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사상 초유라는 경제난이 몰아닥친 가운데, 우리 재계에도 '생존'이 제 1 명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경쟁력 강화와 수익 확보라는 명제 하에 그간 구축돼 온 업계 공통 관심사나 향후 진행되어야 할 백년지계가 도외시되면서 '정글의 논리'만 남는 경우가 없지 않다.
특히 이런 경향은 관련 산업 발전 속도가 빠르고 걸린 이익 규모가 큰 IT나 금융 부문에서 더욱 심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폰 관련 시장 놓고 하나vs.기업 '이전투구'
미국 애플사가 내놓은 아이폰이 세계 핸드폰 시장에 불러일으킨 파장은 상당히 크다.
특히 그간 삼성전자나 LG전자 중심으로 구축되어 온 국내 핸드폰 시장에 격변 요인을 제공함으로써 한동안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자긍심으로 정체 국면으로 들어선 국내 시장에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아이폰 도입을 둘러싼 금융 관련 시장은 그렇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선의의 경쟁'을 펴기보다는 '제로섬 게임' 양상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여 우려를 낳고 있다. 이 이전투구식 경쟁에는 국내 금융권에서 치열한 4위 경쟁을 벌이는 하나은행과 기업은행이 관여돼 있다.
즉 부동의 1,2,3위권은 차치하고라도, 4위권을 굳히기 위한 경쟁국면에서 아이폰 시장을 둘러싼 기업과 하나간 경쟁이 불거졌고, 이런 상황 하에서는 상생이나 표준 마련 따위는 논외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기업은행이 아이폰용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인 스마트폰 모바일뱅킹의 시대가 시작된 데 이어, 하나은행 역시 아이폰용 금융 상품 지원체계를 선보임으로써 국내에서도 드디어 아이폰 금융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이런 아이폰 금융 시대 개막은, 모바일뱅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보안 문제에 대한 기준이 완벽하게 마련되지 않아 보안 위험에 관한 우려가 커지면서 그 빛이 바래고 있다.
은행계와 통신업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출시된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의 공인인증서 저장 방식이 서로 다르다. 이를 통합할 방법을 마련하지 않고 제각각 발전하는 경우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을 국내 금융시장에 가져올 것으로 우려된다.
우선, 기업은행의 경우 애플리케이션 자체가 공인인증서에 저장되는 방식으로 운영법을 마련했다. 한편, 하나은행은 기기 내 시스템 폴더에 저장하는 방식을 택해 시장 공략에 나선 상태다. 그러나 기업은행의 경우 공인인증서가 애플리케이션 안에 저장되기 때문에, 다른 은행의 모바일뱅킹을 쓰기 위해서는 공인인증서를 다시 설치해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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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애플 아이폰과 관련한 금융 시장이 열리면서 기업은행과 하나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와중에 표준화 없는 무한경쟁으로 소비자 피해가 훗날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기업은행 아이폰 금융 관련 서비스 개시 당일 자료> |
하나은행 역시 문제를 매끄럽게 해결한 것은 아니다. 하나은행은 시스템 폴더 저장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공인인증서가 이용자 ID와 패스워드 관련 정보가 보관되는 공간에 함께 저장된다는 점이 문제다. 즉 패스워드를 노린 해커에게 보안망이 깨지는 경우, 동일한 해커에게 거의 동시에 공인인증서 등이 넘어갈 수도 있는 것.
어느 방식도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하나은행이나 기업은행 등 국내 금융권은 모두 여러 개의 공인인증서를 설치해야 하거나 안정성이 극히 취약해, 기존 모바일 금융 방어벽 체계보다 약한 구조를 직면하게 된다.
그 원인은 금융당국이 사전에 관련 규준을 명확히 하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아이폰 금융 관련 기준을 미리 검토, 확립하지 않은 터에 각 은행이 폭주한 데에도 원인이 있다.
결국 만약 아이폰 관련 금융거래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금융당국과 각 은행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하며, 이 책임 귀책분을 놓고 추가 분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즉, 아이폰 금융 관련 표준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아이폰용 모바일뱅킹이 등장하는 상황이 빚어졌고, 이런 기업은행과 하나은행의 이기적 경쟁 국면 속에서 각 고객들은 공인인증서를 제각각 설치해야 한다는 기로에 대면했던 것이다.
어쨌든, 공인인증서가 지금처럼 무더기로 반복 발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에 업계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이는 아이폰 관련 시장을 먼저 장악하기 위한 상호간의 비협력과 신경전으로 인해 도외시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로 기업은행과 하나은행은 어느 쪽이 먼저 관련 서비스를 시작하느냐를 놓고도 경쟁을 벌였고, 이 와중에서 시작이 늦어진 하나은행 주변에서는 "일부러 기업은행이 서비스 개시일을 잡을 때 하루 먼저 선수를 친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나오는 등 상호 협력이 자리잡기 어려운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은행이나 하나은행처럼 아이폰 중심으로 일을 벌이지 않은 여타 은행들은 스마트폰 모바일뱅킹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공동으로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타산지석'인 셈이다.
◆삼성 등 유력 핸드폰 주자, 업계표준 헌신짝 취급
한편 이렇게 각사가 경쟁에 눈이 멀어 경쟁에서 상생 문제를 도외시하는 것은 금융권만이 아니다.
IT 업계 역시 제살깎기 경쟁 조짐이 빚어지는 가운데 공동 이익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는 모습이다.
일례로, 그간 휴대전화 충전기 공통 규격화에 대해서는, 2002년경 국내 휴대전화 생산업체들이 업체 간의 휴대폰 충전기 공유를 위해 한국정보통신기술협의(TTA)의 '표준형 휴대폰 충전기 인증 획득'에 앞다퉈 나섰던 바가 있다.
TTA의 인증을 획득하게 되면 충전기의 규격이 통일돼 하나의 충전기로 각사 휴대폰의 배터리를 모두 충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2002년 이전의 충전기 제자백가 국면에서는 업체마다 제 각각의 표준으로 상호 연동이 되지 않아, 다른 휴대폰으로 바꿀 경우 충전기 재사용이 불가능해 낭비가 많았던 문제가 이로써 해소됐다.
그러나, 2002년경까지 중요하게 다뤄져 온 휴대폰 표준 충전기 도입 노력이 정책추진 10년이 못 되어 다시 구렁이 담넘어 가듯 없던 일이 되고 있다. 아울러 이런 업계 노력이 무너지는 데 두드러진 원인이 된 제품이 업계 1위 업체인 삼성전자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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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표준형 핸드폰 충전기를 모든 핸드폰 충전 거치대에 사용하게 하려는 표준화 시도는 근래에 일부 업체들의 비협조로 다시 '없던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 매직홀 거치대와 표준형 충전기의 핀수 자체가 다른 않는 모습> |
젠더란 최근 나온 작고 얇은 기종의 충전 보조 도구이다. 보통 충전기에 휴대전화를 바로 꽂을 때, 근래에는 표준 충전기로 바로 들어가도록 통일안이 형성되었으나 요새 다시 작고 얇은 기종이 나오면서, 다시 젠더라는 보조도구를 쓰는 경향으로 후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최근의 유행에도 불구하고, 표준적인 충전기 거치대를 쓸 때엔 표준 충전기가 각 휴대전화에 제공되는 거치대에 그대로 맞게끔 하는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이는 게 업계 상식으로 돼 있다. 즉, 근래에 나온 작은 휴대전화 중 다수는 역시, 거치대를 통한 충전에는 표준형 충전기+거치대로 직접 할 수 있었고, 다만 휴대전화로 바로 충전을 시도할 때에는 충전기+젠더+전화라는 방식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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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결국 매직홀은 핸드폰 직접 충전이든 거치대 충전이든 어느 때에도 젠더(변환잭: 사진 속 흰색의 이음새 부분)를 휴대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
매직홀은 최소한의 '눈가리고 아웅'하는 노력마저도 벗어던짐으로써, 아예 표준 충전기 도입 노력을 모두 공으로 돌리게 될 우려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삼성전자의 태도는, 업계 1위 회사는 언제든 방해가 되면 산업계 공감대 따위는 무시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까지 받아들여져 휴대전화 생산 산업계에는 적잖은 논란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상생은 남의 나라 이야기
이렇게 각종 표준화 사업이 당장 살아남기에 급급한 일부 업체에 의해 찬밥 취급을 당함으로써, 우리 산업의 표준화 노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런 경향은 관련 역량 강화를 위한 연구 부문에도 부정적 파급력을 끼칠 가능성마저 있다.
실제로 아이폰 관련 모바일 금융거래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실제로 개인용 컴퓨터에서 맥(MAC) 금융거래를 하려는 고객들에 대한 배려나 인식 개선이 제대로 취급받지 못하는 기현상은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아이폰 관련 기반은 맥 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즉 맥 기반 금융거래 기반을 먼저 구축하면 역시 이와 유사한 금융기반을 아이폰 관련으로 내놓기 편한 것인데, 국내 금융권은 신한은행이 맥 기반으로 인터넷 금융 거래 가능성을 열기는 했지만 관련 문제에 대한 연구기반이 박약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터에 돈이 될 것으로 보이자 새삼 아이폰 관련 금융 경쟁에 나선다는 자체가 기초적인 연구 없이 응용공학을 시도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는 것.
아울러, 휴대폰 산업이 그간 발전해 온 것 역시 국가적인 지원 사격과 국민들의 높은 관심, 각종 수요 창출 등에 기반한 기초 환경 마련에 기인한 터에 일부 회사가 이기적인 발전 도모를 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렇게 국내 각 영역에서 표준화 사업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러 현안 사업에 대한 거시적 안목과 투자, 기반 환경의 구축 등이 선행되지 않으면 결국 우리 기업의 단기간 선전은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불안한 것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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