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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욱기 칼럼] 곡신불사(谷神不死)의 낮은 자세

 

김욱기 한화 컴플위 자문위원 | press@newsprime.co.kr | 2022.05.13 11:09:08
[프라임경제]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만고의 진리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내린 물은 개천과 강으로 흘러들어 거대한 호수를 만들기도 하고, 종국에는 바다에 이른다. 

물이 흘러 모이는 곳은 마르지 않는다. 마르지 않는 낮은 곳에 생명이 잉태하고 성장한다.

낮음과 낮춤의 현묘함을 표현한 말이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계곡의 신은 죽지 않는다'는 뜻의 곡신불사(谷神不死)다. 가뭄으로 온 세상이 타들어가도 마르지 않는 낮은 계곡은 끈질긴 생명력과 강인한 정신력을 상징한다.

지금의 세태를 보면 온통 높고 강함만을 추구하고 있다. 모두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고 싶어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을 갖고 싶어 한다. 그렇게 거머쥔 권력과 부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한다. 알량한 힘으로 약한 이들을 괴롭히는 소위 갑질도 결국 자신의 강함과 높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높고 강함은 생각처럼 오래가지 못한다. 종종 진정한 승리는 시간이 흐른 뒤에 결정되곤 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승리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곡신불사의 정신을 지닌 경우가 많다.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라는 다윈 진화론의 대명제가 인간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런 사람들이 지닌 첫 번째 덕목은 겸손(謙遜)이다. 자신을 낮추고 낮은 자세로 사람을 대하는 겸손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용기와 자신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겸손은 자주 양보의 미덕을 요구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도 섭섭해하지 않는 아량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또한 겸손은 당장의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눈앞의 권력과 이익에 현혹되지 않고 더 멀리 내다봐야 하는데 그럴 경우 당장은 손해처럼 보인다.

두 번째 덕목은 끊임없는 자기반성이다. 반성을 한다는 것은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을 되짚어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잘못을 알고 인정하기에 자신을 낮출 수 있고 잘못을 되짚어 바로잡으려 하기에 나날이 나아진다. 자기반성은 호수와 강을 더 넓고 깊게 만들어 더 많은 물이 모여들게 만드는 준설작업과도 같은 것이다.

세 번째 덕목은 경청(傾聽)이다. 말이 힘이고 권력인 시대에 많은 말을 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 많이 듣는 것이야말로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오늘날은 SNS를 통해 누구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런 시대가 되면 사람들의 말이 좀 더 품위 있고 절제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걸러지지 않은 말들이 거칠게 내뱉어지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듣기에 거북한 말들이 많아진 만큼 경청하기도 힘들어졌다. 경청을 위해서는 더 큰 인내와 배려가 필요하게 됐다. 인내와 배려는 자신을 낮춰야만 가능한 것이다.

낮은 자세로 삶을 산다는 것은 '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 '깊은 강이 고요히 멀리 흐른다', '힘을 통한 제압보다 인내와 배려가 더 큰 울림을 준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만 호승심과 공명심, 권력과 부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소위 '지기추상 대인춘풍(持己秋霜待人春風)'의 면모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노자가 말한 곡신불사의 낮음의 오묘함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온통 속도와 높이, 강함과 많음,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지금 시대에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은 절제와 낮춤, 부드러움과 고요함, 정직하고 담백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작은 깨우침을 얻었다.

김욱기 한화 컴플위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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