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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사죄 없는 일본의 행동은 인류 보편적 가치와 부합하지 않는다

 

전상천 뉴스노믹스 대표 | press@newsprime.co.kr | 2023.04.18 15:18:00
[프라임경재] "역사의 노를 젓는 것은 대중의 몫이지만, 키를 잡는 것은 지도자의 몫"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향으로 구성원들을 이끌어 나가는 정치지도자의 능력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키를 잡은 선장이 제대로 된 방향을 알고 있다면 배는 마침내 풍랑을 뚫고 목적지에 도착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영영 망망대해를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당연히 키를 잡은 이가 선박의 운명에 미칠 영향력은 노를 젓는 대중들의 영향력에 비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키를 잡은 이가 그 선박의 주인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와 민주적 결정, 그리고 정치지도자의 능력과 지혜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가 단순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올해 삼일절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는 민주주의와 정치지도자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현재 우리나라가 북한의 핵을 포함한 복합위기로 인해 심각한 안보의 위기상황에 처해 있고, 이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한미일 간 3자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는 최근의 동아시아 국제정세도 설명했다. 비록 에둘러 표현하기는 했지만, 대통령이 언급한 복합위기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중국의 팽창주의적 태도로 인해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에 가해지고 있는 긴장감의 고조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0여년 전에는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한 식민지배자였던 일본이 현재는 북핵과, 옛 영광의 회복을 원하는 러시아, 그리고 중국의 해양진출 의도 대한 위협을 공유하고 이에 함께 대응해 나갈 파트너가 됐다는 것이 현재 국제정세에 대한 대통령의 상황인식으로 해석된다. 

방일 중에 게이오대학 강연에서 인용했던 "용기는 생명의 열쇠"라는 말은 그러한 대통령의 상황인식이 문자 그대로 직접 드러난 표현이었다. 하지만, 대중들의 생각은 대통령의 이러한 야심찬 방향설정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갤럽이 3월28일부터 30일까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평가가 2022년 11월 이후 20주 만에 다시 30%로 하락했으며, 부정평가는 20주 만에 다시 60%로 상승한 결과가 나타났다.
 
부정평가의 근거로 외교와 대일관계 및 강제동원 배상 문제를 꼽은 응답자가 각각 21%와 20%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험 및 자질부족(5%) △소통미흡(5%) △독단적·일방적(4%) △통합·협치 부족(2%) △발언 부주의(1%) △국격훼손·나라망신(1%) 등이 꼽혔다. 대통령의 일본방문과 그 결과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은 국민들의 의견을 살피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르는 것을 선택했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 △지소미아 정상화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배상방식 제안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용인 △일본 수출규제 WTO 제소 철회 등과 같은 조치를 일본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과 전문가들조차도 한국이 이렇게까지 양보할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을 정도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초계기 사건에 대한 사과요구 △독도 문제의 국제적 분쟁화 유지 △화이트리스트의 미복권 △후쿠시마산 수산물에 대한 금수조치 해제요구 등과 같이 지극히 일본 중심적 반응뿐이었다. 

우리나라 대중들은 이러한 결과를 이미 예측했었던 듯하다. 대통령의 방일이 있기 전인 3월 초 한국갤럽이 진행했던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인 세 명 중 두 명이 '일본의 태도변화가 없다면 서둘러 한일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대다수인 84%가 '현재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 등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략 6분 가까이 진행된 모두발언 뒤에 인터뷰 및 대화 형식으로 진행된 강연 중에는 다음과 같은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고도 전해진다. 우선 일본이든 한국이든 어느 쪽에서 먼저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첫 걸음을 떼었는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과거의 제국주의로 인한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보다는 오히려 당시의 잘못된 행동을 숨기고 그 시절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윤대통령이 여러 차례 반복해서 강조해 오고 있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다음으로 한국과 일본은 모두가 높은 기술수준에 도달해 있으므로 북한이 30여 년 넘게 노력을 기울여 이룬 핵개발의 성과를 마음만 먹으면 수 십분의 일로 그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발언이었다. 청중의 대부분이 학생들인 자리에서 과연 이러한 내용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기술자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은 단 한 대의 기계를 망가뜨리고, 의사 한 명의 잘못된 판단은 단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지만, 최고 정치지도자의 잘못된 판단은 온 국민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행보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전상천 뉴스노믹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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