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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빈곤포르노 지양, 아동인권 침해 방지 위해서라도

 

강나경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2.11.20 21:16:14
[프라임경제] 우리나라 정치사에 '빈곤포르노'라는 단어가 이처럼 요란하게 언급된 적이 있을까? 현재 '빈곤포르노'라는 단어는 여야간 정쟁의 단어가 됐다.

심지어 여당 여성의원들이 관련 발언을 한 야당 국회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고 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왜 '빈곤포르노'라는 발언에 대해 여성의원들이 모두 일어선 것일까? 여당 여성 국회의원은 빈곤포르노 중에 포르노만 읽히는 것일까.

'빈곤포르노'란 구호단체들이 모금을 위해 가난을 선정적으로 다루기 위한 사진이나 영상물, 모금방송 등을 가르치는 말이다. 즉, 기부금이나 지원금 증가를 위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빈곤포르노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다. 지난 2013년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구호개발단체들의 모임)가 제정한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가이드라인'에서 시청자들의 감성을 최대한 자극해 상업적인 효과를 얻기 위한 왜곡과 조작이 있었다는 내용들이 사례로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즉 '빈곤포르노' 제작 행위가 갖는 반인권적인 면이 두드러지면서 빈곤포르노 제작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많은 나라와 더불어 한국의 구호단체를 비롯해 방송사도 방송모금 방식의 변화를 요구받았다. 

빈곤포르노를 제작하지 않는 이유는 빈곤국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양산하며 해당 어린이의 인권침해에 대한 여러 문제점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역시 미디어에 나타나는 인권감수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인권침해에 대한 방송심의규정이 몇 차례 개정됐다. 

현재 방송심의규정 제3조 권리침해 금지 제21조(인권보호) ①방송은 부당하게 인권 등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②방송은 심신장애인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다룰 때에는 특히 인권이 최대한 보호되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로 규정하며 무엇보다 인권침해 사항에 대해 중요하게 보고 있다.

빈곤포르노 정쟁에 '오드리햅번 사진 표절'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그 언급은 하지 않길 바라는 개인적 바램이 있다. 오드리햅번은 필자가 오래도록 좋아하는 배우이자 인권운동가이다.

배우가 인권운동가라는 수식어를 달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어려운 인권운동가라는 수식어는 오드리햅번이 보여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래서 전 세계 팬들은 지금까지도 그녀를 존경하는 것이다.

오드리햅번은 1988년 유니세프 친선 대사가 된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계 구호지역을 다니며 죽어가는 어린이들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의 모든 능력을 어린이들을 위한 구호 활동에 쏟아 부었다. 

그는 전쟁지역이나 전염병 지역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의 헌신과 노력이 세계를 울리며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 곳곳의 구호지역을 세계인들이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많은 스타들이 이에 동참하며 굶주린 아이들을 돕기 위한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인권침해에 대한 의식이 커지면서 타인의 가난이나 불행을 미디어에 담아내는데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빈곤포르노'를 지양하는 규정들이 속속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드리햅번이 구호 활동을 하던 시기는 어려운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시초였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하면서 구호를 호소하는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고 현재는 구호대상 아이들의 어둡고 병약한 영상과 사진보다 구호를 통해 변화하고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들로 영상과 사진들이 채워져 있다. 

즉, 이 시대까지 오드리햅번이 살아 있었다면 오드리햅번은 이 시대의 기류를 읽었을 것이고 누구보다 앞서 '빈곤포르노 퇴치' 운동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드리햅번은 아이들을 사랑했고 아이들의 인권을 존중했던 인권운동가이기 때문이다.

야당 의원의 '빈곤포르노'라는 언급은 현재 전 세계 구호활동에 또는 방송에 활용되고 있는 단어인 것은 맞다. 그리고 김건희 여사의 행보 역시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맞다.

진정 캄보디아 아동이 보고 싶었다면 조용히 다녀왔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촬영 된 그 사진을 언론에 방출하지 않았더라면 선행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진 방출은 캄보디아 국가 이미지 실추와 더불어 김건희 여사의 선행에 의해 고스란히 노출된 아이와 그 가족들의 인권침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진 것이다. 그들이 그 촬영에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그 동의의 목적이 무엇이었을지 되돌아 본다면 결코 그 사진 방출에 대한 문제제기에 자유로울 수 없다.

문득 밀레니엄 세대의 칠레 대통령과 최연소 영부인의 선택이 떠오른다.

칠레는 대통령 관저가 없이 대통령들이 살 곳을 각자 정하도록 하고 있고 역대 대통령들은 치안이 좋고 부유한 지역에 관저를 마련해왔다. 그러나 보리치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낡은 주택과 마약상들이 대낮에도 구역확장을 위해 싸움을 벌이는 빈곤율과 범죄율이 높은 지역에 관저를 정했다고 한다.

이유는 범죄자들에게 위협 받는 '빈곤하고 범죄율이 높은 지역'을 복구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선행을 할 때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다. 그리고 일회성이 아닌 지속성이 필요하다. 빈곤한 지역에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과 함께 거주하는 대통령과 영부인, 그 결정 하나만으로 칠레의 빈곤 지역은 변화하고 있다.


강나경 칼럼니스트 / 이슈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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