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악몽의 재연인가?
하나금융지주가 '통신업과의 컨버전스 시도' 초입부터 여러 난제에 휘말려 고생하고 있다. 하나금융지주는 SK텔레콤과의 하나카드 지분 협상 문제에서 오랜 시간 고생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샀다. 더욱이 '아이폰 관련 상품'제휴에서 KT와 포괄적 제휴를 맺고 있는 기업은행에 기선 제압을 당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사태에 대해서 비단 통신관련 컨버전스가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빚어진 해프닝으로 보기 어려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어느새 친구는 저멀리 앞서가고" 파트너 차이로 신한은행에 밀려
현재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김승유 회장은 하나금융지주의 발전사에서 산 증인격인 인물이다. 초대 하나은행장이자 한국투자금융이 은행으로 전환되는 초석을 놓은 윤병철 전 행장으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아 오늘날의 4위권 금융지주로 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회장이 한창 행장직을 연임해 가면서 활약하던 시절 같이 행장으로 일하던 신한금융지주 라응찬 회장과 겹쳐 보면 이런 성과는 상당히 빛이 바래게 된다. 신한은행은 1983년 은행 영업점 한 개로 시작했다는 점에서, 1991년 투자금융에서 은행으로 전환한 하나은행과 여러 모로 후발주자로 함께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한금융지주가 LG카드와 조흥은행을 품에 안으면서 국내 수위권 업체로 발돋움하는 동안, 하나금융지주는 4위권 지주사로 상대적으로 더딘 걸음을 했다. 빅3와 너무 큰 몸집 차이가 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는 물론 라응찬-신상훈-이백순으로 이어지는 라인업이 김승유 독주 체제라는 비판이 없지 않은 하나금융지주 스타일의 지휘 체제와 비견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조흥은행과 LG카드를 신한이 삼키는 동안 상대적으로 M&A 파트너를 잡는 데서 운이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실 하나금융지주는 과거, 보람은행, 충청은행, 서울은행 등 여러 업체를 성공적으로 인수해 왔다. 하지만, 40년 역사의 서울은행과 하나은행을 합쳤을 때의 시너지 효과와, 100년 전통의 조흥은행이 신한은행과 결합됐을 때의 파괴력은 상당히 차이가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특히나, PB 고객들의 차이가 컸다는 후문이다. 여기에 LG카드가 결국 신한으로 인수된 이후 효자상품으로 거듭난 것도 격차를 가르는 요인이 됐다. 파트너를 고르고 그 덕을 보는 시너지 효과 문제에서 하나금융지주는 두고두고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번엔 통신 컨버전스에서 '막강 KT' 때문에 골치
하나금융지주가 통신 컨버전스에서 파트너로 생각하는 곳은 SK그룹, 작게는 SK텔레콤이다. 물론 이와 함께 하나아이앤에스 등의 그룹 내 사업자들을 통해 하나금융지주에 맞는 여러 첨단 사업 모델 구상을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폰 관련 뱅킹 모델 개발이 바로 그런 예 중 하나다.
통신계에서 높은 인지도와 다량의 충성고객들을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이야 말로 누가 봐도, 통신 컨버전스에서 최상의 파트너로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KT가 의외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점 때문에 하나금융지주의 구상은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얼마 전 기업은행에 하나금융지주가 선제공격을 당한 것으로 보인 아이폰용 상품 출시 역시, 내막을 보면 사실상 하나금융지주와 SK텔레콤의 연대에 대한 KT의 공격으로 볼 부분이 더 크다는 것. 문제는 이 KT의 금융 관련 내공이 의외로 막강하다는 데 있다.
◆KT와의 싸움, 사실상 NTT도코모와의 전쟁
우선 15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일본 통신회사인 NTT도코모가 KT 지분을 기존 2.2%에서 5.5%로 늘리면서 KT의 2대 주주가 됐다.
KT는 KT 지분 3.3% 상당의 교환사채(주식으로 교환 가능한 사채)를 갖고 있던 일본 NTT도코모가 이 교환사채를 최근 KT 주식으로 교환했다며 15일 이같이 밝혔다.
KT가 NTT도코모와 기술 분야 등에서 앞으로 더욱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 예견되는 부분이다. 문제는 NTT도코모가 통신과 금융을 컨버전스하는 문제에서 '실력파'라는 데 있다.
지난 7월 2일, 이 통신회사는 일본 내 유명은행인 미즈호은행을 소속은행으로 한 '은행대리업' 허가를 취득했다. 즉, 미즈호은행과의 협력으로 휴대전화를 이용한 송금서비스인 '도코모 휴대폰 송금'을 단행한 것이다.
'도코모 휴대폰 송금'은 보내는 사람이 상대방의 전화번호와 휴대전화 명의의 앞 2문자, 송금액을 입력하는 것 만으로 송금을 할 수 있다. 입수자는 도코모로부터 통지를 받은 후, 전용사이트에서 수취방법을 선택하면 된다. 이런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일본 기업이 KT 뒤에 도사리고 있는 것.
이석채 KT 사장이 지난 3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것도 거슬러 올라가 짚어야 한다. 일본 NTT 도모코와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 사장은 "국외에서 KT는 적극적으로 사업 기회를 발굴하겠다"며 "해외 시장 개척과 관련해 NTT 도코모와 함께 협력하는 것이 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시각 SK그룹은? 금융업 관심은 분명 있는 것 같은데
SK그룹 역시 금융 부문 진출에 관해 욕심이 없지 않다. 잘만 하면 야심찬 파트너로서 하나금융지주의 든든한 조력자로 함께 성장해 나갈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SK그룹이 과연 이 역할을 잘 해 나갈 수 있을지는 아직 100% 단언하기 어렵다.
우선 SK그룹은 지주사 전환 문제(SK C&C 문제)로 상당 부분 그 여파를 정리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사촌간 계열 분리 논란 역시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숙제다.
더욱이 SK그룹이 금융 컨버전스에 관심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역량 면에서는 확신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게 문제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놓고, 한때 SK그룹에서는 CNI파이넌스팀 등 여러 논의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인터넷전문은행에 미온적이고 국회도 12월 현재 아직까지도 관련 법안 정비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같은 논의의 수준과, 그 실효성 가동은 요원하다. 더욱이 SK그룹은 증권사를 갖고 있는 등 금융인프라가 없지 않으나, SK증권은 업계 순위 등의 면에서 하나금융지주에 큰 도움이 될 곳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결국 SK와 하나의 결합은 서로 상대에게 관심은 있으나 상대방이 하는 일에 대한 관련 노하우는 없는 파트너끼리의 결합으로까지 짠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 이런 파트너십은 SK가 장차 파트너로 잡을 은행과의 결전에서 상당한 불리요인이 될 수 있어 보인다. 특히, 문제는 기업은행이 지난 해부터 하나은행쪽을 추월한다는 등의 뉴스를 만들어낸 바로 그 경쟁자라는 데 있다.
지난 번 신한과의 경쟁에서도 확실히 밀렸던 하나금융지주로서는, 이번 문제에서도 악몽 재연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15일 KT와 도코모의 공시는 짧지만 심각하게 옛 상처를 후벼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