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세계화’를 지향한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시드니 구상’이 발표되면서 금융, 특히 외환 시스템도 큰 변화를 맞게 됐다. ‘문민정부’에 의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기 위한 금융 개방이 서둘러 추진됐고 1997년 외환위기 과정을 겪으면서 들어선 ‘국민의 정부’(김대중 전 대통령 시대)는 특히 외환 자유화를 단행, 이전의 관리·규제망을 걷어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한지 10년만에 세계 경제는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게 됐고 이 여파가 우리 나라를 다시 덮치고 있다. 이 상황에서 10년 못지않은 난국 속에서 외환관리 체제는 어떤 새로운 전략을 펴야 하는지 살펴봤다.
한국 경제는 강요된 선택이기는 했지만 IMF 체제를 겪으면서 시장자유화와 금융시장 개편을 본격화했다. 국민의 정부가 외환 자유화 등 조치를 통해 한국 경제계와 세계 시장을 열어 놓으면서 한국 경제는 비로소 세계 금융자본주의 질서에 완전히 포섭됐다.
◆규제 약화된 가운데 외환 보유고 쌓기 골몰
국민의 정부 시대는 외환 자유화의 초석부터 매듭까지를 해결한 시기였다. 1999년 1단계 외환 거래의 전면 자유화가 선언됐고, 2001년에는 외환 거래의 전면 자유화가 단행됐다. 2002년 3월에는 각계의 건의를 받아들인 정부가 그때까지 남아 있던 각종 규제를 모두 걷어내는 규제 철폐가 이뤄졌다. 당시 재정경제부·금감위·한국은행·관세청·국세청 등과 외환은행 관계자 등이 참여한 ‘외환제도 선진화작업반’은 100여개에 달하던 외환 관리 규정 중 상당수인 66개 규정을 검토했다.이는 우리 나라가 외환거래 전면자유화 선언을 앞두고 불거졌던 ‘국부의 대량 유출’에 대한 염려를 불식시켰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환율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히 남았다. 특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지나면서 IMF 체제를 졸업했다는 자부심을 지니게 됐지만, 이 당시의 경험은 외환관리 체제에 큰 영향을 남겼다. 외환위기에서 외화 자유화와 시장 개방을 택한 것은 일부 알짜 한국 기업들을 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는 일각의 지적이 나왔고, 공적자금 투입이라는 초강수를 둬 상당수 은행과 기업들이 매각되는 것을 막았던 당국으로서도 트라우마로 남은 대목이다.
특히 이같은 위기는 외환보유고가 부족해 환투기 세력의 쉬운 공격 목표가 됐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공감대로 퍼졌다.이에 따라 204억달러의 사실상 텅빈 외환보유고를 전임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국민의 정부는 2002년말 1214억달러까지 쌓았고, 그 다음 정권인 참여정부 말까지는 2600억달러까지 보유고를 늘렸다.
◆통안채 증대 등 실질체질은 여전히 허약?
하지만 이같은 성장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외환보유고가 통화안정증권·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 급증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97년 말 204억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노무현 전 대통령 집권기인 2005년 봄(5월)에는 2057억6000만달러로 늘었다. 이때, 정부가 ‘환율방어’를 위해 발행하는 국채인 외평채도 14조원 증가했다. 그리고 2005년 5월 집계된 통안증권 잔액은 159조1000억원으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말(23조4709억원)에 비해 7배로 늘었다.
외환보유액 증가액이 통안증권·외평채 증가액보다 크기는 했지만 이는 미국 국채 등에 투자하면서 이자가 붙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통안증권은 나라빚이나 다름없다. 결국 외환보유고를 늘리기 위해 ‘비용 지출 부담’을 져 온 셈이다.
이런 문제는 현재 달러 약세 상황에서 외환 보유고를 늘리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달러 부동화 자금 때문에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출에 타격을 받는 것을 막는 방안으로 이를 외환보유고로 흡수해 쌓아두는 방안이 거론된다. 외환 보유고를 많이 쌓아두면 투기세력의 원화공격 등 공세에 대응해 사용할 ‘실탄’으로 든든하다는 이득도 있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외환보유고를 많이 쌓는 것은 그만큼 비용 지출이 따른다. 현재 경제위기 여파로 세수 감소 등이 우려되는 상황에 통안채 발행이나 이를 국채로 전환하는 문제를 선뜻 택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한국은행이 자체적으로 통안증권을 줄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곧 외환보유액 감소로 연결되고, 외환보유액 감소는 곧 외환시장 개입 중단을 의미한다. 한국은행 이성태 총재가 “스무딩 오퍼레이션은 어느 나라나 한다. 현재 환율의 쏠림 현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길을 한국은행이 택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따라서 외환보유고 확장은 그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인 논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부동화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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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외채 규제·달러화 의존 감소 등이 관건
결국 부동화된 달러 자금이 원/달러 환율 하락에 주는 영향을 줄이려면 불안정한 외국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게 관건이다. 불안정한 외국 채권이 빠져나가는 등 안정성을 무너뜨리는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외환보유고를 쌓을 필요성도 늘어나는 것이므로, 은행권이 도입하는 채권을 장기채권으로 대체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1997년말 638억달러이던 단기외채가 2002년말에는 482억달러대까지 떨어졌으나 2009년 6월말에는 1472억달러대로 폭증하는 등 단기외채가 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는 것.
최근 일반 시중은행들은 물론 외국계 은행 한국내 지점들에 대한 단기외채 도입에 관한 점검과 규제 등 금융당국이 외화 도입을 통한 유동성 확보보다 단기 외채 증가 방지로 외환관리 체제의 기본줄기를 바꾼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런 단기외채 규제론은 연세대 김정식 교수는 ‘자본이동의 반전과 한국의 정책대응방안’ 발표에서 “단기외채가 커지면 언제나 외환위기의 위험에 직면하게 돼 있다”고 분석하는 등 여러 논의를 통해 지지를 받고 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외환보유액을 축적하고 자본유입으로 인한 과도한 환율 하락을 시장개입으로 막아야 한다"면서 "금융감독을 통해 금융기관의 과도한 외환차입을 규제하고 파생금융상품의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국제 공조를 통해 신흥국 외환시장 안정을 노리고 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9월 30일 국제금융기구 차원에서의 신흥국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진 위원장은 ‘글로벌 위기 대응 : 금융정책대응 및 위기로부터의 교훈’ 국제컨퍼런스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 정부는 은행권의 외화차입구조를 개선하고 외환에 대한 건전성 감독·규제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면서도 “아시아개발은행 등 국제금융기구 차원에서 신흥시장의 외환시장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때 임시방편으로 사용된 ‘통화 스와프’과 유사한 상시 대응 체제를 논하자는 구상이다.
달러화 약세에 대비해 원화의 국제화 추진과 더불어 달러화 자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축소해 나가야 한다는 논의도 활발하다. 일례로 18일 금융연구원 장민 연구위원은 “달러화는 향후 에도 기축 통화의 지위를 유지하겠으나 그 위상이 점차 약화될 것”이라며 외환보유고에서의 달러화 자산 비중 축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 연구위원은 “달러화 약세가 지속될시 외환 보유고 유지 등에 필요한 외환관리 비용이 급등할 수가 있다. 향후 국제시장의 상황 변화로 해외자본이 빠르게 유출될 경우 환율 안정에만 초점을 맞춘 현재의 외환정책은 외화 유동성 수급여건을 급격히 악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외환보유고의 장기적인 확장, 단기적으로는 단기외채 규제·우리와 경제 규모나 수출위주 구조가 비슷한 싱가포르·타이완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과 공동 대응 체제가 외환관리 체제의 새 패러다임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여기에 달러화 자산을 중심으로 외환보유고를 짜는 구조 대신 다른 외화자산과 금 보유량을 점증시켜 나가면서, 우리나라 외환관리 체제는 국제협력과 다각화의 시대로 한층 업그레이드를 노릴 태세다. 이런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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