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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궁(宮)터 자리잡은 문인의 낙원

오세훈표 아트팩토리 실험으로 태어난 '연희문학창작촌'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2.08 09:25:19


[프라임경제] 서울 연세대학교 인근에 자리한 연희동은 조선 시대에는 연희궁이 자리하고 있던 명당이다. 지금도 연희궁길이라는 길 이름이 남아있는 이곳은 주거지역으로 인기가 높다. 이 연희궁터에 서울시가 문인들을 위한 창작 공간을 마련해 화제다.

연희동우체국 인근에 자리한 연희문학창작촌.

이곳은 대지 6915m²에 연면적 1480m². 4개 동에 집필실 20개, 휴게실, 미디어랩 등이 마련됐고, 마당엔 산책로도 조성돼 있다. 개관 한 달을 맞은 현재(11월 5일 개관) 각종 나무로 녹지 공간을 꾸민 도심 속 전원형 창작 공간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모델은 요코하마1929, 옛 관공서를 문인전용 공간으로 

   
   
2006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화려하게 서울특별시장에 등극한 오세훈 시장. 하지만 오 시장은 당선 이후에도 방송 출연 변호사로 인지도는 높았으나 행정 경험이 전무하고 전임 시장(이명박 대통령)이 남긴 각종 불도저식 정책의 뒤치닥거리를 하다 별 성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섞인 시선을 받았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자신이 지향점으로 내세웠던 문화 서울의 실현을 위해 오 시장이 착수한 것이 바로 서울시 아트팩토리(Art Factory) 조성 사업이다.

아트팩토리 사업은 이제는 용도폐기된 공간을 재탄생시켜 예술활동에 지원하는 공간재생 사업. 그 일환으로 올해 다섯 번째 들어선 창작 공간이 바로 연희문학창작촌이다.

현재까지 다른 시도에 들어선 차공연과 미술에 중점을 둔 여타의 다른 창작 공간과 달리 문학에 집중 지원하는 형태다.

이러한 사례로는 요코하마의 뱅크아트1929이 있다.

요코하마시는 1929년에 축조된 구 후지은행과 제일은행 석조건물을 예술문화 창조공간으로 활용해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요코하마시가 옛 건물을 활용하여 공간과 자원을 제공함으로써 예술가들과 일반시민들의 예술 창작활동을 지원한 사례는 서울시의 아트팩토리 의 정신적 사표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즉, 땅값이 비싸 보통의 방법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공간을 버려진 공간 재활용이라는 '역발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다.

연희문학창작촌의 터는 과거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있던 곳. 이 기관은 현재 올림픽공원으로 이전했고 그 남은 공간을 활용할 방안을 찾던 서울시에서는 고즈넉한 고급 주택 지역이라는 주변 상황을 십분 활용, 창작 공간에 목마른 문인들에게 이를 희사하기로 했다.

◆문인 위한 전용 공간 부족 상황에 희소식

문인들을 위한 공간은 그간 절대량 부족 상황을 면치 못해 왔다.

우선 부산의 '아트팩토리 숨 레지던스'나 인천의 '아트플랫폼 레지던스 프로그램' 등이 문인들을 일부 지원했지만, 이곳들은 문인들을 위한 공간이라기 보다는 시각예술이나 공연예술을 위한 지원기능의 색채가 더 짙었다.

문인들만을 위한 창작촌으로는 강원도 원주의 토지문화관과 인제 만해마을의 문인창작집필실 두 곳이 있다. 이곳은 집필실과 식사가 무료로 제공되고, 작가들은 창작에만 매진할 수 있어 이용한 문인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하지만 이 시설들의 수혜 대상은 한해 50명선에 불과했다.

화가들에게 아틀리에가 필요하고 댄서들에게 연습실이 필요하듯, 문인들을 위해서도 창작 공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게 중론이다. 문학 창작은 집중력이 필요한 업무라 일상적 공간에서 창작하기 쉽지 않기 때문. 하지만 과거 만해 한용운이 백담사에 틀어박혀 '임의 침묵'을 창작했던 시대와 달리 대 도심 혹은 도심에 가까운 곳을 오가며 창작하기를 원하는 문인들도 점차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런 여러 가지 측면을 만족시킬 만한 공간은 사실상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연희문학창작촌의 특징은 서울 시내에 위치해 지리적 접근성이 높다는 점이다. '끌림', '홀림', '울림', '들림'이라는 이름이 붙은 4개 문학동은 국내 작가용 집필실 17개, 해외 작가용 집필실 3개로 활용돼 문인 20명이 창작 작업에 구슬땀을 흘리게 된다.

   
  <사진=연희문학창작촌 시설 내부>  

집필실은 침대와 옷장이 있는 생활공간과 책상, 책장이 있는 집필공간으로 나뉜다. 샤워시설과 공동 거실, 주방은 각 동마다 배치돼 있어 공동 사용을 하게 된다. 이는 개인 작업 공간의 효율성 극대화로 인해 도외시되기 쉬운 문제인, 최소한의 소통과 교류를 담보하기 위한 배치로 풀이된다. 운동시설을 갖춘 '예술가 놀이터', '세미나실', '문학미디어랩실' 등은 각종 문학이벤트와 문화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아울러 이들 놀이터와 세미나실은 지역주민과 소통 공간으로 활용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리모델링부터 금전적 지원까지

   
  <사진=문학촌 전경>  
   
  <사진=오세훈 시장이 문학촌 개관에 참석해 제막식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문화국 등 유관부서 공무원들에 따르면 서울시는 서울시사편찬위원회가 사용하던 이곳을 작업장이자 보금자리에 걸맞도록 다시 꾸미고 유지하는 데 지속적인 지원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리모델링은 시에서 직접 진행했고, 내년도(2010년)의 지원 예산만 6억5000만원선이 예상된다. 이는 관리비와 사업비, 인건비 등이 모두 합쳐진 규모로, 입주 문인들의 부담을 없애고 지속적인 창작 활동 공간으로 유지하기 위한 유지비용으로 보인다. 이 예산집행과 운영관리는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위탁집행된다.

이런 배경을 밑천삼아 연희문학창작촌은 앞으로 세계적인 작가를 기획 초청해 국내 작가와의 교류를 지원하고, 창작과 연구활동을 통한 국제교류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독일의 안드레아스 글래저(Andreas Glaser) 입주 추진 건이 대표적인 사례. 등산소설 '촐라체'로 여전한 입담을 자랑한 소설가 박범신이 입주자로 이름을 올린 가운데,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로 유명한 은희경 작가 역시 세인들의 눈길을 모은다.

◆지역주민들 아직 몰라, '교류 활동'은 숙제

이러한 서울시의 창작촌 지원에 대해, 문학계는 물론 문화계 일반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문학이 많은 지원을 요하는 영역임은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풋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가시적 아웃풋이 바로 나올 수 있는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서울시의 이런 문화 지원 정책이 지자체장 교체 등의 상황과 무관하게 장기적 호흡으로 유지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울러,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 문제 역시도 향후 서울시와 창작촌 입주 문인들이 검토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서대문구 주민인 전모 씨(28)는 "개관한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동네에 문학창작촌이 있다는 것을 처음 듣는다"고 말해 이곳이 아직 지역사회와 소통이 없는 '섬'으로 남아 있음을 시사했다. 창작에 방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느 정도 교류 활동을 할지, 그리고 이런 활동을 통해 시민들로부터 혈세를 이곳에 지원하고 공간을 꾸려나가는 데 대한 공감을 얻어나갈지가 남아 있다는 것.

이러한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하고, 문학 발전에 디딤돌이 될 수 있을지, '오세훈 서울시'의 문화적 실험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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