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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착(着)의 단상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1.09.28 09:56:19
[프라임경제] 살면서 착(着)의 순간은 종종 있다. 정신을 집중하거나 혹은 무언가에 사로잡힐 때 착은 금세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마음 안에 달라붙는다. 마음이 가닿는 곳이 착이 안착할 좋은 장소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착은 안주하고 머무르기를 좋아하는 부류가 분명한 듯하다. 어느 한 곳에 붙어버리면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양상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착에는 여러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집착, 패착, 토착 등이 그것인데, 이런 착의 형태는 주의를 필요로 한다. 착이 올곧지 않은 마음에 붙게 되면 신선식품처럼 쉽게 변질되곤 하는데, 그때야말로 제 마음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것은 집착이나 패착으로 변질될 수 있고, 때론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알아차림도 쉽지 않다. 그 순간이야말로 착이 온 생각의 전부가 돼버려서다. 시야와 생각의 반경이 좁아진 마음은 착이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순식간에 부정에 잠식당하고 만다. 그러니 착이 들어서려는 순간마다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착은 비단 부정 따위의 성질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거나 끌려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거나(애착·愛着), 또는 마음의 흔들림 없이 어떤 곳에 착실하게 자리 잡기도 한다(안착·安着). 그렇다보니 착은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마음에 쉽게 달라붙는다. 특히 마음과 생각 안에 착을 포용할 아량과 공간을 두어야만 할 것이다. 

때때로 찾아오는 착을 잘 다루려면 마음과 생각을 좀 더 단단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착으로 인해 생각이나 마음이 쉽게 병들지 모른다. 병이 들면 고통에 잠식돼 머무르게 되고 쉽게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들다. 그야말로 착의 본질이 바라는 바다. 

애착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착은 순수한 사랑에도 찰싹 달라붙어 순간이 영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음을 붙들어서 그 자리에 있게 하는 접착제처럼 말이다. 그런 애착은 곧 집착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변하는 것들에는 대개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순간의 행복, 평안 그리고 익숙함이 그대로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 할 것 없이 한결같다. 그래서 착이 찾아오는 순간에 외려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더 이상 불안이 일지 않는 순간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도취된다. 

착은 안정을 추구하는 성질이 분명하다. 지금 현재의 내가 있는 자리, 머물러 있는 생각에서 한 끗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변화의 순간을 거부하며 영원의 만족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생각과 마음이 마비가 되면 더 이상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 현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건 건강한 지금을 살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기에 미래가 보이지 않는 생각은 건강하지 못하다. 고립된 생각이 과오를 일으키기 쉬운 것도 그 이유다. 

그러므로 착의 순간을 알아차리는 힘을 갖도록 하자. 먼저 영원의 행복보다 찰나의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는 것이 좋겠다. 한결같지 않은 생각과 마음을 한결 속에 속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이룬 셈이다. 그저 순간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미 착의 순간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설령 집착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마음의 전부가 아니다. 언제든지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관심을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눈에 보이는 전부가 사실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언제라도 착이 드나들어도 괜찮다. 외려 드나드는 착이야말로 마음의 건강과 활력을 일으키기도 한다. 머물렀다가 떠나는 것들로부터 초연해지는 순간, 비로소 성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다루 작가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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