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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일본에 넘쳐나는 무의미한 노동, 생산성 낮은 건 이 때문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2.06.28 10:20:12
[프라임경제] 지난 2019년도 당시 일본 노동생산성은 G7 국가 중 최저다. 1인 시간당 49.7달러로 미국(77달러) 65% 수준이다. 

통계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70년 이후 일본은 매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많다고 하더라도 '세계 제일 제조국'을 표방하는 나라의 수치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이것은 화이트칼라(사무직)의 낮은 생산성이 조직 전체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일본을 포함한 자본주의 국가 대부분이 1970년대부터 제조 현장 생산성 증가에도 노동자 임금이 오르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제조현장 생산성을 올리려고 하는 것일까? 

'무의미한 노동 이론(Bullshit Jobs : A Theory)' 저자인 데이비드 글래버(David Graeber, 1961~2020) 런던정치경제대학 인류학 교수는 이에 대해 "그것은 1%에 불과한 경영진과 주주를 위해서"라며 "제조현장 생산성 향상으로 생기는 이익 상당 부분이 기본적으로 무의미한 일을 하는 사무직을 만드는 데 투입된다"라고 주장했다. 

글래버는 전체 생산성 저하 원인이 되는 무의미한 노동을 다음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1) 누군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추종자' 그룹 : 접수처, 관리보조, 도어맨 등 
(2) 고용주를 위해 타인을 협박하거나 기만하는 '협잡꾼' 그룹 : 로비스트, 고문변호사, 텔레마케팅 업자 등
(3) 조직 결함을 고치기 위해서 존재하는 '뒤치다꺼리' 그룹 : 버그를 수정하는 프로그래머 등
(4) 누구도 진지하게 보지 않을 서류를 계속 만드는 '서류 메꾸기' 그룹 : 조사관리자, 파워포인트를 양산하는 컨설턴트 등
(5) 남에게 일을 할당하기 위해 존재하면서 무의미한 노동을 만드는 '감독' 그룹 : 중간관리직 등

회사가 성장하면 실제 제조현장보단 관리 명목으로 본부 인원이 늘어난다. 관리직은 일하는 흉내를 내는 데 능숙하다. 사장이 외출하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면 곧 누군가 나타나 단추를 눌러준다. 이는 글래버가 지적하는 (1)에 해당하는 인원들로, 이들은 끊임없이 윗사람 행동을 살핀다. 

고문변호사 역할인 (2)도 의심스럽다. 고액을 받는 고문변호사는 대표 등으로부터 의견을 요구받으면 입맛에 맞는 의견서를 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윤리나 규범에 어긋나더라도 이들은 변함이 없다. (3)의 경우는 코어기술이 완전했다면 처음부터 필요하지 않은 인원이다. 

내가 은행에서 근무할 때 업무는 대부분 (4)에 해당했던 것 같다. 곧 파기될 것을 알면서도 서류를 산더미로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공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나며 중간관리직 존재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5)에서 지적하는 인물들이다. 마스크를 쓴 신입직원 얼굴을 잘 알 수 없어 고민이라는 관리자 탄식이 희극적이다. 아래 직원 얼굴도 모르고 관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코로나 시국이 끝나고 관리직이 줄어든다면 그만큼 노동생산성이 올라갈 것이다. 

지난 10월 취임한 기시다 총리는 "신자유주의를 탈피해 새로운 일본형 자본주의를 구축하겠다"라고 공약한 바 있다. 이는 아베노믹스 △금융완화 △재정정책 △성장전략을 견지하며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정책을 수정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즉 '성장 없이 분배 없음'에서 '분배 없이 다음 성장 없음'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는 것이다. 

실제 일본 소득 격차는 매우 심하다. '세계 3위 경제 대국'인 반면 빈곤율이 15.6%(2015년 데이터)로, 7인 중 1명이 빈곤을 겪고 있다. 특히 1인 세대의 경우 빈곤율이 50.8%로 대상자 과반수가 빈곤층이다. 

일본 기업은 지금까지 생산성 올리기에 전념해온 측면이 강하다. 생산성 향상이 곧 성장이고, 그 과실을 노동자에게 분배하는 '트리클·다운(Trickle down; 낙수 효과)' 실현이 목표였다. 아베노믹스 '성장이 없으면 분배도 없다'라는 공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신자유주의가 노동자 빈곤 개선에 거의 도움되지 않고 있다는 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문제는 기시다 총리 공약을 뒷받침하는 관료라는 점이다. 일본 관료조직은 종적으로 연결돼 있다. 부처나 부서간 횡적 업무 협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코로나 위기대응 실패가 일본 관료조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 및 유럽과 비교해 감염자가 훨씬 적음에도 불구, 병상 확보가 힘들었고 유행 정보를 입수하고도 즉시 백신과 치료제 제조에 들어가지 않았다. 정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이 또 다시 코로나 위험성만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종적인 관료조직 폐해다. 

관료 개인은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하지만, 그 대부분은 무의미한 노동일 가능성이 크다. - 전 다이이치칸교은행(현 미즈호은행) 지점장인 에가미(江上剛, 68) 작가 '지지통신사' 금융재정비즈니스 기고문(2021.11.21.) 중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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