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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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9 10:18:00
[프라임경제] 정부가 29일 연말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번 사면은 경제인의 족쇄를 풀어준다는 측면에서 특히 눈길을 모았다. 총 55명의 경제인이 사면 혹은 복권됐고, 특히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이 '단독으로'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같이 혜택을 볼 수 있을지 논의되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은 다음을 기약해야 할 전망이다.
◆ 명분은 무엇? 경제살리기+평창
이번 사면은 지난 번 단행된 광복 60주년 기념 대사면에 이은 것으로, 당시 명분이 됐던 경제 살리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라고 해석된다. 특히 이 전 회장의 경우 국제사회에서 삼성이 갖는 인지도와 IOC에서의 입지 등을 고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라는 국민적 염원 역시 부과한 사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재계는 요로에 사면 및 복권 희망 명단을 전달하는 등 경제 살리기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 달라는 뜻을 전달해 왔다.
국민 여론 조사에서도 이 전 회장 사면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다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 재계의 이런 주장과 당국 판단에 힘을 실었다.
◆ 경제인 사면, 김영삼 정권부터 '주요 국정 메뉴'
사면은 당초 국왕이 갖는 '은사권'에 뿌리를 둔 것으로, 시혜적이고 선별적으로 집행되는 특혜의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의 사면법은 특히 광복 후 제정 이래 손질이 가해지지 않고 있는 데다, 권위주의적 정치 문화에서 활용되면서 '자의적'이고 '남발' 경향이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래 어느 정권이나 한 번 이상 사면을 단행했다. 1960년, 4개월간 명백을 이었던 허정 과도정부 역시 사면 기록을 갖고 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4차례, 박정희 전 대통령은 22회 사면 단행 기록을 갖고 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3차례 사면을 실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8차례, 노태우 전 대통령은 7회, 김영삼 전 대통령 9회, 김대중 전 대통령 8회, 노무현 전 대통령은 8회 사면을 단행했다.
주로 정치인에 대한 당근, 민심이반을 누르기 위한 시혜적 조치 등으로 진행되던 사면은, 군사정권이 끝나고 문민정부로의 교체가 이뤄진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기 이래 특히 경제인에 대한 혜택이라는 새로운 색채를 띠게 된다.
문민정부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과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은 1997년 개천절 특사에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과 관련된 집행유예 형이 면제되고, 공민권이 복권된다.
이번에 비자금 문제 등으로 문제사 됐다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장을 받게 된 이 전 회장도 문민정부에서 사면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삼성그룹 자금으로 노 전 대통령에게 100억원을 전달한 혐의가 입증됐던 이 전 회장은, 검찰에 의해 기소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법원에서 확정됐으나 1997년 다른 경제인들과 사면됐다.
김대중 정권 역시 경제인 사면에 인색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국민의 정부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등을 사면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김선홍 전 기아그룹 회장을 고령과 질병으로 인한 수감 생활 곤란 사유로 잔형 면제 조치했고, 대우 분식회계에 가담했던 추호석 전 대우중공업 대표, 신영균 전 대우조선 대표 등도 "외환위기가 치유됐다"는 논리로 사면하는 '통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참여정부 역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을 사면한 바 있다. MB가 기업 비리를 저지른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나 최태원 SK 회장 등, 특히 경제가 범죄 아닌 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김승현 한화그룹 회장을 사면한 것도 이런 전례들을 보면 특별할 것이 없을 정도다.
◆ 경제 살리기 도움 안 된다 비판 많은데…
이렇게 당국이 "재벌은 죄를 지어도 수사하기 어렵고, 기소하기 어렵고, 실형판결 나오기가 어려운 데다, 막상 사면 때문에 실형 살기도 어렵다"는 법조 내외의 특혜 논란을 애써 외면하면서까지 이런 조치를 단행하는 데에는 경제 살리기라는 '가장 큰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3공화국 당시와 같은 국가주도 경제모델이 아닌 이미 기업 중심으로 경제 주도권이 넘어간 상황에서, 기업인들의 사회 활동 제약이 자칫 경제에 마이너스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가 법의 엄정집행이라는 요청을 압도한다는 것.
하지만 경제인에 대한 사면이 경제 효과를 높인다는 증거가 없다는 시민단체 등의 비판이 만만찮다. 실제로 '이건희 삼성'이 노태우 비자금 사건 사면 혜택을 입은 2007년, 경제 살리기에 어떻게 나섰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많다. 2008년 경제개혁연대는 "대개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경제인들을 대거 사면했지만 사면으로 경제가 활성화된 적은 결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인권운동사랑방 등은 "삼성은 IMF 구조조정을 빌미로 98년 한해동안 삼성계열사 노동자 4만여 명을 자의적으로 해고해 노동의 권리를 박탈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건물에 대사관을 유치해 노동자들의 항의집회를 원천 봉쇄하기 일쑤"라고 평가를 공개한 바 있다(홈페이지자료 등). 그룹 오너인 MK가 사면 혜택을 누린 현대차그룹 역시 현대차 노조에 사상 최대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임금단체협상을 파업 없이 매듭짓는 등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 자동차 산업의 기본 펀더멘탈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과 이건희 일가가 이번 단독 특사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어떻게 대응할지, 또 과거의 잘못을 지우기 위한 어떤 노력을 사회에 환원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입법례로 프랑스나 독일처럼 국가원수의 사면권을 제약하는 여러 기관과 단계들을 더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번 단독 특사 사태로 다시 불거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