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기업해부] CJ제일제당 ①태동과 성장…"설탕에서 '퍼스트 무버'까지"

고 이병철 회장 신념 바탕 설립, 식품‧바이오 전방위 영향력

김수현 기자 | may@newsprime.co.kr | 2023.04.27 11:58:26
[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몰락의 나락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산업을 이끄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파악해보는 특별기획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CJ제일제당' 1탄 태동과 성장에 대해 살펴본다.

◆ 태동 이유 '생활필수품 국산화'…故 이병철 신념  

"글로벌 전략 제품을 중심으로 해외사업을 확대하는 게 올해 첫 번째 전략이다. 미국, 유럽, 동남아시아와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반적으로 K-푸드를 확장하겠다."

국내 식품기업의 '퍼스트 무버'. 70여년간 국내 식품 산업을 이끌고 있는 CJ제일제당의 올해 전략이다. 오랜 역사와 제품 역량에서 '시장의 기준'을 제시하며 유통계 전방위적인 영향력도 커졌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세계적인 식품기업이자 경쟁사인 일본기업 아지노모토의 아성을 넘어섰다.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에도 불구, 글로벌 경쟁력과 신성장 동력 발굴에 매진하며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고 이병철 회장은 전쟁 직후 정부가 시장 안정과 민생을 위해 당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소비재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점에 주목, 제일제당을 창업했다. ⓒ 연합뉴스


태동은 삼성그룹 창업주 故 이병철 회장의 포부와 결단이다. "해외에서 대다수 수입되는 '생활필수품'을 우리 손으로 직접 제조하겠다" 단순한 것 같지만 당찬 결심은 1953년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 창업으로 이어졌다.

이 회장의 선택과 집중은 식자재였다. 그는 전쟁 직후 만성적으로 부족한 물자와 외국으로부터 원조 자금이 쏟아지고 있는 점을 파악했다. 정부가 시장 안정과 민생을 위해 당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소비재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실제로 제일제당은 설립 1년 만에 흑자를 내면서 당시 국내 설탕 소비량의 33.3%를 공급했다. 이는 삼백 산업의 모태가 되기도 한다. 당시 수입 설탕은 1근당 300환에 육박했는데, 설탕값을 1근당 100환으로 정하고 '백설표'라는 이름도 붙였다.

문제는 제당 사업이 활황기가 되고, 정부의 수입대체공업육성 정책과 맞물려 경쟁자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이 회장은 여기서 두 번째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식품산업의 전방위적 다양화다. 1956년 통조림 공장을 인수하고. 1958년엔 밀가루, 1963년 조미료, 1973년 동물 사료에도 손을 뻗었다. 조미료 사업에서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는 '미풍'은 대상의 '미원'과 치열한 마케팅전을 벌이기도 했다.

1978년 식품 연구소를 설립하고 '다시다', '식용유' 등 기초식품을 만드는 회사로 성장한 제일제당은 다시 세 번째 선택을 하게 된다. 한국 내에서 생산시설과 인프라가 전무하다시피 한 제약 분야다. '인터페론' 대량생산 기술개발 및 제약 공장을 준공, 의약품 사업을 위한 면모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게토레이'를 시초로 음료 사업을 확장한 뒤 인도네시아에 첫 해외법인도 세웠다. 

◆ 2세 경영…식품‧바이오 넘어 종합그룹 CJ 

이병철 회장에 이어 제일제당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이는 이재현 회장이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 회장의 장손이다. 이재현 회장은 공격적 경영으로 매출 2조원 안팎의 식품기업이던 제일제당을 삼성그룹에서 분리한지 20여년 만에 엔터테인먼트 홈쇼핑 물류를 아우른 CJ그룹으로 키워냈다.

물론 쉽지 않은 풍파도 있었다.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가 나타나면서 소비심리는 위축됐고 국내 경기는 얼어붙었다. 제일제당 역시 위기를 극복할 결단이 필요했다.

제일제당은 90년대 들어 일찌감치 국내 식문화를 선도하는 먹거리 개발에 공을 들였고, 바이오 산업 확장에도 나섰다.ⓒ 연합뉴스


제당 부문에서 시작한 제일제당은 90년대 들어 미래 성장 동력을 얻기 위한 외연 확장에 매달렸다. 일찌감치 국내 식문화를 선도하는 먹거리 개발에 공을 들였고, 그렇게 탄생한 HMR 브랜드가 '햇반'이다. 1996년 12월에 태동한 '햇반'은 국내 상품 밥 시장에 한 획을 긋는 제품으로 인식된다. 

제약‧바이오 사업 부문도 강화에 들어갔다. 수입 자유화 조치(1983)와 물질 특허 제도(1987년)가 등장하며 해외 기업들과의 기술력 경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1994년 녹농균 백신 세계 최초 개발을 기반으로 1999년 바이오 사업 부문을 신설하고 생산기술센터도 설립했다. 유풍 제약에 이어 2006년 한일약품을 인수하면서 제약사업도 키웠다. 

여기서 이재현 회장은 세 번의 선택을 통해 성장한 제일제당을 변화시킬 새로운 선택을 하게 된다. 설탕에서 시작한 기업의 이미지를 벗어나 종합그룹으로의 전략이다. 이를 위해 '제일제당'에서 'CJ'로 사명을 바꿨다. 1995년 스티븐 스필버그 등이 설립한 드림웍스에 투자했고, 1996년 국내 최초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를 설립했다, 설탕 제조사에 불과했던 CJ는 식품·바이오 유통·물류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산업까지 영위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아픔도 있었다. 2018년 재무개선을 위해 HK이노엔(구, CJ헬스케어)를 매각, 시장에서 철수했다. 현재는 전통적인 제약사업이 아닌 차세대 바이오산업을 비전으로 그린‧레드‧화이트 바이오를 육성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지난 주주총회를 통해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시장에선 핵심 제품군을 앞세워 K-푸드 저변을 넓힘과 동시에 바이오 신성장 사업 가속화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이재현 회장의 두 번째 선택은 해외 진출이다. 중국·베트남·러시아·브라질 등 식품업체를 잇달아 인수하며 사업 파이를 확장했다. 2018년 11월에는 미국의 대형 식품업체인 '슈완스'를 2조원에 인수했다. 이로써 미국 전역에 유통 인프라와 연구·개발(R&D) 역량을 갖췄다는 평가다.

특히 미국은 비비고 플랫폼을 활용을 극대화해 만두 1위 등 아시안 카테고리 내 압도적 시장 지위를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슈완스'와의 통합 시너지 창출을 통해 만두와 치킨, 햇반 등 글로벌 전략제품의 대형 유통채널 입점을 가속화 하고 성장과 수익 극대화를 추진한다. 

지난달 정기주주총회에서 최은석 CJ제일제당 대표는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시장에선 핵심 제품군을 앞세워 K-푸드 저변을 넓히겠다"며 "바이오 사업에 대해서는 '스페셜티 아미노산 제품' 판매 확대와 화이트 바이오·바이오 파운드리·레드 바이오와 같은 신성장 사업 가속화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