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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美 미사일-백신 선물, 한진과 삼성의 격차

정상회담에서 큰 선물…G2 대결 와중 언젠가 우리 핏값 청구서로 돌아올 것 '그러나!'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5.22 10:43:41
[프라임경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미한 우리 정상과 회담을 갖고, 통 큰 선물들을 다수 안겼습니다. 21일(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 성료 후 문재인 대통령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동 회견을 가졌는데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군과 정기 접촉하고 있는 한국군 55만명에 대해 백신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거기에 더해, 문 대통령은 "기쁜 마음으로 미사일지침 종료를 전한다"고 양측 회동 결과 중 또 하나의 깜짝 이슈를 입에 올렸는데요.

미사일지침이 이번에 수정 내지 폐기될 것이란 소리는 우리 정상이 방미 일정에 오를 즈음부터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확실히 결론날지 많은 이들은 확신하지 못했더랬습니다.

이는 한국의 미사일 최대 사거리 및 탄도 중량 등을 제한하는 족쇄였죠. 미사일지침 종료는 최대 사거리 및 탄도 중량 제한이 해제된다는 뜻으로, 동북아 정세에서 큰 충격파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일단 명분론적인 시각에서는 한국은 이제 드디어 '미사일 주권'을 확보하게 됐다고 할 수 있고, 유사시엔 알아서 국제전쟁을 벌이라는 미국 측의 암묵적 허락을 얻었다는 음모론적 시각도 대두됩니다.

핵을 갖고 장난질을 치는 북한을 상대하려면 그간 묶어둔 주먹을 이 정도로는 풀어줘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이런 시각은 전쟁과 동북아 정세에서 강경한 편인 미국 군부의 시각만은 아닌 것이죠. 정부 내 관계자들 거기에 바깥에서 움직이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지식인들까지, 그야말로 조야의 논의가 백악관을 움직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유사시엔 평양은 물론 베이징까지도 사정권에 둘 무기를 한국에 쥐여준 셈이니 미국과 중국이 G2 대결(환율 전쟁에 이어 무역 전쟁, 지금은 반도체 전쟁으로까지 버젼 업이 이뤄지고 있는 긴 전쟁)에서 한국이 우군이 돼 주길 바라는 당근인 셈입니다.

그렇잖아도 자꾸 백악관 회의에 글로벌 반도체 명가인 삼성을 끌어드리려고 해서, 사실상 중국인지 미국인지 한 손을 확실히 잡도록 압박을 하고 있는데요.

채찍만으로는 안 되겠으니, 이제 당근도 몇 개 주는 게 아닌가 경사스러운 가운데서 걱정스러운 시각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유사시에 베이징 상공에서 폭죽놀이(미사일)도 해 주고, 이번에 백신 얻어 맞힌 55만명 '라이 따이한(용맹 한국군)'들이 압록강 너머로 돌격하는 것도 좀 고려해 달라"는 비싼 피로 갚을' 청구서를 보낸 셈입니다.
  
문대통령은 이번 회견에서 "기쁜 마음으로" 표현을 종종 했습니다만, 아마 마음은 편치 않았을 것입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 주한 미군 2개 사단을 월남으로 이동시킬 것이라는 미국 통보에 고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얼마나 고심했을지 떠올렸을 겁니다.

북한의 위협에서 '인계철선' 역할인 주한미군을 잡기 위해 일부 한국군 병력을 대신 참전시키자는 일부 건의를 저울질하면서 탄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백신과 미사일 선물을 받지만 나중에 돌아올 청구서 규모의 가늠에 정신이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과 우리는 다릅니다. 1960년대~1970년대 내내, 훨씬 전인 2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인 M-1과 그 자매품인 카빈 소총을 들고 작전을 뛸 정도로 한국군은 가난했습니다.  

한국은 당시 소총 한 자루도 독자 기술로 못 만드는 나라였습니다. 아니, 통조림 기술도 없어서 미국에서 "돈 줄 테니 너희들 좋아하는 로컬 푸드 포장해다가 먹어라"라고 했을 때, 김치 통조림을 일본에서 만들어서 보급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노력 끝에 만든 통조림이건만, 독한 산성의 김치와 그 국물에 통조림 안쪽이 부식돼 불량품, 즉 '핏물 김치'가 돼 월남땅에 도착했을 때, 내부적으로는 자체 생산 포기로 가닥을 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파병군단 병사들이 통조림 생산 물량과 납품 배추 물량, 그 이윤이 일본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우겨서 결국 생산을 지속했습니다. 

미국의 당시 첨단 연사 무기인 M-16을 대여해서 쓰고, 그게 너무 부러워서 자꾸 몇 자루씩 분실을 한다는 거짓말을 한 나라의 해외파견 사령부 체면에 다른 나라 사령부에 할 정도였는데요. 

그러나 그런 독재 정권이 끝날 때, 한국군은 연구개발 끝에 미사일을 만들어 낼 능력을 갖추고 암암리에 핵 개발을 시도하는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었지요(남한 정치인들이 북한을 상대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며 당시 미국에서 묶은 그 미사일 도달거리 개발 제약이 이번에 풀린, 바로 그 제한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남의 나라 정글에 군대를 떠밀리듯 보내야 했던 한국은, 이제 일개 기업이 백악관에서 열리는 '세계 반도체 전쟁'의 중요한 파트너로 불려갈 정도의 경제적인 그리고 기술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도 그러한 힘겨루기 구도에서 여차하면 전쟁 파트너로 삼고 싶을 정도의 능력자로 성장했지요.

괜히 미사일 거리 개발 제한을 풀어주고, 우리 군인들에게 그 귀한 백신을 선물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에 나가 있는 미군과 접촉을 하니까? 글쎄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압박만 느끼는 장기판 말이 아닙니다. 물론, 그 저울질 와중에 미국이 아닌 중국의 손을 잡는다면 그때엔 반대급부로 우리가 포기할 이익, 치를 값이 만만찮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선택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선택의 키를 쥐고 있는 지금, 뭔가 더 내놓으라고 압력을 반대로 중국 혹은 미국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미군 2개 사단을 다른 나라로 빼겠다는 소리에 망하라는 소리냐며 벌벌 떨던 나라에서 괄목상대한 덕에 얻어낸 결과물입니다.

어려운 선택 압력을 받는다고 탄식할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세계 최강의 반도체 기술력을 못 갖고 가발 수출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야 한다는 소리는 아닐 것이라 믿습니다. 위로 올라간, 손에 많은 걸 쥔 덕에 얻은 어려움인 것입니다. 왕관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식의 과제인 것입니다. 삼성을 그리고 그 외 많은 자랑스러운 결과물들을 새로 장만한 나라의 행복한 고민인 것이지요.

미국 국방부 청사에 걸려 있는 베트콩과 미군의 교전 장면. 한진이라고 적힌 한국 트럭 수송팀을 보호하는 것을 그린 기록화다. ⓒ 미국 국방부

언젠가, 그리고 예상 외로 가까운 시기에 미국은 오늘 정상회담 직후 문재인 정부 손에 들려놓은 이 선물들의 비싼 청구서를 발송할 것이고, 분명 돈으로 치를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건 핏값 청구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마음은 무겁지만, 일단은, 적어도 오늘 하루만큼은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남의 나라 무더위 속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우리 군인들, 그 와중에 보급품을 실어나른 한진 직원들과 무장트럭의 피땀이 이제, 2021년 반도체 전쟁 와중에 하늘 높은지 모르는 삼성전자의 몸값으로 돌아왔으니까요. 

그 와중에 동참하고 거든 모든 한국인들은 당시 한진과 오늘의 삼성 차이, 그런 엄청난 차이의 어지러움을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많은 나라 중에 우리만 이룩한 '초격차의 잔치'를 아주 짧은 시간, 오늘 하루만큼은 즐겨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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