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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칼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지금은?

 

한아름 학생 | press@newsprime.co.kr | 2021.09.05 20:04:16
[프라임경제] 최근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당한 1970년대 도시 빈민들의 삶을 우화적으로 전한 조세희 작가의 연작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다.
  
키가 큰 거인도 작은 난장이도 그저 같은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난장이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와 사람답게 살고싶은 욕망은 암울한 현실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행복동의 가난은 무서울 만큼 현실적이다. 철거 계고장을 받은 주민들이 동사무소 앞에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절규를 토해내는 것, 화자의 가족 삼형제 모두가 공부를 포기한 것, 이들 부모에게 가족을 지키기 위해 평생 일한 대가로 주어진 것은 지친마음과 아픈 몸 뿐이다. 

그때와 지금의 가난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거의 달라 진 것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가난한 집의 아이들은 난장이네 삼형제처럼 철이 일찍 들고 사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쉽게 못하고 포기하는 법을 일찍 배운다. 

우리는 행복동의 난장이네 가족을 통해 가난의 실체를 볼 수 있다. 자식에게 포기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 지친 배우자에게 쉬라고 해줄 수 없는 것, 아무리 노력하고 발 버둥 쳐도 가난이 대물림 되는 것, 부모의 죄도 자식의 탓도 아닌데 서로 원망하고 서로 미안하게 되는 것, 다른 사람들의 추억 쌓기를 바라만 봐야 하는 것, 

돈 앞에 자존심을 세울 선택지가 없는 것, 위의 모든 아픔을 아무렇지 않게 참아 내야 하는 것, 사랑과 희망, 여유와 낭만, 사람답게 사는 것이 사치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등 말이다. 

지섭의 말을 듣고, 난장이 아버지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장면은 슬픔과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난장이 아버지가 가난한 삶보다 죽음이 그나마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부디 난장이 아버지가 천국에서 여유와 낭만을 느끼며 몸과 마음이 편하게 행복한 삶을 살고 있기를 기대를 해본다. 

제목의 의미를 한참동안 생각해봤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무엇인가 희망적이라고 느꼈는데, 정작 소설에는 단 한 줌의 희망도 없는 것 같다. 지옥 같은 삶에서 매일 전쟁을 치루는 행복동 주민들, 지명이 '행복동'이라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행복동의 불행이 더 극대화되어 보였다. 

부자들의 천국은 가난한자들의 지옥으로 이뤄져 있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이 떠오른다.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 것인가, 사는 지역과 부모, 이런 것 들과는 별개로 모두가 행복하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는 없을까, 끝없이 부(富)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광기, 지금 상황에서 조금 더 나아지고 싶다는 끝 없는 '인간의 욕망' 답이 없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고 이러한 현상에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 소설의 배경인 1970년대 산업화는 이미 50년 전의 이야기이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달라진 경제상황에 비해 부자들과 가난한 이들의 삶은 그다지 큰 변화가 없는 것 같다. 

앞으로 50년이란 세월이 지난 뒤, 여전히 우리들의 후손들의 삶이 가난으로 반복될까 두렵다. 2022년이 지나면 나도 성인이 되고 사회인이 될텐데, 거인들만 잘사는 세상이 아니라 곳곳에 살고 있는 많은 가난한 난장이들과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어른다운 어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한아름 양평고등학교 2학년 / 전교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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