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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위클리 재팬] '도시 전설' 유령 출몰하는 총리 공저

 

장범석 칼럼니스트 | press@newsprime.co.kr | 2021.12.20 10:04:37
[프라임경제] 지난 10월4일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12월11일 관저 근처 공저(公邸)로 이사했다. 공저는 관저에서 업무를 마친 총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다. 총리가 공저에 입주한 건 2011년 민주당 노다 정권 이후 9년 만이다. 

2012년 12월 정권을 탈환한 아베 신조(安倍晋三·67) 전 총리는 거의 8년간 사저(자택)에 거주하며 관저로 출근했다. 아베 뒤를 이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73) 전 총리 역시 재임 기간 중 의원 회관에서 생활했다. 

이사 이틀 뒤 기자단이 기시다 총리에게 "유령을 보았는가?"라고 묻자 "아직 보지 못했다. (덕분에) 푹 잔 것 같다"라며 밝은 얼굴로 답변했다(12/18일 지지통신). 

21세기 대명천지에 그것도 경비가 삼엄한 총리 공저에 '무슨 유령이냐'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질의응답에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과거 총리관저였던 공저는 1932년 이누카이 총리가 해군 청년 장교들에게 살해되고(5·15사건), 4년 뒤 '2.26 육군 쿠데타' 땐 오카다 내각 대신과 비서관(매제) 등 9명이 살해된 비극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1993년 호소카와 총리가 등장할 때까지 낮 동안 업무공간으로 쓰인 후 저녁때 주인이 사라지는 기괴한 건물로 바꿨다. 

이런저런 '도시 전설'이 생겨도 이상할 게 없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그동안 총리 26명이 사저에서 출퇴근하고, 7명만이 공저에 입주했다(2명은 공·사저 공동이용). 현재 공저는 철근 콘크리트 4층 건물에 연건평 7000㎡(약 2120평) 규모로 2005년 오픈했다. 2002년 새로운 관저 건설 당시 1929년부터 사용하던 구 관저를 해체하지 않고, 위치를 약간 옮겨 증·개축하고 나서다. 

호소카와 이후 총리 13명이 차례로 입주하며 제 기능을 찾는 듯했던 공저는 아베가 2012년 12월 두 번째 정권을 잡으며 다시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 일본 총리관저 홈페이지

공저에 입주하지 않은 채 역대 최장 정권을 운영한 아베는 이듬해 기자간담회에서 "(1차 정권 때 생활했지만) 그다지 있고 싶지 않은 곳이다. 무엇보다 침실이 너무 넓다. 마음이 편하지 않아 칸막이를 사용했더니 갑갑했다. 어쩌다 '숙박'해도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간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다"라고 언급했다(12/14일 데일리 신쵸). 

하지만 자민당 간부를 공저에 초대한 회식 자리에서는 "유령이 나와 싫다. 함께 살지 않겠는가?"라고 입주하지 않는 이유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는 2013년 참의원에서 "공저에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총리가 공저에 이사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인가?"라는 민주당 의원 질문에 대해 "유령 소문은 알고 있지 않다(承知していな)"라는 답변서를 각의에서 의결했다. 유령 존재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는다는 생각의 일단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도시 전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도 아베가 처음이었다.

유령과 관련된 역대 총리와 가족 증언들(출처 위키피디아 일본 외) 

△1993년 호소카와는 공저 내 향불을 피워 놓고 지냄
△1994년 하타 부인은 저서를 통해 "오한이 엄습했다. 뭔가 가슴을 짓누르는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라고 증언하면서, 영매에게 "정원에 군인이 있다"라는 얘기를 듣고 소금을 뿌림
△2000년 모리는 퇴임 직전 침실에서 누군가 도어락을 돌리는 소리에 잠을 깨 "누구냐"고 소리치며 뛰어나갔지만, 아무도 없었고 잠시 후 군화를 신은 무리가 행진하는 소리를 들음
△2005년 고이즈미는 "유령에 주의하라"라는 모리 총리 충고를 받아들여 불제(신도 의식)를 치름. "유령을 만난 적 없지만, 한번 보고 싶다"라는 발언이 기록에 남음 
△2009년 아소는 "옛날에는 유령이 곧잘 나왔다"라고 증언. 밤에 덜커덕거리는 소리가 나면 침대 위에 정좌하고 "이번에 총리가 된 아소 타로입니다"라고 인사
△2009년 하토야마 부인은 "유령을 보았다"라고 증언
△2011년 노다는 "공포는 체험하지 않았다"라면서도 "아침 관저에 출근하려는데 엘리베이터가 옥상 층에 머물러 있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가족 누구도 타지 않았다"라고 괴현상을 증언

이처럼 공저에 유령 출몰설이 끊이지 않는 데는 "총리가 공저에 들어가면 정권이 짧아진다"라는 단명설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실제 1990년대 이후 공저에 입주한 총리 13명 중 9명이 1년 6개월 내 퇴임했고, 새 공저가 들어선 2005년 이후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재임 중 전입한 예를 제외하면, 6명 모두 재임 기간이 1년 내외였다. 아베 역시 2006년 1차 정권 당시 366일 만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기시다 총리가 공저에 입주했다. 그가 도시 전설을 극복하고 단명 징크스를 깰지 자못 흥미롭다.


장범석 국제관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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