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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은행권 가상자산 계좌 발급 확대? '첩첩산중'

금융당국, 은행 경쟁 촉진 일환 논의…자금세탁 방지 취지 무색 비판

장민태 기자 | jmt@newsprime.co.kr | 2023.03.17 10:44:02
[프라임경제] 은행권 경쟁 촉진 일환으로 비은행권 가상자산 실명확인 계좌 발급이 논의되고 있지만,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법 개정이 우선되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자금세탁 우려 등 걸림돌도 산재해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2일 은행권 경쟁 촉진을 위해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아울러 과제별로 세부 주요 이슈를 정리하고 개선방안 모색을 위해 TF 내 실무작업반을 마련했다. 이 실무작업반 1차 회의에서 논의된 과제 중 하나가 '가상자산 실명확인 계좌 발급 기관 확대'다. 

'은행권 경영·영업관행·제도 개선 TF 실무작업반에서 가상자산 실명확인 계좌 발급 기관 확대가 논의됐다. = 장민태 기자


우선 실무작업반은 이번 과제에 대해 논의만 했을 뿐, 금융당국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실무작업반에 참석한 인원들을 살펴보면 사실상 금융당국 입장으로 받아들여진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이 주재했고, 금융위를 포함해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등에서 7개 국·6개 과가 참여했다.

실무작업반에서 논의된 내용은 은행 외 금융회사에서 가상자산 실명확인 계좌를 발급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것이다. 현행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에 따르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원화로 가상자산을 매매할 경우 은행을 통한 가상자산 실명확인 계좌가 필요하다. 직접 계좌를 발급할 수는 없다.

이에 따라 원화 매매를 제공 중인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는 모두 은행과 실명확인 계좌 제휴를 맺고 있다. 현재 국내 5대 거래소는 △케이뱅크(업비트) △농협은행(빗썸) △카카오뱅크(코인원) △신한은행(코빗) △전북은행(고팍스) 등과 제휴를 맺고 있다. 이들은 공생관계다. 가상자산거래소는 은행과 제휴를 해야만 원화 매매를 제공할 수 있고, 은행의 경우 이용자 확보와 함께 수수료 이익을 벌어들일 수 있다.

실무작업반은 비은행권 실명확인 계좌 발급의 필요성으로 은행권 경쟁촉진과 소비자 만족도 제고를 꼽았다. 기존 은행권과 비은행권 간 경쟁을 붙여 거래 수수료율을 인하하겠다는 게 골자다.

실무작업반은 해외사례로 미국 온라인 증권사 로빈후드(Robinhood)에서 이용자에게 자체 증권계좌를 통해 가상자산 거래 서비스를 제공 중인 점을 거론했다. 아울러 증권사는 은행과 달리 투자 서비스 및 STO(토큰증권발행) 등과 연계한 신규 서비스를 확대할 수 있다는 게 실무작업반 주장이다.

제1차 실무작업반 논의 내용. ⓒ 금융위원회


이같은 실명계좌 발급 기관 확대는 사실 은행권과 가상자산 업계 모두 이전부터 환영하던 사안이다.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는 "원화 거래를 못 하게 되면 거래량이 급격하게 빠지기 때문에 거래소 입장에서 실명계좌 제휴는 절실하다"며 "하지만 계약기간이 끝나면, 은행에서 다시 계약을 맺어줄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은행의 경우 계약을 안 맺어도 충분히 수익을 벌어들일 수 있지만 거래소는 그렇지 않다"며 "계약과 관련해서 사실상 은행이 '갑'에 위치하기에 발급 기관 확대를 기대한다"고 첨언했다.

하지만 이들 논의가 실제 이행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금법 개정을 비롯해 걸림돌로 작용할 요소가 산재해 있어서다. 대표적인게 금융당국에서 주도한 '1사 1은행' 룰이다. 따로 정식으로 규제한 적은 없지만, 업계에선 어길 수 없는 암묵적인 룰이다.

문제는 1사 1은행 룰이 금융당국의 '자금세탁 우려'에서 퍼지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실무작업반 논의에서도 거론됐다. 실무작업반은 "증권업은 금융정보분석원의 자금세탁방지(AML) 외부 감사에서 은행 대비 낮은 평가를 받았다"며 "견고한 자금세탁 방지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소형 증권사들의 참여는 부적절하다"고 언급했다.

다시 말해 비은행권에 가상자산 실명계좌 발급 허용으로 '1사 1은행' 룰이 깨지게 될 경우, 금융당국의 자금세탁 방지 취지가 무색해진다. 이에 따라 이같은 주제를 논의한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게 금융권 중론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국민적 요구에 따라 은행 경쟁 방안을 급하게 논의되다 보니 실제 이행 가능성 낮은 주제들이 다뤄진 것 같다"며 "가상자산 실명계좌 발급 기관을 확대하는 건 오히려 은행에서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가상자산 자금세탁의 1차 책임은 은행에 있다고 떠넘겼는데, 그 큰 리스크를 짊어지면서 수수료 이익에 눈독을 들일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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