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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그간 중단됐던 지중화 사업(전선이나 전신주를 지하로 묻는 사업) 재개에 대한 합의가 도출된 지 불과 며칠 후인 18일, 전선의 도로 점용료 소송 결과가 서울시 패소로 나오면서, 서울시로서는 한전과의 샅바 싸움에서 일승일패를 주고 받은 격이 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서울시로서는 한전과의 협력 체계 재구축(혹은 압박을 통한 소정의 목적 달성) 구상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향후 도시 미관 개선에도 상당한 애로를 겪게 될 전망이다.
◆연이어 날아든 '지중화 재개 협상'과 '도로 점용료 無' 판결
한전측이 막대한 사업비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해 말 사실상 포기 선언을 하면서 중단됐던 서울시내 전주 지중화 사업이 최근 재개됐다.
서울시는 한전과 전주 지중화 사업의 비용 분담 등에 합의하고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고 16일 밝혔다. 전주 지중화 사업은 지상에 나와있는 전봇대와 전선을 지하로 옮기는 사업이다. 그러나 한전이 지난해 금융위기와 유가 상승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됐다며 중단 선언을 한 바 있다. 사실상 경영 적자에 따른 조치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1㎞당 15억원에 이르는 비용 부담 비율을 조정하는 데 따른 감당하는 데 대한 힘겨루기 면이 강했다는 평가다.
시와 한전은 최근 협상을 통해 비용의 절반씩을 부담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한전의 재무상태를 고려해 시내 전주 지중화에 소요되는 사업비 800억원을 시가 우선 지출하기로 합의했다. 한전은 대신 3년 후 비용의 절반을 시에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처럼 서울시가 한전에 대한 압박 공세에서 한판승을 거둔 불과 이틀 후 서울시에 뼈아픈 패소 소식이 전해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15부는 18일 서울시와 한전간의 고압전선 (도로) 점용료 소송 1심에서 한전측 손을 들어줬다.
한전은 그동안 서울시내 16만개의 전신주에 대해 도로 점용료를 냈지만 고압전선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없어 점용료를 내지 않았다. 즉 도로 위를 지나는 전선에 대해서는 도로 점용료를 물지 않았던 것.
반면 서울시는 도로 위 공간을 지나는 고압전선의 경우도 일종의 '자리사용'로 점용료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 군데를 특정해 제기한 일부 청구 성격이 강했던 이 소송이 만약 승소로 결론지어질 경우 서울시는 시내 전역에 설치된 전선으로 소송을 확대할 계획으로 알려졌고, 이 경우 소송가액은 1000억여원에 달한다.
1000억원대의 비용을 한전에 청구할 권리를 확인하는 이 소송에 일단 제동이 걸리면서, 사실상 도로 아래로 전신주와 전선을 묻게 하는 지중화 사업을 한전측의 거의 대부분 비용으로 처리하게 하려는 그림은 차질을 빚게 됐다.
결국 서울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비용 반분을 통한 지중화를 시도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서울시가 복지와 일자리 창출에 주로 초점을 두는 데에만 이미 금년보다 1.2% 늘어난 21조2853억원대의 2010년도 예산을 청구(11일)한 것을 감안하면, 돈을 쓸 데는 많고 나올 곳은 한정된 서울시로서는 상당히 아쉬움을 안을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 집권 이래 한강 르네상스와 디자인 서울 등 장기적으로 가야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이러한 상황이 길어지면 시민들의 '세수 부담'에 대한 불만이 제기될 여지가 높다는 점에서 재선 혹은 그 이후를 노리는 오 시장이나 그 부담을 뒷받침해야 하는 서울시로서는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해묵은 힘겨루기 소재' 문제에 '시장의 구상에 걸림돌'까지 '복합'
물론 이 지중화 문제와 그에 수반된 비용 처리 문제 등은 오 시장이 등극하기 전부터도 서울시와 한전간 이견이 있었던 부분이다.
대내외 경영환경은 악화되어 가지만 전기요금 인상 등은 극히 제한되어 있는 한전이 전기공급에는 별 지장이 없는 지상의 전기설비를 굳이 지중화 할 유인이 없기 때문인데, 한전과 협상을 통해 지중화를 일단 한 다음에도 서울시는 지중화에 수반되는 지상설비(배전함) 등에 대해서도 지화화 혹은 건물 지하로의 이전을 바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거리에 디자인 개념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지중화 사업에 따른 분전함 개폐기나 변압기 배전반 등 지중설비도 '눈엣가시'이기 때문.
서울시는 2005년에도, 한전과 함께 '4대문 안 지중설비 정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상의 각종 지중화 관련 설비까지 처리하는 안을 검토했으나 때도 약 30% 가량만 처리하고 유야무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점이 이번 시장 시대 들어 다시 불거진 것.
이는, '오세훈 서울시'가 최근 '보행자를 위한 도로' 조성을 위한 사업을 추진 중이고, '디자인거리 조성사업', '거리 르네상스 사업' 등 미관 개선 사업을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울시는 지난 3월 27일 남대문로 명동입구에서 을지로입구역~한국은행본관 550m 구간에 조성된 '남대문로 디자인서울거리 준공식'을 가지는 등 서울시 미관 개선에 열을 올리고 있다. 디자인서울거리는 공공의 영역인 거리에 토탈디자인 개념을 도입, 민간의 벤치마킹을 유도하는 것이고, 공공디자인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게 서울시측 구상.
'남대문로 디자인서울거리' 이전에도 '천호대로 디자인서울거리', 광진구 '능동로 디자인서울거리', 강남구 '강남구 디자인서울거리' 등도 추구됐다. 그런데 이 남대문로 디자인서울거리 사업만 해도, "외국인 관광객의 50% 이상이 찾는 명동입구라는 특성을 살린다"는 명분 하에 한전 분전함을 가로정비초소, 관광안내소와 공중전화 등과 함께 철거·이전 대상으로 초점을 둔 바 있다.
결국 오 시장이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내세울 만한 치적 중 하나인 '디자인서울'의 맥락에서도 한전과의 힘겨루기를 통한 협력 도출이 시급했던 것.
하지만 그 추진 경로 중 하나로 이용될 여지가 있었던 도로 점용료 비용 청구 방안이 1심이지만 일단 패소함으로써, 서울시로서는 지중화 사업에 대한 주도권 확보에서 일단 다시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갈 것으로 풀이된다. 여러 영역에서 협력과 긴장을 번갈아 주고받고 있는 서울시와 한전간의 업무협력관계가 오 시장의 디자인서울 구상이나 걷고 싶은 거리 아이디어 추진 속도와 비용 처리 면에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게 될 것으로 보여 눈길을 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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