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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생활의 철학' 자라투스트라와 8월의 크리스마스

"죽음을 잊지 마라.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삶을 사랑할 수 있다"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2.08.25 09:34:22

'죽음을 잊지 마라.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삶을 사랑할 수 있게 한다. © 키시미 이치로 '생활의 철학'


[프라임경제] 본 칼럼은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岸見 一郎 · 66)가 8월22일 시니어 전문지 '매일이 발견(毎日が発見)'에 기고한 전문을 번역한 것으로, 난해한 철학적 용어와 내용으로 번역상 논쟁이 있을 수 있어 일본어 원본을 함께 게재했다. 기시미는 교토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서양고대철학, 플라톤 철학) 전공한 지한파 지식인이다. 

◆춤을 멈추지 않아도 돼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10년 고독을 즐기고도 권태롭지 않았던' 자라투스트라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샘을 찾는데 푸른 초지에 나오고 말았다. 그곳에서 소녀들이 손을 잡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들은 그를 보자 춤을 멈춰버렸다. 그러자 그는 호의적 태도로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 춤을 멈추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그대들 놀이를 방해하려 심술궂게 찾아온 게 아니야. 적도 아니고…. 물론 나는 숲이고 깊은 숲의 어둠이지. 그러나 내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내 삼나무 숲 아래 장미 언덕을 발견할 거야" (니체는 또한 언어의 자라투스트라)

여기에서 말하는 '깊은 숲의 어둠'은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죽음은 살아있는 한 체험할 수 없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은 있어도 죽음에서 생환한 사람은 없다. 살아있는 한 사람은 죽음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건 본래 모순이다. 그래도 죽음은 두려운 것, 즐거운 춤을 방해하는 어둠이라 생각해 버린다. 

그러나 자라투스트라는 말한다. "내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내 삼나무 숲 아래 장미의 언덕을 보게 될 거라"고.

자라투스트라의 이 부분을 떼어내 철학자 다나카 미치타로(1902-1985)는 다음과 같이 압축한다. "죽음의 자각이야말로 삶에 대한 사랑"

죽음을 외면하지 않는 것, 죽어야 하는 존재인 것을 아는 것이 오히려 생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인생의 끝자락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본래로 되돌아갈 수 없다. 눈앞에 있었을 인생의 레일이 사라진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춤을 멈추지 않아도 괜찮다. 춤추는 사람은 인생의 끝자락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어도 '지금 여기서' 계속 춤추면 된다.

◆죽음에 의한 무가치화 

죽음을 눈앞에 두면 그때까지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 예를 들면 돈과 명예 등은 전혀 가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의 생을 사랑하고, 친구나 가족 등 친한 사람과 사이좋게 사는 것 말고는 아무래도 괜찮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한국영화가 있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유정원'이라는 청년과 '김다림'이라는 여성의 사랑 이야기다. 

정원은 불치병으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던 중 점포를 찾아와 알게 된 다림이 그의 인생을 바꾼다. 두 사람은 서로 끌리지만, 정원은 자신의 병을 생각해 감정 표현을 자제한다. 

어느 날 다림이 정원에게 "살아있는 거 재밌어?"라고 묻는다. 정원은 그 질문에 "어쨌든(그런대로)"하고 대답하지만, 그에겐 뜻밖의 질문이었다. 

'살아있는 것이 즐겁냐'라는 물음에 아픈 것만 생각하고 지금을 살지 못한 것, 사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죽을 것이다. 그것도 먼 훗날이 아니라 조만간.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 법이다. 그렇다면 죽을 생각만 하지 말고, 지금을 즐기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죽음을 잊자고 하는 건 아니다. 죽음을 자각하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만을 위해 산다. 그럴 수 있다면, 그때 삶을 사랑하고, 사는 것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생각나는 건 지금

영화는 다림에게 건네는 정원의 말로 끝난다.

"내 기억 속에 있는 무수한 사진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바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랑을 가슴에 간직하고 떠나게 해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정원은 입원하고 퇴원하지만, 이후 두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정원은 병세에 대해 다림에게 끝내 털어놓지 않았다. 하지만 사소한 언행만으로도 날카로운 분석을 할 수 있던 그녀가 정원의 병을 몰랐을 리 없다. 병이 위중한 가운데에도 애써 밝게 행동하며 조금도 괴로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는 정원의 심리를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굳이 묻지 않은 건 그와 보낸 날들을 추억으로 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도 그걸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설령 정원이 중병이라는 것을 털어놓았더라도 두 사람이 두려워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고, 삼나무 숲 아래 장미 언덕을 발견하고 춤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함께 겪었던 일들을 지나간 일로 떠올리지 않고 지금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추억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한국어 선생님이 최근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병에 대한 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알고 있었다. 

가족으로부터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곤 했지만, 다행히 길게 얘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상태가 급변해 다음 날 숨을 거뒀다. 헤어질 때 선생님은 '또 만나요'라고 말했다. 

최근 수년 동안 몇 번이나 만났는데 '헤어질 때 다시 만나자'라고 한 건, 나도 선생님도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다른 할 말이 있지 않았나'라고 생각하지만, 선생님 생각은 추억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의 마지막 말은 '엄마'였다고 한다. (하지만)임종 자리에 어머니는 없었다. 

나는 치안유지법 혐의로 체포돼 일본에서 옥사한 윤동주를 생각했다. 옥중 임종 자리에 있던 젊은 간수는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겠지만, 그는 큰 목소리로 한 마디 외치고 숨을 거뒀다. 나는 그게 '엄마'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인생은 죽음으로 완결되지 않으며, 먼저 간 사람에 대한 생각은 추억이 되지 않는다.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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