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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수다] 패밀리 룩 같지만, 그냥 '현대 룩'이라 불러주자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3.03.10 09:20:39
[프라임경제] 지난 2018년 즈음에 현대자동차는 모델들이 비슷한 얼굴을 가지는 '패밀리 룩' 탈피를 선언했습니다. 패밀리 룩이 틀에 박힌 진부한 클리셰(Cliché)에 불과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는데요. 실제로 과거 패밀리 룩이 강조될 때는 자동차의 크기와 생김새만 다를 뿐 사실상 모두 비슷한 혹은 똑같은 디자인을 가졌었죠.

물론, 패밀리 룩에도 장점은 있습니다. 브랜드 고유의 패밀리 룩을 통해 멀리서도 한 눈에 수많은 브랜드들 사이에서 "저거 현대차네~"라고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요.

패밀리 룩 대신 현대차가 꺼내든 건 '현대 룩(Hyundai Look)'이었습니다. 말장난처럼 비춰지지만, 각각의 모델마다 고유한 개성과 역할을 갖도록 디자인하겠는 의지를 담았는데요.

현대차는 현대 룩을 체스에 비유했습니다. 그만큼 현대차 모델들이 체스판 위의 △킹 △퀸 △나이트 △비숍처럼 모두 모이면 한 팀이 되지만, 각자 있을 때는 각자만의 역할과 그 역할에 맞는 형상을 지니길 바라는 마음이었던 겁니다.

이름만 빼고 모든 걸 다 바꿨던 신형 쏘나타. ⓒ 현대자동차


이에 맞춰 디자인의 감성적 가치들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겠다며 새로운 디자인 철학도 준비했는데요. '감성을 더한 스포티함'이라는 뜻의 '센슈어스 스포티니스(Sensuous Sportiness)'입니다. 참고로 센슈어스 스포티니스는 △비례 △구조 △스타일링 △기술 4대 요소를 근간으로 합니다.

현대차는 센슈어스 스포티니스를 적용한 신차들을 줄줄이 선보였습니다. 팰리세이드(2018년 12월)를 비롯해 △쏘나타(2019년 3월) △아반떼(2020년 4월) △투싼(2020년 9월) 등을 출시했는데요.

안타깝게도 이때의 '현대 룩' 전략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에게 현대차의 패밀리 룩 탈피 선언은 '신차가 나올 때마다 매번 디자인이 바뀔 거야'라는 의미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해 현대차 왈 "내 맘대로 디자인 할 거야"처럼 말이죠. 

그렇게 모델마다 다른 디자인을 추구하다보니 브랜드 정체성이나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을 다소 잃은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소비자들에게 가차 없이 외면 받고 판매부진을 겪었는데요. 

전면부는 명문 귀족 가문의 문장인 방패 형태로 당당한 기품이 느껴지는 대형 크레스트 그릴, 네 개의 램프로 이뤄져 제네시스 디자인에 상징성을 부여하는 쿼드램프를 적용해 독창적인 모습으로 완성됐다. ⓒ 제네시스 브랜드


뿐만 아니라 일부 출시된 신차들에게는 시행착오 아닌 시행착오 탓에 △메기 △삼각떼 등 현대차 입장에서는 전혀 웃지 못 할 별명도 붙었습니다. 또 국내 최장수 모델로 자리매김하며 '국민차'라는 수식어를 오랜 기간 유지한 쏘나타는 단종설까지 나오며 체면을 구겼죠.

현대차가 현대 룩에 힘을 낭비하는 사이에 기아와 제네시스 브랜드는 자신들만의 패밀리 룩을 고착화시켰고 안착시켰습니다. 

기아는 현대차에 인수된 이후 뚜렷한 아이덴티티가 없던 시절 서브 브랜드 취급에서 벗어나고자 2007년 호랑이 코에서 영감을 받은 '타이거 노즈(Tiger Nose)' 그릴을 탄생시켰었죠.

이후 타이거 노즈 디자인은 라디에이터 그릴에 국한되지 않고 헤드램프와 연결되며 타이거 페이스(또는 타이거 마스크)로 변모했고, 전동화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그릴과 헤드램프를 하나로 합친 '디지털 타이거 마스크(기아가 말하는 명칭)'로 진화했습니다.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유려한 곡선의 스타리아 외관. ⓒ 현대자동차


아울러 제네시스는 독창적인 디자인 요소인 지-매트릭스(G-Matrix)를 적용한 크레스트 그릴과 날렵한 두 줄 램프로 제네시스 엠블럼을 형상하는 등 자신만의 시그니처를 만들었고, 이는 상당히 성공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고 있죠.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결국 돌고 돌아 슬그머니 새로운 패밀리 룩을 다시 갖춰나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현대차는 여전히 '패밀리 룩'이라고 하지 않고 이를 '현대 룩'이라고 말하고 있죠. 새로운 현대 룩은 '하나로 끊김없이 연결된 수평형 램프(Seamless Horizon Lamp)'인데, 이번 현대 룩은 분명 성공적인 듯합니다.

출발은 스타리아였는데요. 2021년 출시된 스타리아는 후드와 범퍼를 가로지르는 얇고 긴 차폭등(포지셔닝 램프)과 주간주행등(DRL)의 디자인을 통해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는데요. 괴상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스타리아로 재미를 본 현대차는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를 지난해에는 신형 그랜저에, 최근에는 신형 코나에도 곧바로 적용하며 패밀리 룩을 패밀리 룩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현대 룩을 완성해 나가는 중입니다.

"차세대 시그니처 라이팅 디자인의 진화 과정이다. 진화 과정에서 나온 디자인인 만큼, 앞으로 출시될 차량들의 성격과 다변화하는 고객 가치에 맞춰 앞으로 출시될 신차에서는 비슷하게 반영되거나 보다 진화된 형태의 디자인될 수도 있다."

디 올 뉴 그랜저 이미지. ⓒ 현대자동차


그랜저 출시 당시 현대차 관계자는 '스타리아 디자인과 비슷하다'는 질문에 대해 이같이 답했습니다. 사람들은 똑같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현대차의 생각은 확실히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죠.

그도 그럴 것이 출시 자료를 살펴보면 확실히 똑같지는(?) 않습니다. 스타리아 때는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그랜저 때는 '밤과 아침을 가르는 새벽의 경계선에서 영감을 받은', 코나 때는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구현해주는' 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가 현대차의 차세대 시그니처 라이팅 디자인이라는 점입니다. 동시에 이 디자인은 현대차의 전동화 전환과도 강하게 연결되고 있고요.

내연기관차라면 엔진 열을 식히기 위해 그릴의 존재가 필수적이고, 이에 따라 그릴 디자인을 중심으로 패밀리 룩을 완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전동화 시대로 가고 있죠. 전동화 시대에는 그릴이 필요 없는 만큼 브랜드가 해보고 싶은 새로운 디자인 요소를 마음껏 적용할 수 있는데요. 

디 올 뉴 코나 내연기관(하이브리드 포함), 전기차, N 라인 3개 모델 외관. ⓒ 현대자동차


그 과정에서 신형 코나의 경우에는 내연기관 모델들도 그릴을 숨기는 형태로 디자인돼 얼핏 보면 전기차처럼 생겼다고 착각할 법합니다. 마치 전기차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말이죠.

사실 현대차에게는 패밀리 룩이든, 현대 룩이든 상관없을 겁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글로벌 전기차시장에서 1등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러려고 굳이 전용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IONIQ)도 론칭했으니까요. 전기차 시대에서 퍼스트 무버가 되고자하는 현대차의 남다른 강한 의지.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글로벌 브랜드들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가장 핫해진 전기차시장에서 이왕이면 1등이 우리나라 브랜드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결과를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완전히(?) 패밀리 룩을 탈피한 현대차가 현대 룩으로 꽤 괜찮은 승부를 하고 있다는 확신은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이제 패밀리 룩이 아니라 현대 룩으로 보이는 거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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