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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법적고민'안긴 서울시 대여금고 압류

은행들 고뇌 끝 결단…사상최초 시도로 논란여지 다분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09.11.26 17:06:28
[프라임경제] 서울특별시가 지방세 고액체납자에 대해 '대여금고 압류'를 실시해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이번 조치의 법적 성격을 둘러싸고 시중 은행들의 고민이 깊었던 것으로 전해져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시, 기발한 착상으로 허 찔러

지방세 체납, 특히 그 중에서도 고액 체납은 어느 지방자치단체나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은닉재산에 대한 추적과 공매가 치열하게 전개되는데, 최근 골프회원권 압류 등 기발한 방법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런 중에도 이번 은행 대여금고 압류 추진은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실시한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시는 시중 은행들의 협력을 얻어 1000만원 이상 고액체납자들이 은행에 개설한 대여금고를 압류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번 압류를 위해 압류 전문공무원 및 자치구 세무공무원 등 약 100명을 동원했고, 이들이 약 1주일간(지난 20일까지 조치 완료) 은행 지점들을 돌면서 대여금고 압류 및 봉인조치를 실시했다는 게 은행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번에 대여금고가 표적이 된 것은 대여금고는 은행 직원들도 내용물을 모를 정도로 비밀스럽게 고가품을 보관할 수 있기 때문. 서울시측은 이런 공간을 압류수색하면 보석 등 고가품을 압류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체납세액 징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번 화제를 모았던 골프 회원권 압류 조치 등에서 한 단계 진화한 셈이다.

서울시는 우선 고액체납자가 대여금고를 갖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압류 추진을 한다고 은행에 직원을 보내는 과정을 거쳤다.

◆은행들, 고객 보호 강경 반응…법률자문 등 고민끝 결단

시중 은행은 한편 이같은 서울시의 착상에 상당히 당혹스러워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들로서는 고객들의 정보를 보호해야 하고, 이들이 믿고 맡긴 자산을 법적인 근거를 갖춘 경우가 아니면 내줄 수도 없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로서는 사상 처음인 이번 조치에 대해 내부 논란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특히, 대여금고는 이 자체가 물건이 아니고, 안의 물건을 결국 압류해야 하는 것인데 협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다만 두번째 논란에 대해서는 일선 지점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이 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대여금고에 대해 법원 영장을 받아 오는 예가 존재했다는 보고를 하면서 일찌감치 일단락이 됐다).

이렇게 대여금고를 이용하는 고객과의 마찰 등을 우려해 시중은행들은 대여금고 정보 제공에 난색을 표했으나, 서울시의 입장은 단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가 대여금고가 있는지 문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국세징수법 제27조.

이 법은 제27조(질문검사권)에서 "세무공무원은 체납처분을 집행함에 있어서 압류할 재산의 소재 또는 수량을 알고자 할 때에는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에 대하여 질문하거나 장부·서류 기타의 물건을 검사할 수 있다. 1. 체납자 2. 체납자와 거래관계가 있는 자 3. 체납자의 재산을 점유하는 자 4. 체납자와 채권·채무관계가 있는 자 5. 체납자가 주주 또는 사원인 법인 6. 체납자인 법인의 주주 또는 사원"으로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이를 근거로, 납세자의 정보에 대해서 은행이 과세관청에 그 사실을 제공할 의무가 있음을 '협조공문'으로 주지시켰다.

이에 따라  은행들로서는 정보 제공을 하고 이에 대한 압류가 진행된 것.

한편 이 공문을 받아든 은행들은 각자 은행이 평소 관계가 있는 자문 변호사나 로펌 등에 문의를 하거나 법무실이 이를 해석하는 등 부산한 과정을 겪었다.

A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변호사들이 이 공문을 자료 통보를 요청한 단순협조가 아니라 행정법학상 논의되는 '행정명령'으로 해석했다는 것. 

이에 따라 강제력이 있고 법원 명령과 동일하게 구속력을 갖는다고 해석, 결국 빗장을 열고 정보를 제공한 것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명제법 보호벽도 세무당국 힘 한수 아래?

하지만 이번 문제는 서울시로서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소임을 다한 성공 케이스지만, 행들에겐 상당히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는 후문이다.

보통, 은행들로서는 금융실명제및비밀보장에관한법률에 따라 검찰 등의 추적 공세도 법적인 절차를 근거와 요구하면서 이례적으로 응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조치는 사실상 실명제법상 예외 규정에 충족하는 방식으로 주력 공세가 들어온 것이 아니고 국세징수법상의 제출 요구권을 근거로 제시한 공문 형식으로 협조를 요구받은 것.

이는 B은행 관계자가 사견임을 전제로 한 발언인 "이른바 고액 체납자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소액의 세금을 체납한 일반인들에게까지 이러한 도깨비 방망이가 활용되는 물꼬가 터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는 말에 응축돼 있다고 하겠다.

더욱이 서울시 나름대로 근거를 구성하고 검토하는 절차를 통해 이번 은행들에 대한 압박이 이뤄졌겠지만, 은행들이 당혹스러워하는 부분인 전례가 없었다는 문제를 다루면서, 약간 수위 조절을 했으면 더욱 완벽했을 것이라는 점도 과제로 남는다. 법제처나 국회 입법조사처 등 서울시보다 법적 해석사항에 대해 권위가 있는 외부기관에 (시일이 더 소요되더라도) 자문을 구하고 이를 덧붙여 통보했다면 은행들이 각자 논리 구성을 변호사 등에게 부탁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을 점에서, 서울시의 태도가 지나치게 행정편의주의 아니냐는 우려 역시 제기가능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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