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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전태일 50주기…노동환경 고충은 10년 지나도 여전

"전태일 3법 입법 촉구" 국민청원 10만명 돌파

김수현 기자 | may@newsprime.co.kr | 2020.10.30 07:04:03

[프라임경제] "건설노동자들이 특수고용노동자라고 산업재해를 못 받는 것이 공정한 사회인가? 부자들 세금은 깎아 주면서 최저임금 고작 210원 올리는 게 공정한 사회인가? G20 정상회담한다고 이주노동자 단속하고 추방하는 게 공정한 사회인가? 40년 전 전태일이 외친 근로기준법 하나 지키지 못하는데 무슨 공정사회인가!"

2010년 10월 3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앞두고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와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2010년 10월30일,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울광장 한가운데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행사의 이름은 '소외된 노동과 함께하는 전태일 40주기 기념문화제'. 

이 자리엔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동계의 협력을 요청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오찬 회동을 거절했던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의 외침을 필두로 5000여 명(경찰추산 2000여 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등 유력 인사들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서울시의회가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변경한 '광장조례'가 발효된 이후 처음 열리는 민간 행사.

당초 서울시는 이미 '포천농특산품대축전'이 광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로 행사를 막았지만, 양쪽 행사 모두 별다른 마찰 없이 원활하게 진행됐습니다.

'전태일 40주기 행사위원회'와 민주노총 소속 참가자 7000여명은 비정규직을 활용한 간접고용 형태가 노동환경 불안정을 심화하고 있다며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습니다.

1988년 11월14일 전국노동법 개정투쟁본부 산하노조 노동자 및 대학생 2만여명이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및 전국노동자대회를 갖고 국회의사당앞까지 평화대행진을 한 후 국회의사당앞에서 노동악법철폐등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이번엔 50년 전 서울 한복판입니다. 한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습니다. 이름은 전태일. 청계천 평화시장 피복점에 이른바 시다라고 불리는 재단보조로 취직하게 된 그는 이후 재단사로 일하던 중 재단보조 여공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정면으로 맞닥뜨렸습니다.

1.6m 높이밖에 안 되는 2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열다섯 명의 여공들은 하루 최대 16시간씩 일했습니다. 쉬는 날은 한 달에 두 번. 환기도 되지 않는 곳에서 종일 옷감의 먼지를 들이마셨습니다. 그 당시가 그랬습니다. 노동자 대부분은 노동청의 건강진단을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검진을 나와도 겉치레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독학에 나섰지만, 기준법 전문이 국한문혼용인지라 도통 내용을 알 수 없었습니다. 

'광식이 아저씨'라고 부르는 나이 든 대학생을 자주 찾아가 용어의 뜻을 묻기도 했습니다. 어떤 날은 해설서 한 페이지를 읽는데 하루를 꼬박 새운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읽어낸 근로기준법상의 내용과 현실의 괴리를 절감한 그는 1969년 6월 평화시장 최초의 노동운동 조직인 '바보회'를 창립해 현재 근로 조건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노력합니다. 

그러나 막장 현실 속에서 봉제 공장주들에게 밉보인 전태일은 직장에서 해고된 후 더는 평화시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되어 한동안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지냅니다.

1970년 재단사로 취직돼 다시 평화시장으로 돌아온 그는 이전 바보회 활동을 같이하던 친구들을 규합하여 '삼동친목회'를 조직, 한층 적극적인 활동을 펼칩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너무도 형식적이었습니다. 감독관청도 전혀 이를 지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전태일은 깊은 좌절과 비애를 느꼈습니다. 1970년 11월13일, 평화시장 남쪽에 자리한 동화시장 계단에서 온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자신이 직접 자기 몸에 불을 붙여 이 사회에서 형식에 불과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갖고 자신도 그 불에 함께 타들어 가 생을 마감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 둘이었습니다.

지난 7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 동상 앞에서 열린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OB맥주경인직매장 물류를 담당하는 OB맥주직매장분회 조합원들이 고용 승계를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태일의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외침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합니다.

지난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8월 근로 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6~8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급 격차는 152만 3000원이었습니다. 정규직 평균임금 323만4000원, 비정규직 평균임금 171만 1000원으로 비정규직이 받는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52.9%)입니다. 

급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직장 갑질 119가 올해 9월에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실직을 경험한 비정규직 비율은 31%로 정규직(4.3%)의 7.3배입니다. 휴직을 경험했지만,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휴업수당을 받지 못한 비정규직은 73.6%였습니다. 실직을 경험한 비정규직의 85.6%는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 '전태일 3법'이 국회 온라인 국민동의청원을 통과했습니다.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개정 △중대 재해기업 처벌법 제정이 그 내용입니다. 3개 법 모두 국민청원에서 10만 동의를 넘겨 해당 상임위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5인 미만 사업장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도 지켜지지 않는 일터에서 기계처럼 일하고 있습니다. 해고를 당해도 부당해고를 다룰 수 없고,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신고조차 할 수 없으며, 코로나19로 인해 무급휴직을 당해도 휴업수당조차 받지 못합니다. 

벌써 반세기를 건너왔습니다. 좋아진 것도 있지만, 전태일이 꿈꾸던 세상은 아직 먼 이야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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