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행은 강 행장이 지난 번 첫 KB금융의 지주 출범 이후 회장직 경쟁에서 황 회장에게 석패한 이후 이뤄진 것이라 눈길을 끌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중징계에 불복하면서 황 회장이 오래 '직'을 유지했다면 지주와 은행 등 계열사 모두 부정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우려를 해왔다. 이번 사의와 강 행장의 대행직 부각으로 안정적인 위기 극복 리더십 효과를 볼 것이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열린 감각 갖춘 '국제신사' 정평
강 행장은 중학교까지 한국에서 지낸 것을 제외하곤 일본, 홍콩, 미국 등을 돌아다니면서 생활한 '코스모폴리탄'이다. 부친의 직업 영향으로 형제가 모두 해외 생활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된 것. 동생은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고, 누이 역시 재미 의사와 결혼했다.
이후 강 행장은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영국 BTC은행, 미국 씨티은행 등에서 근무하며 해외 감각을 키웠다. 국내에서는 도이치방크 서울지점 대표 등을 거쳐, 선진적인 외국계 금융체계가 몸에 뱄다는 평가다.
강 행장은 더욱이 '세븐일레븐(편의점 업체명. 7시부터 11시까지 일한다는 뜻의 별명)'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열심히 일에 매달려 신망이 두루 두텁다.
◆황영기 회장과 오랜 라이벌, 라스트맨 스탠딩에서 남아
<사진=강정원 국민은행장>
강 행장과 황 회장은 이미 라이벌 관계였다는 점에서도 KB금융 회장직 경쟁 전에도 여러 번 회자됐다. 두 사람은 1980년대 중반 영국 BTC은행 한국지점에서 함께 근무하면서 여러 모로 상관들로부터 비교대상이 됐다.
강 행장이 안정지향적이고 차분한 국제 신사 이미지였다면, 황 회장은 승부욕이 강한 점이 두드러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펼쳐진 첫 번째 대결(?)에선 강 행장이 완승을 거뒀다는 평이 우세하다. BTC은행 한국지점에서 강 행장의 입지가 굳어지면서 황 회장 내정자가 BTC를 떠났다는 소리가 나온 것.
하지만 황 회장 내정자는 곧바로 삼성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회장 비서실 국제금융담당 이사, 삼성전자 자금팀장, 삼성생명 전무, 삼성증권 사장 등을 거치면서 오히려 입지가 더 탄탄해졌다. 그러나 이후 황 회장은 우리은행장을 지내면서 파생상품에 투자 의욕을 불태웠고, 이것이 훗날 천문학적 손실을 만들면서 이후 KB금융 회장직으로 일하던 그를 끌어내리는 소재가 됐다.
이번에 황 회장과 강 행장은 지주회장직 경쟁에 이어 서로 바통을 주고받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강 행장의 안정지향적 성향이 국제금융 위기 직후의 분위기에서 더 어필하게 된 셈이 됐다.
◆서울은행장 시절 감사원 감사 수모, 황영기 회장과 동병상련?
그러나 이런 오랜 경쟁 이력과 함께 이사회에서 서로 치열한 대결을 벌인다는 일부 후문에도 불구하고, 강 행장 역시 당국의 징계로 자리를 떠나게 된 황 회장과 동병상련인 면을 갖고 있다.
강 행장은 국내 경험이 일천한 상황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서울은행에 행장으로 2000년 6월 부임해 하나은행과 합병할 때까지 행장으로 재직했다.
강 행장은 서울은행 근무 당시 세븐일레븐이라는 별명처럼 치열하게 근무해 어려운 은행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를 받는 등 수모를 겪기도 했다. 당시 판공비 사용 내역 등까지 뒤지는 감사 끝에(당시 사용액이 다소 많다는 논란도 있었으나 결국 이 부분은 업무상 필요한 골프 등으로 해명돼 문책 대상에서 제외됐다) 감사원은 예금보험공사에 경영정상화이행 양해각서(MOU)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 행장을 문책하도록 요청했다.
당시 서울은행은 MOU를 체결하면서 2001년말까지 자기자본비율(BSI)을 10.05%에서 10.5%로 올리기로 약속했으나 9.22%로 오히려 악화됐다. 1인당영업이익 목표도 2억원으로 정했으나 1억5천만원에 그쳤다.
더욱이 은행 매각을 앞둔 상황에서 기업이미지통합(CI)을 비롯한 사업에 92억원을 '낭비'하는 등 방만한 경영을 해왔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결국 예보는 강 행장에 대해 '임원 엄중 주의' 경고를 했다.
이 예보 징계는 '검사감독기구 징계냐'의 해석을 두고 그가 국민은행직을 연임하는 데에도 발목을 잡기도 했다. 심상정 전 의원 등은 이를 놓고 신랄하게 '불가론'을 펴기도 했다. 결국 당시 상황이 조금만 달려졌더라면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이나 황 회장처럼 '비운의 CEO'로 끝날 수도 있었을 뻔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기사회생했고, 결과적으로 첫 국내은행장 행장직 수행을 토대로 완전히 자리를 굳혀 이후 국민은행장직까지 승승장구했다.
◆서울은행장 시절 감원 악역, KB금융 수장으로선 '산타'될까?
KB금융은 현재 국내 1위 금융지주사로서 경쟁사인 신한지주 등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트 황' 시대를 겪게 된 KB금융의 운명은 강 행장의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황 회장의 중징계 국면에서 국민은행 주가가 엄청난 타격 없이 지나간, 이른바 'CEO 주가 현상의 실종' 이유를 강 행장 등 유능하고 탄탄한 받침목들이 있는 데서 찾기도 한다. 이에 따라 강 행장이 큰 진통없이 은행부문 수익 약화라는 대세 흐름 속에서, 은행업 비중이 극히 높은 KB금융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관심이 더욱 쏠리고 있다. 강 행장 개인으로서도 서울은행장의 마지막 업무를 직원 대량 구조조정 악역으로 끝낸 아픈 기억이 있고, 또 국민은행 부임 일성 역시 구조조정으로 노조의 만만찮은 원성을 들었던 만큼, 강 행장이 KB식구를 모두 안고 갈 수 있는 성적표를 연말에 일궈내는 데 주역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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