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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업의 성과측정, 올바른 기준과 방법에 대한 고민

산업·시장 변화로 성과측정 기준과 방법 새롭게 모색해야

한현석 서울IR 네트워크 대표이사 | press@newsprime.co.kr | 2021.12.23 11:56:58
[프라임경제] "나는 보았으므로 안다. 조선 수군들은 물 위에 떠다니는 아군들의 시체를 갈고리로 찍어 건져 올려 갑판 위에서 목을 잘랐다. 목이 잘린 시체들은 다시 물에 던져졌다. 그 머리의 숫자로 지휘관들은 승진했고, 장려한 수사로 넘치는 교사를 받았다."

김훈의 역작 '칼의 노래' 일부다. 임진왜란 당시 임금(선조)이 적의 수급(首級)으로 전공을 평가하다 보니, 살아있는 적군을 죽이는 일보다 이미 죽은 적군이나 아군의 시신에서마저 목을 베는 병사가 많았다고 한다. 잘못된 성과측정 방식이 조직의 목표를 얼마나 그릇된 방향으로 가게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일반적으로 연말이 되면 기업성과가 집계되고, 구성원에 대한 평가도 이뤄진다. 구성원에 대한 평가는 연봉 인상 또는 인센티브 책정기준이 되므로 매우 예민한 사안이다. 이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져야 구성원의 신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공정한 평가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평가'는 본질적으로 '성과'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 성과란 '일을 통해 기대되는 결과물'이며, 성과를 측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준'이다. 만약 그 기준이 실적 등 단기 목표치로만 설정된다면, 구성원들은 기업의 장기 목표에 기여하는 노력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단기 성과주의를 부추길 뿐만 아니라 진취성과 위험 감수 의지를 저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혁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확실하지 않은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혁신은 실험을 수반한다.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데는 실패의 가능성이나 위험이 따른다. 단기적 목표에만 맞춰진 성과측정 지표로 인해 위험을 감수할 의지가 꺾인다면 성장의 싹은 자랄 수 없다.

성과측정의 방법도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기업은 구성원의 성과를 수치로 환산해 평가하고 있다. 소위 '숫자'로 평가하는 것이 투명하고, 객관적인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성원은 조직이 미리 설정한 목표 수치에 맞게 일하도록 강요받게 되고, 보다 가치 있는 자질로 여겨지는 혁신성과 창의성은 억압된다.

에런 해스펠(Aaron Haspel)은 "계량화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존재하는 것은 모두 계량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계산 가능한 것만 중요하다는 것은 인간을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오류다. 

'수치'에 함몰된 측정 기법은 부적절한 측정이나 역효과를 낳는다. 물론 객관적 공정성은 중요하다. 모든 요소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 계량화할 수 없는 정성적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

정성적 평가에 대한 고민은 성과측정에 따른 보상의 문제로도 이어진다. 연봉, 인센티브 등 조직의 '보상'은 구성원의 동기부여와 직결되고 장기적으로 경쟁력 제고로도 이어진다. 계량화된 성과측정으로만 평가된다면, 조직의 본질적인 목표들이 희생될 수 있다. 

정량적으로만 측정된 성과에 근거한 보상 시스템은 구성원 간에 협업이 아닌 경쟁을 부추기는 경향을 낳기도 한다. 서로 돕고 지원하며 조언하기보다는 창출되는 인센티브에 따라 움직이기도 하고, 자신의 측정 지표만을 극대화하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대부분의 구성원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많은 활동을 통해 회사에 기여한다. 업무와 관련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동료들과 공유·교환하기도 하며, 협업에 참여하고 후배 직원을 멘토링하는 등 각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비록 수치화할 수 없지만,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다. 필자가 일하는 서울IR은 이 점을 중요하게 여기며 정량적 실적뿐만 아니라 △새롭게 시도한 업무 △아이디어 제안 횟수와 내용 △성장을 위한 세미나 참가 횟수 △고객과 관계 맺기 활동 등 정성적 요소도 중요하게 평가하고 있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의 말이 진리일 때가 있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이 주류일 때는 보이는 숫자가 성과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주류 산업과 시장이 바이오, 콘텐츠, 게임, 로봇, AI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오늘날은 눈에 보이는 숫자보다 연구개발 능력, 상상력, 창의력, 디지털 역량 등 보이지 않는 무형 요소가 더 중요한 자질로 평가된다.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굳게 믿고 있던 진리도 결국 변하게 마련이다. 변화된 산업과 시장은 성과측정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준과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한현석 서울IR 네트워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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