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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개론- 롯데건설 총론] '한국판 디즈니랜드'와 초고층 세운 종합건설사, 해외시장 조준

'건설 패러다임 전환' 롯데캐슬 출격…대형 복합개발 등 포트폴리오 확대 추진

전훈식 기자 | chs@newsprime.co.kr | 2022.05.13 22:30:05

서울올림픽을 겨냥한 도심형 레저시설 '한국판 디즈니랜드' 롯데월드는 그룹 기업이념 '사랑, 자유, 풍요로운 생활'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1989년 7월 모습을 드러냈다. © 롯데건설


[프라임경제] 건설사들은 대내외 경제상황과 경영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몰락의 나락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일지라도 변화 바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국내 산업 기틀을 형성하고 있는 건설사들은 급변하는 시대에 역행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건설강국을 이끌고 있는 건설사들을 탐방해 '건설사개론' 시리즈를 꾸린다. 이번 회에는 평화건업사로 출발해 국내 최고층 랜드마크를 쌓아올린 롯데건설에 대해 살펴본다.

지난 1959년 평화건업사로 출발한 롯데건설이 10대 건설사로 완전히 자리 잡은 건 2000년대 초반이다. 이전에는 20위권 끝자리를 맴돌았지만 '롯데캐슬'을 내세워 재건축 주요 플레이어로 거듭나 위상이 달라진 것. 

실제 롯데건설은 2008년 이후 10년간 연 평균 4.6%의 성장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대표 종합건설사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국내 '최고층 랜드마크'로 세계 각국의 유명인사들이 방문하는 롯데월드타워를 짓는 쾌거를 이뤄내기도 했다. 

◆'전신' 평화건업 발판 삼아 급성장…시평도 급상승

롯데건설 '전신'은 1952년 2월4일 설립된 평화건업이다. 개인사업에서 출발했던 평화건업은 첫걸음을 뗀 지 7년만인 1959년 2월3일 주식회사 형태로 법인 전환, 전후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는 동안 경부고속도로 등 국내 굵직한 여러 대형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1968년 닻을 올린 경부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한 평화건업은 전체 8개 구간 가운데 언양 및 왜관 구간 2개 공구를 맡아 기업 조직 확립 및 기술 역량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 이때 축척한 기술과 경험으로 바탕으로 1970년 서울지하철 1호선 건설공사에 참여하는 등 이후 수많은 토목 공사 수주를 이뤄내기도 했다. 

다만 '중동 붐'이 발발한 1970년대에 들어선 평화건업은 적지 않은 난관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해외공사 수주 여부에 따라 건설 시장 판도가 좌우되자 시선을 해외로 돌려 1975년 주수한 사우디아라비아 도로공사가 패착으로 작용한 것이다. 결국 평화건업은 현지사정 악화와 경험 부족으로 자금난에 시달리다 1978년 두 차례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런 평화건업을 롯데그룹이 인수하면서 현재 롯데건설이 탄생했다. 

사실 당시 우진건설을 인수해 '롯데건설'을 출범한 롯데그룹은 해외건설업체 인수를 검토하던 시기다. 이를 위해 중동시장 조사도 마쳤으며, 해외건설 조직도 갖추기도 했다. 

때마침 정부가 평화건업 인수를 권유하자 롯데그룹이 1978년 9월 평화건업 은행 부채를 승계하고, 전체 발행주식(157만5000주) 64%를 사들여 경영권을 인수했다. 그리고 이듬해 9월15일 롯데건설로 흡수합병했다. 당시 '시공능력평가 상위권' 평화건업과 합쳐진 롯데건설은 단숨에 30위권을 돌파했으며, 1980년에는 22위에 랭크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실제 롯데건설은 평화건업이 주식회사로 전환한 1959년을 기업 원년으로 삼고, 인수 시점(9월15일)에 맞춰 매년 창립 기념행사를 갖고 있다. 

이후 롯데건설은 사명을 롯데평화건설, 다시 롯데건설로 변경하는 등 이미지 변화를 꾀하는 동시에 국내 토목, 건축공사 및 그룹 내 자체공사에 주력했다. 다만 하지만 평화건업 인수 주요이던 해외사업 '부진의 늪'을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88년 서울올림픽 특수와 주택사업 활성화로 활황기였던 국내와 달리 날로 열악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1885년 해외사업부를 완전 해체해 국내 부서에 편입시킨 롯데건설은 수주활동에 열을 올렸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올림픽 훼밀리아파트 등 대단위 프로젝트 공사를 잇달아 수주했으며, 대형 그룹공사 △롯데호텔신관 △롯데월드도 성장의 발판이 됐다. 

특히 '롯데월드 건립'은 그룹 전체적으로도 중요 프로젝트다. 

올림픽을 겨냥해 도심형 레저시설 '롯데월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한 롯데그룹은 △1985년 사업계획 △1986년 건축허가 승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89년 7월 드디어 '한국판 디즈니랜드' 롯데월드가 테마파크 개관과 함께 그룹 기업이념 '사랑, 자유, 풍요로운 생활'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롯데월드 공사 효과 탓인지 롯데건설은 1990년 시평 순위가 9위까지 급상승했다. 다만 이를 유지하지 못한 채 1995년 15위, 90년대 후반에는 19위까지 밀려났다. 단순 시평 하락에 그치지 않고, IMF 외환위기 당시(1998년)에는 400%가 넘는 부채비율과 아파트사업 부진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롯데캐슬 '성공 신화' 재건축 강자 자리매김

이때 부활의 불씨를 붙인 게 롯데건설 위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로 작용한 '롯데캐슬(1999년 론칭)'이다. 

롯데건설에 따르면, 경영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찾던 중 한 시행사의 서초동 고급아파트 건축 의뢰를 계기로 '롯데캐슬' 브랜드를 고안했다. 

1990년대 후반 부진을 면치 못하던 롯데건설이 새롭게 위상을 정립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99년 론칭한 '롯데캐슬'이다. 사진은 원주 롯데캐슬 더퍼스트. © 롯데건설


롯데캐슬은 '성과 같이 좋은 아파트를 짓겠다'는 의미에서 단지 전면을 화강암으로 축조했으며, 입주자가 입구에 들어설 때 유럽 성 주인이라는 느낌을 선사하는 고급화 효과로 재건축시장 신성으로 부상했다. 20위권이었던 시평 순위에도 불구 2001년부터 재건축 수주로는 '빅5'로 손꼽혔다.

업계 관계자는 "당시 아파트에 마을이나 건설사 이름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었고 브랜드라는 개념이 없었다"라며 "하지만 롯데건설이 국내 건설업계 최초 롯데캐슬을 내놓으면서 패러다임 전환을 이끈 출발점이 됐다"라고 회상했다. 

롯데캐슬 성공에 힘입은 롯데건설은 시평 순위도 △2000년 17위 △2001년 15위 △2002년 11위로 빠르게 점프했다. 특히 8위로 등극한 2003년 이후 한 번도 10위권 밖으로 나가지 않고 10대 건설사 위치를 수성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국내 주택에 편중된 사업 구조를 지적하고 있지만, 롯데건설은 플랜트 사업 투자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나아가 해외사업 및 대형 복합개발 등 포트폴리오 확대에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 대규모 플랜트 전문인력을 채용한 2008년 당시 요르단에 400㎿급 가스복합화력 발전소 건설 공사와 함께 LPG 저장탱크 건설 공사(4000만달러 규모) 등 수주를 이뤄냈다. 아울러 다양한 플랜트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요르단 전체 발전량 15%를 차지할 대형 프로젝트 '알카트라나 발전소'도 수주, 2011년 성공적으로 준공했다.

◆창업주 숙원사업으로 탄생한 초고층 건물 '롯데월드타워'

물론 롯데건설 역시 다른 건설사와 마찬가지로 2008년 전 세계를 휩쓴 글로벌 금융위기를 피하지 못했다. 다만 2009년 3월 '비전(Vision) 2018' 선포식을 통해 세부 목표와 전략을 수립하는 등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롯데건설에 따르면, △현장경영 △인재경영 △창조경영 세 경영방침 아래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사업별 중장기 전략을 수행했다. 국내에서 수익성 위주 사업을 전개하는 동시에 해외에서는 계열사와의 동반 진출을 적극 추진한 것. 

대한민국 랜드마크를 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롯데월드타워'는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꿈이자 숙원사업으로, '세계 최고의 것이 있어야 외국 관광객들을 한국으로 유치할 수 있다'는 의지로 탄생했다. © 롯데건설


그 결과 2014년 롯데센터 하노이 프로젝트 등을 비롯해 동남아 중심으로 기념비적 공사를 수행했다. 특히 공사비만 4억달러를 투자한 롯데센터 하노이의 경우 지하 5층~지상 65층(높이 272m) 규모로, 연면적만 해도 63빌딩 1.4배에 달하는 25만3402㎡에 달한다. 무엇보다 하노이 최초 지하 5층 구조로 건설하면서 현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해외에서 꾸준히 사업 확대를 꾀하며 많은 성과를 거뒀으며, 플랜트사업 역시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해외 공략에 나섰다. 

반면 국내에서는 초고층에 대한 기술력과 집념으로 대한민국 랜드마크를 넘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롯데월드타워'를 세웠다.

지난 2010년 11월 착공을 시작해 준공까지 만 6년 3개월이 소요된 롯데월드타워는 △지하 6층~지상 123층(높이 555m) △연면적 42만310㎡에 달하는 초고층 건물이다. 롯데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의 꿈이자 숙원사업으로, '세계 최고의 것이 있어야 외국 관광객들을 한국으로 유치할 수 있다'는 의지로 탄생했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록을 세운 다이아그리드 공법이 적용됐으며, 사용된 철골만 해도 파리 에펠탑 7개 지을 수 있는 5만톤이며, 총 투입 근로자 500만명(하루 근로자 평균 3500명)에 달했다. 

한편 롯데건설은 올 2022년 지난해에 이어 종합 디벨로퍼 역량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복합개발사업 수주역량을 확보하는 한편, 금융모델 발굴 및 우량자산 투자 등으로 사업영역을 다각화한다. 더불어 △자산운영사업 △실버주택사업 △물류센터 △친환경사업 등 운영사업 확대를 통해 수익구조 다변화로 중장기적 성장모델을 발굴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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