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 생태계가 몰락중이다. 수요는 계속해서 발생하는데, 국내 생산 공급업체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어서다.
이러다 보니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은 20년간 중국에 잠식당하면서 소비재 시장으로 전락했다. 현재 국내 완제품 공급사는 전무하다. 여기에 수리해야 할 부품의 공급 차질까지 겪고 있다. 시민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비판이다.
◆수리기간 두달 훌쩍…완제품·정비 가격 폭등
국가승강기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10월31일 기준 국내 에스컬레이터 설치대수는 3만8950대다. 이중 설치된 지 10년이 넘은 노후 에스컬레이터는 2만4437대다. 전체 에스컬레이터 중 62.7%에 달한다.
이에 에스컬레이터 고장건수는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철도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에스컬레이터 고장건수는 1768건이다. 2019년 대비 5배 가까이 급증했다. 수리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평균 수리기간이 무려 2주다. 그런데 지난해 상갈역 에스컬레이터 수리에는 64일이 걸렸다. 앞으로도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처럼 고장건수가 증가하고 수리기간이 길어지는 이유는 뭘까. 부품 대다수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게 가장 큰 이유다. 에스컬레이터는 가동시간과 비례해 부품 소요가 많아 고장이 잦다.

장한평역 에스컬레이터가 고장으로 인해 가동이 중단됐다. = 전대현 기자
그런데 상하이봉쇄 등으로 중국에서의 부품 수급 차질이 심화됐다. 국내 에스컬레이터 상당수가 잦은 고장과 수리로 정상적 운행이 어렵다는 얘기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다중복합시설 및 상가 등을 합하면 평균 고장건수 및 수리기간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게 업계 추산이다.
가격도 오름세다. 지난해 대당 7000만원 수준이던 에스컬레이터 가격은 현재 8200만원을 호가한다. 한 개당 45만원 수준이던 에스컬레이터 디딤판 가격도 지난해 123만원으로 치솟았다. 중국이 자국 건설시장이 악화되자 가격을 올리고 있어서다.
이같은 가격 상승은 운행 정지와 고장 방치로 연결되고 있다. 상가 관리주체인 A기업 담당자는 "지속적인 정비 비용 상승이 부담으로 작용할 뿐 아니라 수리도 여의치 않아 아예 운행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승강기안전공단에 안전검사 연기만 신청하면 운행을 안 해도 돼 절차도 간단하다"고 밝혔다.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2010년 이후 중국이 대부분의 물량을 생산해 현재 국내 완제품이 전무하다"며 "구동기나 디딤판 등 일부 부품만 국산화해서 사용하는 상황으로 신규 물량을 1000대라고 치면 800대는 중국산인 꼴이다"라고 전했다.
이어 "중국의 지나친 저가 수주 공세로 인해 에스컬레이터 생태계가 몰락했다"며 "국내 부품업계 가격 협상력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외국 100% 의존, 미래가 없다"
국내 에스컬레이터 생태계가 흔들리자 정부가 나서서 국산화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다. 이에 따라 중국, 인도 다음으로 승강기 수요 및 보급률이 높다. 지속적인 수요가 보장된 산업이어서 정부가 나서야 된다는 이야기다.
아울러 에스컬레이터는 시민 이동권과 직결돼 국가기간 교통망 성격이 강하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적극적인 산업 투자가 필요한 이유라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문제는 승강기 산업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행정안전부로 부처가 이관되면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가 내 에스컬레이터가 운행이 중단된 채 방치되고 있다. = 전대현 기자
업계는 이로 인해 승강기 관련 중복된 인증 절차 탓에 부담이 크다고 주장한다.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성장촉진이 절실한 상황에서 행정안전부의 과도한 규제가 성장을 억제한다는 입장이다.
R&D 등 기술개발 지원을 위한 정책 마련은 산업부에서 주관하는데, 승강기 산업 자체가 행안부로 이관돼 업무 추진에 지속적인 혼선이 발생하는 것도 문제점이다. 이로 인해 인증절차 간소화와 산업 발전을 위해 부처 이관을 요청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은 없는 상태다.
한국승강기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승강기 산업 전반을 행정안전부가 관할해 정책적 기술 개발 틀이 없어졌다"며 "국내 에스컬레이터 시장은 소비재 시장으로 전락해 자국 산업 보호가 절실한 상황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산업 전반적인 체계를 반영 못하는 구조가 지속되면서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며 "산업이 있고 안전이 있는데, 이런 구조가 파괴됐다. 어느 산업이든 외국에 100% 의존하는 것은 미래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