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건설업계는 어느 때보다 힘든 보릿고개를 지나고 있다. 국내 건설사들은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건설사記를 통해 국내외 건설을 주도하고 있는 건설 관련 업계 이야기를 논하고자 한다. 이번 회차는 '1세대 건설사'로서 자존심을 지켜오고 있는 한신공영 재기와 성장에 대해 살펴본다.
한신공영(004960)이 1997년 부도사태에 직면한 1차적 원인은 1994년 건설부동산경기 침체 여파로 비롯된 미분양 아파트 누적과 채산성 악화였다.
여기에 덕산그룹 부도로 인한 부채(390억원)는 물론 1997년 초 발생한 한보 부도사태는 금융권 자금회수 압박을 가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어음할인 기피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결국 한신공영은 1997년 5월30일 법정관리신청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한신공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법원 재산보전처분결정(6월12일)을 받았으며, 당좌거래 재개로 당시 진행 중인 관급공사와 협력업체 부도어음 변제요구도 해결했다.
특히 회사정리절차 개시 결정 이후에 제기된 M&A 소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기에 충분했다. 당시 인수 희망기업으로부터 제안서를 접수한 결과 건설 부문 우선협상대상자로 코암시앤시개발이 선정됐다.
이에 1976년부터 26년간 코암시앤시개발과 협성토건을 경영했던 최용선 회장이 한신공영 건설부문을 본격 인수(2002년)했다. 기업 부도라는 암초에 직면한 이후 어려운 나날을 지탱해 오던 한신공영에게 새로운 역사가 도래한 순간이었다.
◆추락 이후 '각고의 노력' M&A로 새로운 도약 예고
"최 회장은 세간의 우려에 흔들리지 않았다. 취임식에서 'Again 한신'을 천명하면서 반세기 역사에 부합할만한 명성과 전통을 재건시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했다. 특히 아파트 건설명가라는 위상을 비춰볼 때 '재도약은 분명하다'라고 자신했다." - 한신공영 관계자
판단은 적중했다. M&A 이후 부채 비율이 100% 대로 감소했으며, 주가도 연일 상승세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2002년 재출범 이후 매년 괄목할 경영성과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재도약의 빛나는 역사'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
최 회장은 건설 분야에 있어 풍부한 경험을 갖춘 태기전 당시 전무(현 부회장)와 정영택 상무(현 부사장)를 필두로 부도 기업 이미지를 탈피, '어게인 한신'을 위한 진군 채비를 갖췄다.
태기전 부회장은 건설업계 최장수 CEO로 최 회장과 전북임실에서 같이 나고 자란 고향 선배사이다. 협성토건 시절부터 경영을 함께 도맡은 관계로 2021년 한신공영 경영 일선에 물러나기까지 살림살이를 책임졌던 인물이다.
본사도 오랜 역사가 깃든 서초 잠원동 한신빌딩(2003년)으로 이전하면서 재건 의지를 굳건히 했다. 노력이 통해서였을까. 한신공영은 당시 최고 수주 실적(1조5540억원)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반세기동안 쌓아온 기업 역량을 통해 재도약 토대를 튼튼히 구축한 것이다.
이런 한신공영은 성장을 거듭하기 위해 2003년 아파트 브랜드 '한신休플러스'를 론칭하기에 이르렀다. 업계 뿌리 '주택 부문'에서의 획기적인 변화를 꾀한 것이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브랜드 아파트 선호 현상이 뚜렷해졌다. 이런 니즈와 트렌드를 반영, 기존 브랜드 '休'에 '플러스'를 더해 '한신休플러스'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이는 '인간(人)과 자연(木)이 함께 편안히 쉴 수 있는 주거 공간'이란 뜻을 의미한다. 아울러 경영철학인 효(孝) 사상과 행복, 건강, 사랑, 친환경 등을 더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 한신공영 관계자
한신休플러스 도입은 성공적이었다. 수요자에게 큰 인기를 끌면서 전국적으로 입지를 넓혀나갔다. 특히 한신休플러스를 필두로 한 도시정비 수주 경쟁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이를 통해 민간사업 부문 수주 1조1734여억원을 기록, '주택 건설 명가' 위상을 재확인시켰다.
한신공영은 이에 그치지 않고 2004년 7월 태 전무를 대표이사로 선임하면서 전문경영인체제 기반을 구축했다. 아울러 국내 건설 수요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베트남 하노이 HH4주상복합 빌딩. ⓒ 한신공영
실제 2004년 3월 베트남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시장조사와 함께 해외 수주에 돌입했다. 이후 8월 하노이에 25층 규모 HH4주상복합 빌딩 설계감리 기술계약을 체결, 베트남 건설 시장에 있어 연착륙 토대를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재건축·재개발 수주 △해외 진출 △공공 부문 확대 등 사업 다각화에 집중한 결과 2005년 수주 실적 1조7182억원, 매출액 6864억원, 당기순이익 약 310억원을 기록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위기를 기회로" 명실상부 우량 건설기업 도약
최 회장 특유의 날카로운 판단과 경영 능력은 2008년 도래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길 수 있는 원동력으로 꼽힌다.
"2000년대부터 도래한 건설시장 침체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내고자 포트폴리오를 비교적 안정적인 공공사업 위주로 전환하는데 주력했다. 실제 2003년 45% 수준 공공공사 비중을 2010년 92%대까지 끌어올려 국내 건설사들이 주택경기 침체로 휘청거릴 때도 안정된 실적을 이어갔다." - 한신공영 관계자
이런 공공사업에 집중한 결과 경제 불황에도 불구하고 공공공사 수주액 1조원 돌파 기업 대열에 올라섰다. 시공 순위 역시 2008년 26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2009년 최초 '수주 2조원 시대'를 열기에 이르렀다.

자체사업으로 탄생한 울산 새천곡 한신휴플러스. ⓒ 한신공영
여기에 베트남 사업도 개화기를 맞으면서 회사 성장을 뒷받침했다. 무엇보다 2011년부터 진출한 주택 자체사업은 회사 성장을 획기적으로 상승시킨 원동력으로 꼽힌다.
실제 한신공영은 울산 새천곡 한신휴플러스 신축사업(527가구)과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시 1-3생활권 L3블록(696가구)에서 자체사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에 힘입어 △김천혁신도시 △시흥 목감지구 △시흥시 배곧신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2-1생활권 △행정중심복합도시 2-4생활권 등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거뒀다.
이에 그치지 않고 1급 건설사로의 도약을 위해 주택 분야에 있어 또 다시 도전을 감행했다. 기존 아파트 브랜드 '한신休플러스'를 '한신 더 휴'로 새롭게 론칭한 것이다.
"'한신 더 휴'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된 가장 편안한 생활공간을 넘어 수준 높은 품격, 더욱 여유로운 공간, 특별한 휴식을 선사한다는 뜻이다. 트렌드, 고객 니즈에 걸맞게 브랜드를 새 단장하겠다는 구성원들의 적극적 의지표명이었다. 성과는 뚜렷했다. 이에 힘입어 2021년 브랜드를 재차 리뉴얼, '주택 명가'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다." - 한신공영 관계자
이런 성과를 토대로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에서 2016년 18위를 기록했으며, 2018년의 경우 최고 기록인 15위를 차지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20위권에 랭크, 위기를 극복한 명실상부 국내 굴지의 우량 건설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신공영은 현재 '오너 2세' 경영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2017년 최 회장 장남 최문규 부사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회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최 대표이사는 지속 가능 경영을 위해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적극 나서면서 신사업과 해외사업으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물론 이런 한신공영도 최근 지속적인 실적 하락 탓에 재무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 73년간 겪은 수많은 위기와 이를 통해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재차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이처럼 1950년 영등포 허름한 주택에서 등장, 오늘날 매출 2조원대 선진 글로벌기업으로 도약한 한신공영 역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과연 한신공영이 탄탄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차례 더 도약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