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우리금융지주가 최근 전무급 인사 한 명을 내칠 조짐을 보이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시중은행의 고위급 인사에 대한 단순한 하마평 차원이 아니라 외부 수혈 전문가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나게 됐다는 점에서 폐쇄적 문화의 폐단 사례로 받아들여지는 것.
더욱이 해당 인사가 평소 '미스터 쓴소리'로 꼽히던 인물이어서 직언을 하다가 유탄을 맞은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공필 박사, 전무에서 고문으로 사실상 좌천
금융가에서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는 최공필 박사가 우리금융지주로 영전하자 이팔성 회장이 연구 기능을 확대하려는 방증으로 해석돼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하지만 우리금융지주는 산하 연구소를 세우는 문제를 검토하다 결국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부서 조직으로 남기는 것으로 매듭을 지으면서 최 박사는 당초 기대보다 할 일이 크게 줄게 됐다.
이에 따라 전무에서 고문으로 직함도 '다운그레이드'됐다.
하지만 단순히 할 일에 따른 위상 조정이라기 보다는 우수 인력을 유치해 놓고 쓸 줄 몰라 사장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사고 있다.
최 박사는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거시계량경제)를 받았다. 대우경제연구소를 거쳐 금융연구원에서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경제예측 및 거시금융정책 분야를 담당했다. 더욱이 1997년 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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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최공필 우리금융지주 고문> |
즉 대중이 듣기 싫은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정부 정책과 반대되는 소신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일례로 참여정부 시절에는 "서울 강남으로 대표되는 집값 문제는 주택가격 차원이 아니라 교육과 같은 다양한 고급 서비스에 대한 공급문제들이 얽힌 복합적인 것이다. 왜 문제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소모전을 벌이는지 답답하다"고 강한 발언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참여정부 말기에는 국정원에 발탁, 경제담당 정보관(차관보급)으로 일하기도 했다. 껄끄럽지만 능력이 출중해 참여정부로서는 정부요직에 영입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읽힌다.
결국 민영화, 수익률 제고 등 과제가 다른 경쟁 금융지주보다 많아 고급 아이디어 창출 능력이 필요한 우리금융지주로서는 사실상 최상의 두뇌를 끌어들였던 셈이다.
◆인재라더니 면직 처분한 하나은행
하나은행은 "높은 평가를 얻고 있다"며 영입한 전문가를 1년만에 '아웃'시킨 바 있다.
2007년 10월 하나은행은 박이철 전 SC제일은행 글로벌마켓본부장을 자금시장본부장(부행장보)으로 영입했다. 당시 언론들은 하나은행 관계자가 내놨다는 "파생상품과 관련한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는 영입의 변을 전하기도 했다.
박 전 부행장보는 고려대를 졸업하고 퍼스트 시카고 은행, HSBC 서울지점 등 외국계은행에서 파생상품 딜러로 재직한 '파생상품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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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하나은행은 파생상품 투자 광풍 속에서는 전문가를 부행장보로 영입하는 등 열을 올렸다.> |
외부 전문가를 불러들여 잘 쓰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내는 사례는 민간 은행뿐만 아니라 감독기관에서도 발견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내 금융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금융감독원으로 초청한 윌리엄 라이백 전 금감원 특별고문(부원장급)은 불과 6개월 만에 한국을 떠나고 말았다.
금감원은 2008년 라이백과의 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해 결국 라이백 전 고문은 한국을 떠나게 됐다.
라이백 전 고문은 홍콩 통화감독청(HKMA) 수석 부청장을 지낸 바 있어 우리 나라 정책 틀을 다시 짜는 데 요긴한 조언을 들려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라이백 전 고문이 조직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서, 결국 어떻게 외부 인적자원 활용을 해 금융시장 새 틀을 짜고 금감원에 새 바람을 불어넣을지에 대한 이 대통령의 구상은 무산된 셈이다. 물론 오랜 타성에 젖은 조직이 외부 출신 인사를 은연 중에 따돌렸다는 풀이와 화려한 경력에 비해 열정 부족 등 태도에서 호감을 줘 녹아들어가는 데 실패한 개인 책임론 등 여러 시각이 당시에도 나와 어느 쪽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해외에서 전문 인력을 끌어들여 혁신을 해 보자는 이명박 정부의 발상이 설익은 꿈에 불과한 것처럼 외국 인재들에게 비치는 경우 상당히 오랜 시간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점에서, 틀을 그린 정부와 그를 맞이한 금융감독당국에 최종적인 책임 소지가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라이백 전 고문의 영입 목적으로 당시 관가, 금융권, 언론 등에서 언급하던 '동북아 금융허브 구축'이나 '은행권 리스크 관리 체제 정비' 등이 이때 미리 진행됐다면 2008년 가을 닥친 세계 금융위기에서 덜 타격을 받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이렇게 금융위기를 통해 정확한 판단을 할 고급 인재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외부 수혈 필요성도 같이 올라가고 있으나, 이처럼 용인술 실패가 여기저기서 노출되고 있다. 금융가에 이런 시행착오들을 교훈으로 삼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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