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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짐의 무게를 견뎌라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1.10.12 09:33:49
[프라임경제] 현대인들에게는 어깨에 짐이 한가득이다. 그나마 쳐진 어깨가 더 폭삭 내려앉는 기분이다. 짐이 많다는 건 무엇일까. 가진 것이 많은 걸까, 그게 아니면 주어진 것이 많은 걸까. 가진 것이 많은 것과 주어진 것이 많은 것은 다르다. 가진 것은 선택권을 활용한 것이고, 주어진 것들에는 분명한 선택권이 없다. 

주체적으로 소유하기로 선택한 것들에는 대개 책임이 따른다. 소유는 곧 내 것을 의미하고, 그런 소유권은 만족을 추구한다. 그러나 주어진 것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객체적인 의미로서 주어진 것들은 소유권을 누리기 힘들다.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어진 것들에는 의무적으로 행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짐의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 짐의 무게가 대단히 무거워졌다는 것,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이 전보다 훨씬 세졌다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짐은 재화와는 별개의 문제다. 짐의 무게가 무겁다고 많은 경제력을 쥐고 있다는 뜻이 아니니까.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더 잘 먹고 잘 살기만 한다면 바랄 게 없지만 막상 세상은 순행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짐으로부터 우리는 한시라도 벗어나고 싶어 한다. 주체이건 객체이건 간에 짊어지고 있는 많은 짐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을 우리는 날마다 꿈꾼다. 

그렇다면 어떻게 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여행이나 명상의 찰나의 해방감도 좋지만, 그것이 영원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다고 짐의 무게를 던지고 마냥 자유의지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향유하는 것에는 마땅한 대가가 따르고 의무가 따른다. 그런 제약들은 삶을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도 하지만 때론 사람을 병들게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짐의 무게에 대한 체감을 줄일 수도 있다. 그것은 마치 무게에 눌린 두 발을 이끌고 나아가는 것이 머물러 견디는 무게보다도 가벼워서다. 어쨌거나 서로 다른 두 발이 무게를 나누는 것은 짐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살기 위해 걷는다. 곱절이나 되는 짐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아간다. 그러다 때때로 중압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스스로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때에는 당연하게 쥐고 있는 것들이 짐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짐을 짊어진 삶은 절망이 되다가도 희망이 되고, 어둠이 되다가도 빛이 된다. 그것은 마치 주기에 따라 변하는 푸른 달의 모습과 같다.

그러므로 의무와 역할에 따른 제 모습을 분명히 정할 필요가 없다. 사회적으로 제시된 역할론에 맞춰 살다 보면 획일화된 기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한탄할텐가. 반복되는 자책은 자아효능감에 타격을 입힐 뿐이다. 

그래서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야말로 짐의 무게를 나누며 잘 나아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반면, 일상이 무너지는 것은 짐의 무게가 수평을 이루지 못한 상태다. 일상을 잘 지키려면 한발 멀어지는 것이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1889~1977)의 말처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그처럼 찰나의 감정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어쩌면 완만한 시각을 갖기에 충분한 거리일 수 있겠다. 

제 몸에 붙은 불평으로 가득 찬 짐을 멀리서 보면 날개가 될 수도 있다. 그 쓰임새도 모르면서 그저 무겁다고 불만만 늘어놓는다면 제 날개 한번 펴보지도 못할 수 있다.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어깨 위로 내려앉은 짐의 무게를 충분히 견뎌라. 비록 그 무게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고통일지라도 적절한 때에 나를 비상하게 만들 수 있다. 그 날개를 펼쳐 바람을 타고 오르는 순간, 원망도 고통도 순식간에 감화되고 말 것이다. 


이다루 작가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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