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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윤석열 정부 민생대책 '생색내기라 부르기로 했어요'

인색한 재정, 재탕 남발…은행 과점 해결 행간엔 은산분리 완화 시그널?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23.02.17 09:05:52
[프라임경제] 정부가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열세 번째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열었다. 은행과 통신에서 과점을 깨고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대통령 일갈과 함께, 이날 회의 결과물은 '물가·민생경제 상황 및 분야별 대응 방향'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됐다.

물가와 민생경제를 위해 부처마다 내놓은 대책들이지만 좋은 평가나 해설을 붙이기가 차마 어렵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두고 '생색내기' 혹은 '공치사'라고 하니까.

이유는 간단하다. 서민 고통을 해결하겠다는 정부가 재정 한 푼 투입하지 않으면서 '동전 한 닢 손해 보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행간에 숨은 심상찮은 밑그림도 맘에 걸린다.

먼저 난방비 폭탄에 치를 떤 민심을 의식해서인지 첫 머리에 공공요금 분야가 언급됐다. 방점은 '동결'에 찍혔지만, 함정이 있다.

일단 △고속도로 통행료 △코레일 산하 기차·광역철도(전철) △우편 △광역상수도 요금이 지금은 안 오른다. 버스비, 쓰레기종량제봉투값 같은 지방 공공요금도 안정화(사실상 동결 권고)를 유도하되, 불가피하면 시기를 늦추거나 시점을 분산한다.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동결 시점을 상반기로 제한한 것과 '이연' '분산' 등의 표현으로 미뤄 여름이 되기 전 냉방비 폭탄과 함께 찾아올 공공요금 줄인상 충격에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듯 하다.  

한겨울 민심을 꽁꽁 얼린 전기·가스요금 폭등과 관련해서는 차상위계층까지 지원 대상을 넓히고 등유, LPG 이용자를 포함하기로 했다.

이미 이달 초 산업자원통상부를 통해 알려진 내용의 재탕이다.

취약계층만 가능한 요금 분할납부를 소상공인에게도 허용하는 것은 시행 시기가 문제다. 전기는 올해 7월, 가스는 올해 12월부터다.

지난달 터진 요금폭탄은 도리가 없다는 게 핵심이다.

사실상 장바구니 물가 급등을 주도한 가공식품을 두고는 사실상 민간에 책임을 돌렸다. 최근 원재료값이 안정되며 인상 압박에서 벗어났지만 이미 올린 소비자 가격을 정상화할지는 '업계 협의'에 달렸다. 

통신요금 개편안에 포함된 30GB 데이터 무료 제공 역시 정부는 3373만명이 수혜를 볼 거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독려했지만 여기도 불편한 대목이 있다.

작년 9월 말 기준 국내 이동전화 전체 가입자(회선)는 7286만. 무료 데이터 혜택을 누리는 건 절반이 채 안 되는 46%에 그친다.

특히 무료 데이터를 활용해 저렴한 요금제로 갈아타면 통신비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으나, 이 무료 데이터 일회성 지급에 이월 안 된다. 또 약정할인에 걸려 있다면 요금제를 바꿨다가 비싼 위약금을 뜯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사실 이날 발표에서 필자가 가장 주목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사항이었다. 

윤 대통령은 "모든 대안을 열어두고 은행·통신 시장의 과점을 해소하고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는데, 앞서 떠올린 심상찮은 밑그림이 바로 이거다.

거친 생각을 요약하면 서민 부담 경감을 대의명분 삼아 '은산분리 완화'라는 기업친화적 결론에 도달하기 위한 노림수라는 의심이 든다.

금산분리의 하위 개념 격인 은산분리는 산업자본, 즉 일반 기업이 은행을 가질 수 없도록 한 규제다. 보통 기업은 의결권 있는 주식은 4%,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때만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아 최대 10%까지 은행 지분을 가질 수 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그룹이 순양금융지주를 완성하지 못한 이유다. 

공교롭게도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금융규제샌드박스(혁신금융서비스)라는 예외 규정을 통해 각각 알뜰폰 '리브엠', 배달플랫폼 '땡겨요'로 신사업에 뛰어들어 순항 중이다. 대통령이 강조한 과점 해소, 경쟁 촉진은 필연적으로 신규 사업자 진입과 맞닿아 있다. 

경쟁은 진입장벽이 낮을 때 치열해진다. 대통령의 지시를 있는 그대로 읽자면 은행의 신사업 허용보다는 산업자본 또는 기존 인터넷은행과 대부업 등 대체 금융자본의 은행업 진출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이날 검사 출신이자 차관급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국무회의급 논의장에 이례적으로 참석한 만큼 스몰 라이선스(개별인가) 등 구체적인 실행 방향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

경쟁 촉진은 시장경제의 핵심 동력이자 소비자에게 이롭다. 좋은 방향이다.

다만 현실성 과 부작용 유무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적어도 청와대를 떠나 용산을 택한 것 이상으로 국민과 국가에 미치는 영향이 클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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