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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기억과 기록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2.07.07 14:39:13
[프라임경제] 나이가 들면, 기억을 먹고 사는 것이 마땅한 즐거움이자 단순한 일과쯤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아마도 기억은 행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듦의 가장 큰 두려움도 지각이나 인지 능력의 감퇴로 인해 기억이 흐트러지는 것이다. 그런 현상으로는 아는 것이 모르는 것이 되거나, 뜨거웠지만 더 이상 뜨겁지 않게 얼어붙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람에게 있어 그보다 슬프거나 안타까운 일도 없다. 

그토록 평생을 쥐고 싶은 기억 중에는 대부분 젊은 날의 경험이 켜켜이 쌓여서 잘 포장돼 있다. 마치 상처가 흉터가 되어 오랫동안 남아있듯, 기억도 머릿속에서 오랜 시간 살아남아 경험의 외상(外傷)이 되는 것과 같은 식이다. 결국 기억은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고, 그리하여 겪었던 잔상이며, 실체가 없는 미상(未詳)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젊은 날에는 경험을 쌓는 일에 몰두하다가 늙은 날에는 기억을 정리하며 유추하는 일에 매몰돼간다. 그렇다보니 젊은 날에는 고생도 사서 한다고들 한다. 생각해보면 고생이란 어렵고 고된 것을 겪는 일이고, 겪어서 체화되거나 습득이 되면 반드시 무언의 가치를 얻게 된다. 그 또한 훗날에는 무덤덤하게 때때로 미소 짓는 기억으로 완성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은 기억과 경험을 만드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것은 어쩌면 다가올 황혼의 시간을 버티기 위함 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람은 보다 많은 양질의 기억을 갖기 위해서 일생을 살아간다. 양질의 기억이야말로 마음을 튼튼하게 하고, 제때 적절한 상황판단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모든 사고의 메커니즘 또한 우리가 경험했거나 이미 알고 있거나 인지했던 것들로부터 파생돼 원활히 작동된다. 그렇다보니 인간은 기억을 얻으려 살아가고, 그 기억을 삼아서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이란 실재하지만 허상(虛像)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얼추 조작도 가능하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타자의 눈으로 확인할 수조차 없다. 그 때문에 더더욱 타자의 이해를 바라기도 힘들다. 기억은 오롯한 나만의 영역이며 고유한 이미지다. 아주 개인적이고 개별적이며 독창적이고도 다양하며 또한 다채롭다. 작금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살았던' 또는 '겪었던' 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필수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기억을 꺼내 누군가에게 보여주거나 증명하려면 반드시 '기록'으로 변환돼야 한다. 그로 인해 나의 기억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개인의 기억이 다수를 위한 기록으로 발전하는 일은 그래서 경이롭고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록으로써 만인의 눈을 통해 읽히고, 그것이 다시 만인의 기억으로 변환되는 일이야말로 자신의 기억이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년에 접어들면 자신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도 어쩌면 지극히 당연하다. 

기억을 형상화하는 일이야말로 희귀한 작업이며, 그 희귀성은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기록은 가치 있는 작업물이다. 기록을 통해서 인간은 무한한 지적 성장을 얻으며, 삶의 정보와 지표로서 타진해 현재의 가능성을 예측하고 발전시킨다. 그러므로 기록은 인간에게 무한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록은 현존하는 세대에게 등불과도 같다. 함께 걷는 길을 환하게 밝히는 낮의 역할을 기억과 기록이 대신할 수가 있다. 그로 인해 누군가는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얻을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살아갈 희망을 구하고 펼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기록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기억이 돼 다시 나로서 살게 한다. 


이다루 작가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마흔의 온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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