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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기회의 시간, 바로 지금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2.01.12 09:47:50
[프라임경제] 관성은 시간과 결이 같다. 오래된 시간에는 관성의 힘이 작용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 그러한 관성을 일으키는 힘은 타력(惰力)이다. 타력은 버릇이나 습관이 갖는 힘을 의미한다(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삶이 과거의 관성에 의해 이끌려 왔다면, 당장 새로운 것을 취하기는 힘이 든다. 앞으로 나아갈 저력을 찾는 것 또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대개 움직이는 것들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한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으면 제 힘을 잃고 제 빛도 잃는 법이다. 

머무르지 않고 움직이려는 능동적인 사람들은 변화를 과감히 수행하고자 한다. 그들은 변화의 득과 실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부류다. 그럴 것이 변화는 양면의 성질이다. 명암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은 변화가 지니는 성질 탓이다. 때문에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지금의 순간을 영원처럼 바라며 흔들리지 않는 삶을 추구하려 한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에서 변함없는 '안정'을 추구하며 만족해한다. 그야말로 관성(慣性)이 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순간이다. 관성은 변화와 결을 달리 한다.

관성이란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버릇처럼 굳어진 습성이다(출처 고려대한국어대사전). 다시 말해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각자의 관성을 갖는 것은 삶의 순리기도 하다. 그러나 관성이 삶을 상쇄하는 순간 인생의 성장은 멈추게 된다. 더 이상 바뀌어 달라지지 않고 머물러 있게 된다.

안정이야말로 내면이 추구하는 고도의 경지가 분명하다. 그러나 자칫 관성의 힘을 빌어서 안정을 좇을 때가 문제다. 그것은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지 않고, 팽팽하게 탄력 받은 인생의 줄을 제 자리에서 잡고 있는 것과 같다. 

대개 목표를 세우고 타력을 키우는 것은 인생의 절정을 향해 내달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어떠한 목표도 없이 제 몸이 이끄는 관성에 젖게 되면, 삶을 상쇄하고 그 삶은 안정이라는 덫에 곧바로 포위당하고 만다. 때문에 제 삶에 깊숙이 깃든 악질의 관성을 알아차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이끈 관성은 표면적으로만 삶을 지탱해주는 무엇이 되기 쉽다.
  
좋은 씨앗이 곧은 줄기를 내 듯 목표가 깃든 습관은 인생의 방향을 끌어올려 가능성을 점지한다. 그렇다 보니 양질의 타력을 키우는 것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것도 없다.
 
또 양질의 타력은 변화를 이끌어 성장을 돕는다. 그것은 삶의 순간마다 살아있는 지금을 만끽하게끔 한다. 그래서 날마다 하고 싶거나 바라는 일들로 활력이 채워지게 된다. 그에 반해 관성은 지나온 과거를 뒤돌아보거나 한치 앞의 미래도 그리지 못하게 한다. 스스로가 세운 공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제 자신을 옭아맬 뿐이다. 그러므로 제 삶의 방향성을 반드시 알아차려야 하고, 그것을 양질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만 한다.
 
타력의 정도를 가늠하는 것은 삶을 옭아매는 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악순환을 일으키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제 삶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다. 살아 숨 쉬는 한 우리의 삶은 어떠한 방향으로든 나아가야만 한다. 그것이야말로 살아있음의 증명이다.

새해가 밝았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들도 새로운 시대와 계절 앞에서는 하나둘씩 변하고 만다. 그러고 보니 새해에는 과거의 시간에 젖은 관성이 새 삶에 스며들 틈이 없다. 모든 것들이 부활되는 때라서 그렇다. 떠오르는 태양도, 나이도, 달력도 하물며 마음도 그러하다. 이 때야 말로 케케묵은 관성으로부터 해방되는 절묘한 '때'가 아니겠는가. 

강한 관성에 이끌렸던 삶에서 한껏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그런지 새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다. 으레 묵혀두었던 관성을 버리고 새로운 것들을 탐방하기 시작한다. 이것저것 고대하던 것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이 삶은 활기를 띄면서 생명력을 갖는다. 

그래서 새해에는 바쁘지만 새로워지며 저마다의 얼굴에 밝은 기운이 넘쳐난다. 해의 바뀜으로 기꺼이 삶의 변화를 맞이한 셈이다. 그러고 보니 관성은 제 안에 쌓인 해묵은 각질일 수도 있겠다. 

여태껏 강한 관성의 힘으로 제 삶이 이끌려 왔다면, 지금의 새로운 '때'를 주시해야만 할 것이다. 이제 과거의 각질을 말끔히 벗겨내고, 기꺼이 시간의 변화를 맞이하자. 양질의 타력(惰力)을 키워서 올해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놀라운 타력(打力)을 발휘해보도록 하자.


이다루 작가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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