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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라멘지로에 열광하는 '지로리안'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2.03.28 09:46:34
[프라임경제] 도쿄 게이오대학 미타(三田) 캠퍼스 정문 앞 근처에 50년 넘은 '라멘지로' 본점이 있다. 노란색 단출한 간판, 식권 자판기, 예약제 없음, 카드사용 불가, 주방을 둘러싼 객석 등 일본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라면집 분위기다. 다만 입구에 늘어선 긴 줄이 예사롭지 않은 점포임을 대변한다. 이곳이 2009년 영국 가디언지에 의해 '세계에서 먹어야 할 50개 요리'에 선정된 지로라면 총본산이다.

일본에서의 '라면(라멘)'은 면 부문 국민식으로 부를 만큼 대중화된 음식이다. NTT 타운 페이지(2022년 3월)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라면집은 2만4000여곳. 여기에 라면을 메뉴에 포함하는 중화요리점이나 일반 레스토랑까지 더하면 그 숫자가 최소 10만이 넘는다. 

라면은 이제 해외에서도 일본 대표 대중 음식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라면은 점포마다 조리법과 맛이 다르다. 각자 방식으로 스프를 만들고, 면도 직접 뽑아 쓰는 점포가 많다. 

라멘지로 미타본점 소(小)라면. ⓒ 야후 재팬 2022년 독자투고


'라멘지로 라면'은 수제비처럼 넓고 굵은 면발, '돈코쓰' 베이스 간장 맛 스프, 푸짐한 토핑(데친 채소‧두툼한 챠슈‧다진 마늘)이 특징이다. 양이 많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면과 토핑이 일반 라면집 두 배 이상이다. 웬만한 사람은 소(小) 한 그릇으로 충분하다. 욕심을 내고 '오모리(곱빼기)'를 주문했다가 남기기라도 하면 주변에서 눈총을 받을 수도 있다. 라멘지로에는 고객이 지켜야 하는 불문율이 있다. 협소한 공간(객석 13개)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로리안'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든 이용규칙이다. 

지로리안은 라멘지로를 열렬히 응원하고 빈번하게 출입하는 '광팬'을 의미한다. 이들은 고객이 점포에 도착해 먹고 나가기까지 과정을 단계별로 시시콜콜 정리해 놓았다. 그 내용은 이용 고객이 점포에서 준수할 사항을 나열해 놓은 것으로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30가지가 넘는 규칙 중 일부를 소개한다. 

-자리가 나더라도 점원 지시가 있을 때까지 서 있을 것 

-식권을 낼 때 미리 토핑 얘기를 하지 말 것(초보자 티 남) 

-토핑 질문을 받으면 0.5초 내 대답할 것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 만지작거리지 말 것(남들이 화냄) 

-친구나 커플이라도 절대 얘기 나누지 말 것 

-한 입 먹고 맛있으면 점원에게 "오늘도 맛있습니다"라고 한마디 건네는 것이 예의 

-생마늘은 국물에 섞지 말고, 자연스럽게 섞이도록 할 것 

-다른 사람 속도를 살펴 자신이 늦으면 페이스를 올릴 것 

-친구가 먹더라도 자신이 다 먹었으면 바로 일어설 것 

-먹은 후 테이블을 티슈로 닦고 착한 척하지 말 것(기름기를 퍼지게 할 뿐) 

-꼭 준비해간 티슈를 사용할 것 

-친구를 데려갔을 때 "대단하지" 등 자랑하지 말 것(대단한 건 라멘지로이지, 그대가 아님) 

-다른 사람에게 피해되지 않도록 곱빼기도 5분 내 끝낼 것(여자도 마찬가지) 


고객들은 이처럼 불공정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없다. 또 라멘지로 한 그릇을 위해 30분 정도는 예사로 기다린다.

문화평론가 하야미즈(49)는 라멘지로 문화를 만들고 솔선수범하는 지로리안에 대해 "이들은 라멘지로가 특별히 맛이 있어서라기보단 그저 먹지 않고는 못 배긴 무리"라며 "이들이 추구하는 건 라면이 아니라 '지로'라는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로리안은 '지로 먹는 건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수시로 본점과 직계점포를 순례하면서 메뉴‧맛‧가격‧서비스 정보를 교환한다. 최근에는 라멘지로 점포에 혼자 가길 주저하는 사람을 위해 가이드 역할을 하는 지로리안도 등장했다. 

라멘지로 미타 본점 외관. ⓒ 야후 재팬 2022년 독자투고


와세다대학 대학원생 시미즈(24)는 교통비를 부담해주는 의뢰인과 동행하고, 함께 라면을 먹는다. 이때 라면값은 각자 부담이다. '연간 200식 이상 라멘지로 라면을 먹는다'는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다. 

라멘지로는 도쿄도 등 수도권에 본점과 직계점포 42곳이 있다(2022년 1월). 직계점포는 본점 창업자에게 수련한 제자가 독립해 창업한 점포다. 이들 점포는 프랜차이즈와 달리, 맛과 메뉴 구성, 가격설정 등에 대해 권한이 제공된다. 일본 전통 '노렌와케' 방식이다. 

이때 제자는 점포를 운영하는 동안 반드시 주방을 지켜야 하고, 이를 어기면 바로 파문을 당한다. 

그 밖에 제자 점포에서 파생한 '아류'나 수행과정 없이 라멘지로를 따라 하는 '인스파이어(Inspire) 계열'도 라멘지로를 표방하지만, 이들은 상표 등록된 라멘지로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한편 라멘지로는 1968년 일식 요리사 야마다 다쿠미(山田拓美‧79세)가 창업한 라면 전문점이다. 

1970년대 점포를 게이오대학 근처로 이전한 이후 학생들에게 가성비 높은 라면을 제공하고 있다. 2019년 게이오대학은 오랜 세월 학생들과 교분을 쌓아온 공적을 기려 그를 '게이오대학 특별회원'으로 인정하고 표창장을 수여했다.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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