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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유명과 무명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2.10.27 17:13:42
[프라임경제] 나는 분명 이름이 있지만 이름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을 뜻한다(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그러니까 나는 이름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확연히 구별되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름이 언급되지 않으니 한편으로는 이름이 없는 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이름은 나를 규정하는 지칭어이면서 나의 '값'을 매기는 척도이기도 하다. 

이름에 값이 붙게 되면 '이름값'이라는 새로운 뜻이 창조된다. 명성이 높은 만큼 그에 걸맞게 하는 행동(출처: 표준국어대사전)으로, '이름값하고 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도 예나 지금이나 꽤나 익숙한 조언이다. 

또 이름값은 나잇값과 어느 정도 상통되는 말이기도 하다. 흔히 그 나이 대에 요구되는 행동이나 사고가 뒤떨어지거나 사회적 제반요건에 못 미치는 경우에 '나잇값을 못한다'고 평한다. 그런 면에서 이름값도 나잇값과 같은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대체로 이름은 엄선된 한자나 한글을 엮어서 뜻풀이가 좋은데 자칫 그처럼 살아가지 못할 때 '이름값도 못 한다'는 핀잔을 듣곤 한다. 

물론, 이름의 의미만큼이나 큰 뜻을 이루고 살면 좋겠건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우리는 매일을 통감하며 살고 있다. 그러니 이름과 나이의 뒤에 붙는 '값'의 의미는 비단 긍정적인 의미만을 지니고 있지 않다. 

알랭 드 보통의 저서 <불안>에서는 '흔히 사회에서 중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이름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 반대의 경우를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중략) 그런 표현은 다양한 집단에 대한 대접의 질적 차이를 전달하는 데는 편리하다.'라며 역설하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오늘날 이름 있는 사람은 유명하거나 저명한 사람으로 치부된다. 그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고, 그들을 향한 대우가 처세술처럼 펼쳐진다. 또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는 명실상부한 주도적 역할로서 그 영향력은 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이름값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지 오늘날의 이름은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을 설정하고 구분한다. 그로써 이름 있는 자와 이름 없는 자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팔로우와 팔로워로 나뉜다. 단연코 더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는 자가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데, 그와 같은 이유는 이름값이 높은 자의 팬덤이 이름값이 낮은 자들의 관심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름은 한낱 나를 설정하기도 하지만 나를 넘어서는 내가 되게도 한다. 나를 대표하는 이름이 만인에게 알려질 때, 내가 품고 있는 정체성은 그보다 훨씬 높고도 넓게 확장되며 영향력은 거대해진다. 그리하여 이름값은 오늘날 다방면에서 아주 유용한 힘으로 작용된다. 

그래서 이름은 부르는 것도 불리는 것도 조심스러워야 한다. 거대한 힘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이름값을 드높게 평가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이름 있는 자가 되기를 갈망한다. 누구도 제 이름을 버리고 허투루 삶을 마감할 리가 없다. 그러나 제 이름을 알리려 부단히 발장구를 쳤더라도 겨우 발밑에서 작게 일다가 사라지는 파도와도 같았으리라.

하물며 길을 걷다 보면 이름 모를 들꽃이 천지다. 그것들은 결코 이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이름 없음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쉬이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또한 이름 없는 자, 곧 나와 같은 사람들의 존재감이 더 이상 상실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명인이 살아가는 공간에서도 여타의 포용과 관심이 통하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본다. 


이다루 작가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마흔의 온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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