 주는 카리스마로 한국은행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에서 임명되었다는 핸디캡과 수시로 정부 당국과 부딪히는 점이 그의 연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원인이 되고 있다. '3월 이후'가 불투명한 이유다.
이 총재는 이스라엘의 금리인상 직후부터 한국의 선제적인 금리 인상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그런 그의 주장은 기획재정부 등이 생각하는 경기부양 흐름 유지 필요성과는 역방향으로 받아들여졌다.
최근 해외 투자은행 등 금융가에서는 이런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에서 몇 번 물러서온 이 총재가 임기 마지막 달인 3월엔 금리가 인상을 할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이 총재가 신년사에서 "기준금리는 당분간 경기 회복세 지속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운용할 방침"이라면서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에 비춰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함으로써 민간부문의 성장동력 강화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그의 그간 행보를 보면 한 번쯤 소신 행보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것.
다만 이런 해석은 그가 결국 연임을 접는다는 전제를 깐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가 차관을 열석시키는 등으로 한층 강화된 견제를 하려는 제도적 포석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준 금리를 인상하는 일은 결국 현재 거론되는 후임 총재감들에게 바톤터치를 하는 것을 감안하고 하는 마지막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등은 중앙은행의 역할론에 대해 적극성을 주문(CBS 라디오 출연분)하는 등 이명박 정부의 입맛에 보다 잘 맞는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국 바다 건너 한미 양국의 중앙은행 수장들은 모두 여당의 조건부 지원이 따르지 않으면 연임이 불가능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이나, 기준 금리 인상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과 대면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경기 회복을 자기 대에서 못 보고 정책가 생활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는 점 등에서 동병상련 처지라고 할 수 있어 보인다.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