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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 600년 전에 보낸 편지

 

이종엽 발행인 | lee@newsprime.co.kr | 2022.03.25 10:48:11

[프라임경제] "부패 기득권 권력을 타도하고 오로지 백성을 위하며, 도덕과 합리적 개혁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것이다."

우리는 권력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과거의 낡고 부패한 세력들을 몰아내고 독점된 부도를 골고루 나누고 능력에 따라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고 강토를 유린하던 외적들도 회유와 협상을 통해 백성들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로 했다. 

다소의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과거 권력 주변에서 실력은 출중하지만 줄을 대지 못해 값싼 동정이나 받던 자들은 이제 계획대로 부패 세력들을 타도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야 했다. 천리 밖은 물론 황성에서도 우리에게 힘을 보태기 위한 행렬은 이어졌다. 동지들의 의기와 눈빛은 분명했다.

우리가 꿈꾸고 현실로 만들 세상은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로 만세토록 칭송받을 것이라고.

시간이 흘렀다. 개혁 동지들 사이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참극은 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과거 부패 세력들과 그 주변인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참극은 재빨리 수습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일부 동지들과 가족들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 뒤 빗장을 걸었다.

우리는 백성을 위한 새로운 세상 만들기는 멈출 수 없었고 외적 또한 호시탐탐 강토를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힘을 만들어야 했다.

그 사이 시간이 또 흘렀다. 이제 몇 번의 참극이 있었는 지 아득하다. 어제의 개혁 동지들은 노쇠해 총기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 동지의 아들과 가문의 사람들로 채워졌다.

관복의 색과 흉배의 모습도 더욱 존귀한 위치로 올라선 듯 하다. 임금이 몇 번 바뀌면서 초가는 팔작지붕에 솟을대문으로 바뀌고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조반에 올라오는 찬의 숫자도 늘어났다.

이제 사람도 가려서 만나야 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달라지고 있다. 아니 사람들이 다르게 기억하고 싶어지게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변화를 줘야 한다. 사람들은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 먼 옛날 서로 다른 '두 명의 임금'을 이야기 한다.

혹자는 그 두 임금 시대에는 '도적이 없고 백성들이 배불리 살던 시절'이라고 이야기 하고 혹자는 '세상이 평화롭고 임금은 백성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시절'이라고 말한다.

오늘 임금에게 궤장(几杖)을 하사받았다. 조야(朝野)에서 물러나 옛 성현들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싶지만 나를 쳐다 보는 가문의 사람들과 문도들이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라의 법과 제도를 고치기로 했다.

하지만 백성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욕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었다. 백성들은 멀리 있지만 문도들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시라. 우리가 든든하게 지켜줄테니 조금만 더 바꾸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이제 곧 눈앞에 펼쳐진다."

이번에 등극할 새 임금은 궁궐에 나쁜 기운이 가득하니 새로운 궁궐을 짓겠다고 한다. 새 임금에 오를 자는 결단력이 빠르고 과감했다. 부인 또한 남달랐다.

새 임금에 오를 자는 이미 또 다른 '두 명의 임금'과 측근들을 나락으로 떨어 뜨렸다. 이제는 나의 자리와 문도의 안위 또한 위태롭다.

끝없는 후회가 밀려든다. 우리가 바라던 세상은 보지 못했고 백성 또한 이제 경멸의 눈으로 우리를 쳐다 보고 있다. 

30여년전 우리 사대부들이 꿈꾸던 세상을 이제 곧 등극할 임금 이방원은 분명히 알고 있다.

피의 역사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되며 백성들이 의심의 눈으로 보고 있는 소수의 권력 집단이 아닌 오로지 백성들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이 바로 먼저 떠나간 자들의 유언이자 다가올 미래에 대한 백성들의 희망이다.

(임인년 봄날 벗이 보낸 편지에 답장을 보내며.)

이종엽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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