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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정부에 '생사기로' 생분해 업체

처리 시스템 부재로 일방적 퇴출 결정…기업‧소비자 고통 가중

김수현 기자 | may@newsprime.co.kr | 2022.11.17 15:49:14
[프라임경제] # 이천에서 생분해 봉투를 생산하고 있는 A씨는 이달부터 생산 설비 가동을 절반 이상 멈췄다. 기존 마트 및 편의점에 납품했던 제품을 다음 달부터 납품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던 거래처에서도 주문 물량이 줄고 있다. 억 단위를 들여 산 장비들이 제 역할을 못 한지 오래다. 

# 용인시에서 생분해 판촉물 제품을 주력 생산하는 B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동기간 전년 대비 매출이 절반 아래로 감소했다. 지난해 11월 '생분해 플라스틱에 대해 친환경 인증을 해주지 않겠다'는 환경부의 행정예고가 나오자 주문이 급감했다. B씨는 조만간 공장을 내놓을 생각이다.

PLA, 일명 썩는 플라스틱(이하 생분해)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부가 기존 친환경 인증을 받은 생분해 제품 사용을 2024년까지만 허용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친환경표지인증도 취소되면서 납품에 타격을 입은 일부 기업들이 매출 하락을 겪거나 폐업의 기로에 서게 됐다.

◆2007년엔 장려, 지난해엔 퇴출…설득력은 '물음표'

환경부는 지난 1일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지침을 발표했다. 오는 24일부터 편의점, 마트 등에서 일회용 봉투·종이컵·플라스틱 빨대 등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아울러 퇴출당할 예정이었던 생분해 제품들은 산업계 우려로 2024년까지만 허용됐다.

PLA, 일명 썩는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부가 기존 친환경 인증을 받은 생분해 제품 사용을 2024년까지만 허용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사진은 옥수수전분, 폐 사탕수수, 밀짚을 이용해 만든 생분해성 일회용 용기. 제품은 본문과 무관. ⓒ 연합뉴스


이유는 처리 시스템의 부재다. 생분해 제품은 58℃ 조건에서 6개월 동안 있어야 약 90%가 분해된다. 국내에 해당 조건을 갖춘 매립지를 마련하기 어렵고, 사실상 소각 처리돼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급작스러운 환경부의 입장 번복이다. 정부는 2007년부터 생분해 소재에 대한 폐기물 부담을 면제하고, 환경표지 인증과 같은 인센티브로 보급을 장려했다. 

이후 2018년 일회용품 금지 조치가 강화되면서 많은 기업이 생분해 제품 생산에 뛰어들었다. 이유는 각종 혜택과 수요 확대다. 환경표지인증을 받은 기업은 폐기물 부담금 면제 정부포상 공공기관의 의무구매 제한경쟁입찰 지명경쟁입찰 인증제품 홍보 및 유통 판매처 개척지원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생분해 봉투는 환경부가 인증한 '친환경 봉투'로 분류됐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환경부가 돌연 생분해 봉투를 비롯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퇴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1월부터는 환경표지 인증도 중단했다. 한순간 입장이 180도 바뀐 셈이다.

이러한 과정이 연관 중소기업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생분해 소재 제품 납품이 매출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에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다.  

◆'소통 부족' 지적…소비자 혼란도

"중국은 2021년부터 모든 플라스틱 일회용류를 '생분해'로 교체하고 있고, 유럽 및 일본에서는 생분해 제품을 활용해 바이오가스를 생산, 이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환경부와 정부는 시장조사 및 산업계 조사도 없이 극단적으로 일을 진행했다. 위생을 위한 일회용품인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

"환경부는 산하조직인 환경산업기술원을 통해 서류 검토비가 수십만원인 EL-724인증제도를 만들어 진행했다. 당시 조건은 수분과 58℃, 흙과 미생물이 있을 경우 3~6개월이었다. 지금 와서 말이 달라진 거라면 어째서 이런 제도를 운영한 건지 모르겠다."

이달 24일부터 편의점에서 비닐봉지 사용이 금지되는 등 일회용품 사용 제한 범위가 확대된다. 이와 함께 기존 친환경 인증을 받은 생분해 제품 사용은 2024년까지 허용됐다. ⓒ 연합뉴스


생분해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들의 환경부 기조에 대한 불만이다. 생분해 수지를 재활용할 방안을 만들고 있는 업체들의 항변도 잇따른다. 기존 한계를 극복하고 플라스틱의 강도에 뒤처지지 않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싸잡아서 비판받고 있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생분해 플라스틱의 친환경 인증 철회로 일반 소비자들이 생분해 플라스틱의 친환경성에 대해서 의심하고 오해할 수 있다는 점도 안타깝다. PLA가 가장 널리 알려진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이긴 하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소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문 퇴비화 시설 없이 토양과 해양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반응해 스스로 분해되는 '차세대 생분해 플라스틱'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즉, 일반 쓰레기와 같이 버려지더라도 자연환경에서 '썩는 플라스틱'이 이미 개발돼 상용화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한편, 소비자들도 혼란에 빠졌다. 기존 사용했던 생분해 제품 사용을 대체할 마땅한 친환경 제품 대안이 제시되지 않아서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2024년 이후 생분해 봉투가 무조건 퇴출된다는 뜻은 아니"라며 "국내 상황에 맞는 새로운 생분해 인증 기준을 마련 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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