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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경의 문해력 칼럼] 글에 관한 정의

 

이가경 문해력 스피치 융고 대표 | bonicastle@naver.com | 2023.04.10 10:06:54
[프라임경제] 예컨대 글은 몇 가지 정의로 나눌 수 있다. 

하나, 글은 프레임에 갇힌 기호다. 프레임에 갇혀있다는 것은 그만의 형태가 있고, 한계가 정해져 있으며, 어떤 시선에 의해 고정돼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글의 이해와 판단은 프레임의 크기만큼만 적용된다. 심연에 가닿는 글을 쓰기가 어려운 것도 그만큼의 크기와 깊이를 갖춰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의 프레임은 단하나의 상념에 불과하다. 글의 편린들로부터 전체의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다독을 권장하려는 것은 여러 생각을 접해 다양한 프레임을 가지는 것에 있다. 한편의 글이 하나의 세계관을 표현한다면 다독은 그야말로 다채로운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글도 다양하게 접할수록 거대한 사고력이 형성된다. 

특히 글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넘어 자의적으로 사고할 때 비로소 즐거워진다. 글을 쓰거나 읽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저만의 사고력을 시시각각 활용한다. 그럼으로써 남다르게 보고 생각하게 돼 이해와 판단의 폭이 절로 확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는 글을 읽거나 쓸 때 기호의 의미를 분석하고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그 탓에 글의 묘미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문맥을 이해하지도 못해 기호를 오역하게 된다. 그야말로 안타까울 정도로 글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글을 잘 활용하려면 먼저 다양한 프레임을 확보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 방법은 많이 읽고 또한 깊게 생각하려는 의지에 달려있다. 그래야 각각의 프레임 또는 세계관을 조합하고 연결하는 힘을 갖추게 된다. 그러면 서로 다른 의견을 포용할 수 있고, 중립적인 태도를 갖게 해 분명한 경계를 짓지 않게끔 한다. 다양하고도 대립된 생각을 받아들일수록 생각은 외려 한층 더 성숙해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어떤 거대하고 깊은, 경계 없이 확장된 사유와 지성의 영역일 것이다. 통찰력은 그런 방식으로 탄생하는 법이다.

둘, 글은 지각(知覺)의 수단이다. 글이야말로 조작된 문자체계이기에 어느 독자에게는 종종 불편하거나 어긋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양하고 폭넓은 시야로 애써 글을 읽어나가야만 한다. 왜냐하면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좋은 글과 그렇지 못한 글의 기준은 일단 수많은 글을 접한 후에야 설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글도 물건처럼 좋으면 취하고 싫어서 외면해버리면 어느새 편협한 사고가 자라 편견에 휩싸이기 쉽다. 그렇게 되면 저만의 고정관념으로 세상의 사물을 바라보고 사람을 상대하게 된다. 불화와 대립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므로 어떤 글을 읽건 간에 호불호의 판단은 되도록 유보하는 것이 좋다. 다독을 하고서 제대로 된 기준이 서고, 옳고 그름이 분명해질 때에 글을 판단해도 늦지 않다. 

셋, 글은 생각과 생각이 만나는 장이다.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이지만 글을 읽는 것은 다른 이의 생각을 접해보는 일이다. 내게 좋은 영향을 끼치건 그렇지 않건 간에 타인의 생각을 접해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타협하는 것은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필수적인 역량이기에 그렇다. 

다양성의 공존이야말로 개개인의 이해와 인정 사이에서 밀접하게 연결돼있다. 그럼으로써 건강하고도 평등한 사회가 구축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써서라도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다양한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무수한 글을 접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와 다른 것을 재단하거나 폄하하지 않도록 혹은 곡해하지 않도록 그 차이를 인정하려는 것이다. 결국 모두를 알아가는 과정이 돼 사람과 세상을 포용할 수도 있게 한다. 

그러고 보니 글에 가까울수록 입이 절로 닫히는 것은 그 사이에 어떤 말도 필요 없기 때문일 것이다. 글만으로도 얼마든지 당신과 내가 연결될 수 있다.


이가경 문해력 스피치 융고 대표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마흔의 온도> 저자, 필명 이다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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