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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공명 박영선, '사과 사퇴' 고려해 볼 때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4.03 15:20:07

[프라임경제] 어려운 보궐선거를 떠안고 나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2일 언론에 '박원순 피해자'에게 "원하는 방식으로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박 후보는 "'피해여성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리고 용서받고 싶다'는 제 입장, 변함없다"고 전제하고 "다만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은 피해자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피해자가 원하시는 방식으로 꼭 사과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반성하고 성찰하는 마음으로 피해자의 일상을 회복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약속했죠.

일견 대단히 통이 커 보이고 전폭적인 사과를 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박 후보의 이런 언급에, 저는 '제갈공명 같았던' 박 후보가 뭔가 조금씩 겁이 늘고 비겁해지는 게 아닌지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2007년 연말 대선 당시 MB의 BBK 의혹을 정면에서 공격한 '투사'로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싸움을 할 줄 아는 면모도 있지만 '지략가'에 오히려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당시 BBK 공세는 '정봉주-박영선 투톱'으로 진행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후 '정봉주 구속 사태'를 생각해 보면 박 후보의 경우는 거칠면서도 상당히 영리하게 MB 측 신경을 자극하는 정도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같이 전쟁터에 나섰는데 장비는 적진의 지하실에 잡혀가는 굴욕을 샀을 망정, 제갈공명은 칩거로 끝났다고 할까요?

물론 영어의 몸이 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눈엣가시가 되어 가족들이 흩어지는 상황이 됐고 그래서 박 후보의 남편이 거주할 목적으로 이때 도쿄에 아파트를 샀다고도 하죠(그래서 지금 '도쿄 박'이라고 그의 부동산 문제를 공격하는 국민의힘 지지자들의 태도를 보면 약간 지나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박 후보는 MBC 기자와 경제부장, 정계 입문 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까지 역임하는 등 때로 고생도 했지만 나름대로 화려한 길을 걸어 왔습니다. 

장관에 이어 서울시장 물망에 오르내리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여성 몫을 챙겨주는 걸 주워 먹기만 해서는 결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죠. 

그런 그이기에 이번에 도저히 곤란한 보선 그림을 "쉽지 않은 선거에서 해 볼 만한 선거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꿔 놓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박원순 피해자'에 대해서만은 박합니다. 그 피해자를 순식간에 바보로 만들어 놓은 이른 바 '피해호소인 3인방'을 보선 참모로 쓰다 문제가 되니 슬그머니 인력 구조 개편을 해 버렸고, 이제 아무래도 사과를 해야 하는 코너에 몰리니 뒤늦게 "원하는 방식대로"라고 합니다.

그건 앞에 했다면 멋진 말이었을까, 이미 LH 사태로 엉망이 된 게 너무도 명확한 터에 막판 그림으로 던지기엔 부족하다고 생각됩니다. 이때에는 "피해자께서 후보 사퇴를 하고 민주당은 보선에 후보 내지 말라고 하시면 그렇게라도 하겠다"라고 공을 넘겼어야 한다면 지나칠까요?

다른 사퇴 관련 이야기를 더 해 보겠습니다.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맹비난하면서 "사퇴하라"고 몰아붙이고, 그렇지 않으면 "중대결심을 하겠다"고 박 후보는 얘기했습니다. 그게 저 피해자에게 원하는 사과 운운한 같은 2일의 일입니다.

남에게 사퇴하라고 하고, 각종 지표에서 워낙 밀리는 상황에 남의 허물을 들어 '더러워서 같이 못 놀겠으니 그냥 사퇴하련다'라는 빠져나갈 길목을 만드는 듯한 상황. 그런 사퇴 남발의 상황에 정작 중요한 사과 문제에는 자기 사퇴를 못 연결짓고 있지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 연합뉴스

선거공학적으로만 보더라도, 그렇게 모든 걸 일임하고 피해자 앞에 목을 늘어뜨리고 기다린 상황에 "사퇴라니, 그렇게까지는…"라고 답을 받아야 더 드라마틱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제갈공명 이야기로 돌아가 2개 스토리를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 제갈공명은 '읍참마속'의 리더십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작전을 망쳐 큰 피해를 입힌 부하를 울면서 참수했다는 이야기죠. 하지만 냉정한 판단력, 아끼는 사람을 울면서라도 베어서 전체의 기강을 세우는 결단력만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읍참마속 후 그는 황제에게 진언해 자기 계급을 두 칸 강등 조치합니다. 부하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점에서 자기 책임도 부각시킨 것입니다. 

두번째, 제갈공명이라도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동남풍을 부른 공명' 혹은 '적벽 화공'으로 알려진 작전에서 그는 오나라와 손을 잡고 조조를 치지만, 막판에 오나라 사람들에게 죽을 처지에 몰리기도 합니다.

너무 똑똑해서 나중에는 결국 오나라에게도 해가 될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지요. 그것조차도 내다 보고 탈출로를 만들어 둡니다만, 중요한 건 그렇게 위험하게 자기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지경에 겉으로만 아군인 다른 나라 진영 한가운데서 태연히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작전을 짜 지략을 과시했다는 점이 더 돋보이는 것이지요.

제갈공명처럼 살아 온 그이기에 그래서 이번 피해자 원하는 방식 운운은 비겁해 보입니다. 부동산 비리 문제로 여당에 온갖 욕이 쏟아지는 선거이지만, 중소기업 근무자들을 위한 부동산 정책 공약을 내놔 지략과 덕망을 과시하고 감동을 준 박 후보 아닙니까? 

위험한 한복판에 들어가 보기를 바랍니다. '오세훈 때문에 중대 결심'식의 의뭉스러운 사퇴 밑밥깔기 말고, '박원순 피해자를 위한 사과 사퇴를 불사'하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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