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김주헌의 시크릿 ESG] ESG 투자, 허상인가 현실인가

 

황이화 기자 | hih@newsprime.co.kr | 2021.09.14 11:59:25
[프라임경제] 격세지감이다. 10여년 전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주도한 '생태계와생물다양성의경제학(TEEB)' 프로젝트를 한국에 소개한 적이 있다. 

한국어판 보고서를 발간하고,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가 기업활동의 위험 요인임을 알리는 활동을 했지만, 대부분 '좋은 일 한다'며 덕담을 건네는 수준이었다. 

2014년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식 주주 자본주의에만 천착한 기업활동에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 '2020 새로운 기업이 온다(레몬컬쳐)' 번역출간을 기획했을 때도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런데 자고 깨니 모두들 ESG 이야기다. 

반가운 마음이 넘치지만, ESG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규범이 되어야 하기에 짚고 넘어가고 싶은 이야기들이 생겼다.

지난 20일 세계 최대 규모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한 타릭 팬시(Tariq Fancy)는 퇴사 후 '지속가능투자자의 비밀 다이어리(The Secret Diary of a Sustainable Investor)'라는 40페이지 분량의 에세이를 공개했다. 

투자 업계 정점에서 목도한 지난 몇 년간의 ESG 투자 열풍을 '혼란스럽고(confusing)' '신기루(mirage)' 같으며 '환상(illusion)에 불과하다'는 등의 표현으로 날카롭게 비판했다.

ESG 투자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세계지속가능투자연합(GSIA) 및 도이치뱅크는 지난해 상반기 40조5000억달러였던 전 세계 ESG 투자자산 규모가 2030년 130조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돈으로 약 15경2000조원 정도다. 

글로벌 5대 주요시장만 놓고봐도 ESG 투자규모가 35조3000억달러에 달했는데 동 시장 전체 자산규모의 3분의1을 차지했다. 

올해 6월말 기준 운용 자산이 약 908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도 ESG 관련 투자자산을 전체의 50% 수준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모든 투자기관들이 환경(E)·사회(S)·거버넌스(G)를 고려해 투자한다면 우리는 기후변화·생태계파괴 등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성급한 결론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세 가지 이유에서 사실과는 한참 동 떨어진 이야기다. 

첫째, ESG 투자의 정의가 모호하다는 점. ESG 투자가 얻고자 하는 것은 실적인가, 아니면 온실가스 감축 등 실질적인 임팩트인가. 

글로벌 재생에너지투자전문가 아사드 라주크(Assaad Razzouk)에 따르면, 2020년 미국에서 운용되고 있는 253개의 펀드가 ESG를 주요전략으로 내세웠는데, 실상은 이들 중 87%가 보유 주식과 채권을 바꾸지도 않은채 앞에 'ESG' '지속가능한' 혹은 '녹색'을 붙인 것 뿐이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즈도 지난 27일 씽크탱크 인플플루언스맵(InfluenceMap)을 인용, 소위 기후투자로 분류되어있는 130개 펀드가 약 1억5300만달러를 화석연료 공급망과 관련된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중 총자산규모 670억달러에 달하는 72개 펀드는 정유회사 등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에 정반대의 목적을 가진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장환경주의(greenwashing)다.
 
둘째, ESG 투자 집행 기준도 모호하다. 한 예로 산림파괴는 온실가스 배출의 주원인 중 하나다. 영국의 씽크탱크 카본트랙커(Carbon Tracker)에 따르면, 소위 ESG라는 라벨링을 붙인 펀드 중 78%가 산림파괴와 관련된 내용을 투자 적격기준 목록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산림파괴를 하는 기업도 ESG 우수기업이 된다는 이야기다. 

BNP파리바 은행은 지속가능투자를 홍보하고 있지만, 실상은 해양석유 및 가스시추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은행 중 하나다. 글로벌 정유 가스 회사들은 기업활동을 통해 온실가스를 배출하지만, 나무를 심고 이를 통해 배출권를 얻어 탄소배출 상쇄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통해 소비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이들이 어디서 어떻게 나무를 심는지, 나무를 심는 방법이 중장기적으로 얼마만큼의 온실가스를 흡수할 수 있는 지, 그렇게 조성된 숲이 지속가능한지에 대해 어떤 검증된 내용도 없다. 

이렇게 대다수의 투자기관들과 대기업들이 기후위기와 지속가능한발전이라는 대의에 자기 나름대로의 브랜드를 내세우며 무혈 입성할 수 있는 이유는 시장에 공통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열풍에 휩쓸려 속이기도 속기도 쉬운 상황이다.

셋째, 집행기준이 모호하니 투자와 실행의 간극도 모호하다. ESG 투자의 거대한 축은 환경(E)에 대한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구 생태계가 무너지면 기업활동이란 것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 중 시급한 일은 탄소중립(NetZero)이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모인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난 달 IPCC 6차보고서를 발표하며 2021년에서 2040년 사이에 지구온도가 산업화 이전대비 1.5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5차보고서가 예측한 1.5도 도달 기간보다 9년~12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즉 ESG 투자는 자금의 규모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신속한 실행가능성과 그 임팩트에 방점을 더 두어야 한다. 거대한 숫자를 이야기하며 투자집행 순간 사업이 끝난 것처럼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실행의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ESG 투자의 이상적인 개념은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투자를 회수하는 것처럼 소극적인 투자방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석유화학산업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있지만 친환경원료를 고민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 태양광모듈을 생산하지만 정유사업도 하는 대기업에 투자하는 것, 재활용 원료만을 사용한 식품을 만드는 순환경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것 모두 범주가 다른 이야기고 만들어내는 실적과 실질적인 임팩트도 다르다. 

ESG 키워드로 투자 상품을 하나 검색해 보니, 구성 종목은 시가총액 상위 종목을 그냥 모아 놓은 것에 불과했다.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이 ESG 경영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당장의 환경적 넷임팩트(net impact)를 측정하는 것은 다른 범주의 이야기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기후위기 대응만을 목표로 삼고 국제금융기구에서 발주된 자금도 실질적인 임팩트를 창출하기까지는 수많은 거래비용을 지불한 후에야 가능하다. 투자집행 후 임팩트 창출까지는 그만큼 시간이 소요된다는 이야기다. 개발도상국의 경우는 상상 이상이다. 

위의 세가지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 시점에서 ESG 펀드에 투자한다고 해서, 우리 앞에 놓인 기후위기와 생태계파괴 등의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은 허언에 가깝다. 모두가 흥분해 있을때, ESG 개념 뒤에 숨어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김주헌

지속가능성 전문가
현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필리핀사무소장
전 아셈중소기업친환경혁신센터 팀장
전 유엔환경계획 녹색경제이니셔티브 컨설턴트
Greenpreneurs 창립자 및 멘토
엠와이소셜컴퍼니(MYSC) 자문위원
'2020 새로운 기업이 온다-지속가능한 기업의 4가지 조건' 외 다수 출간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