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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루의 언어 에세이] 쓸모에 대하여

 

이다루 작가 | bonicastle@naver.com | 2021.08.27 13:10:48
[프라임경제] 얼마 전 찬장의 그릇들을 정리했다. 조금 긁히고 닳은 그릇들이 쓰레기 상자에 한가득 쌓여갔다. 볼품없어도 아직은 쓸 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내겐 쓸모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쓸모를 다했다는 말만큼 잔인한 것도 없다. 마치 퇴장해야 할 순간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살아 있는 어느 것도 제 쓸모를 다할 수 있을까. 쓸모의 한계를 정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체념이자 세상과의 관계를 끊는 일이다. 그러니 숨을 쉬는 한 쓸모를 다하는 일은 없다. 그건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쓸모를 다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꽃이 질 때도 머리가 새하얗게 변할 때에도 쓸모를 다했다고 말한다. 우리의 에너지는 내일 해가 떠오르면 다시 생성되기 마련이다. 살아 있다면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쓸모가 없다는 말은 불행을 점치는 말처럼 잔인하다. 

누구나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넓거나 크면 그 쓸모 있음에 마음이 한껏 부풀게 된다. 그러나 쓸모는 늘 한계를 두려고 한다. 영원한 쓸모란 없다는 듯, 대개 쓸모의 유용성은 한정적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쓸모를 두 가지 해석으로 풀이한다. 쓸 만한 가치 또는 쓰이게 될 분야나 부분이 그것이다. 쓸모는 값, 가격, 가치와 꽤나 잘 어울린다. 품질을 따져 등급을 매기고 서열화를 이루는 일도 쓸모가 있고/없고의 기준이 된다. 그런 면에서 쓸모는 매우 단호하다.
 
내가 쓸모없음을 비판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느 한 순간도 쓸모없는 순간이 없고 그 어떤 것도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니 말이다. 꽃이 피지 않을 때에도 꽃이 질 때에도, 우리는 꽃의 쓸모없음을 떠올리지 않는다. 모든 것은 제 역량에 따라, 때에 따라, 흐름에 따라 그렇게 변해가고 흘러간다. 거기에 쓸모의 값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

생명이 얼어붙은 겨울의 시간에도 깡마른 나뭇가지를 쓸모없다고 여긴 적이 있는가. 메말라 앙상한 가지가 잎을 펴지 않고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쓸모없다고 치부해버린 적은 없었는가. 

그 어떤 것도 쓸모라는 사명을 갖고 세상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장미도 오롯이 꽃을 피우는 쓸모를 위해 매 계절을 견뎌내는 것이 아니다. 땅과 바람, 물과의 어우러짐으로 생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소한 어우러짐으로 찰나의 기쁨을 누릴 뿐, 결코 꽃을 피우는 것만이 장미의 결실은 아닐 것이다.
 
쓸모없음은 나의 가소로운 변덕의 결실일지 모른다. 그렇게 아끼던 물건도 시간이 지나면 쓸모없다고 치부하니 말이다. 내 마음 속에서는 어떤 것도 영원히 쓸모 있기가 어려울지 모른다.

더 이상 쓸모없음에 대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쓸모를 따지는 것은 마음의 혼잣말이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혼잣말은 공감을 살 수 없다. 더구나 쓸 만한지 아닌지의 여부는 상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십상이다.

유난히 하늘의 형상이 아름다운 시절이다. 아름답게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껏 충만해진다. 그러한 감동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쓸모의 유무를 떠나서 우리는 이미 충분하고 완벽한 존재다. 


이다루 작가 / <내 나이는 39도> <기울어진 의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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