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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남발되는 부동산정책 '조변석개'…무너지는 '령(令)'

앞에선 '그린뉴딜' 선포, 뒤에선 '그린벨트해제' 오락가락

장귀용 기자 | cgy2@newsprime.co.kr | 2020.07.16 15:40:39
[프라임경제] 거듭된 부동산정책 덧대기에도 불구하고 기대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가운데, 오락가락하는 정부의 태도가 '정책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4일 청와대 국민보고대회에서 '그린뉴딜'을 소개하며 도시·공간·인프라를 녹색전환 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을 소개했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녹지를 늘리면서 신재생에너지를 육성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랬던 홍 부총리는 그날 밤 갑자기 TV에 등장해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을 남겼다. 재건축을 완화해줄 수 없으니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에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취지다.

이미 건물이 들어선 도심지에는 낡은 건물을 그대로 두도록 강제하고, 멀쩡한 녹지에 시멘트를 붓겠다는 이야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4일 청와대 국민보고대회에서 그린뉴딜을 소개하는 모습. ⓒ KTV 유뷰트 생중계 캡쳐



재건축·재개발이 진행돼 이득을 본다는 사람이라고 해봤자 한 구역에 많아도 기천명을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이라는 둔촌주공재건축 조합이 조합원 6123명이다. 이들이 30년 이상을 낡은 집에 거주하고 난 뒤 기대하는 이익이 불평등하다는 시각아래 절차마다 발목이 잡힌다.

몇몇 사람들이 큰 이득을 본다고 해도, 결국 기존주택을 새로 지어 공급물량을 늘리면 그 혜택을 받는 사람이 늘어난다.

하지만 한 번 녹지공간을 개발해 되돌릴 수 없게 된다면, 그 녹지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던 수많은 후속세대들의 기회를 뺏는 것이다.

앞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그린뉴딜을 펼치겠다면서, 녹지를 파괴하는 그린벨트해제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에서 '일관성 없음'이 느껴진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정부 부처 간에도 소통과 정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발언들이 흘러나오는 상황이 반복된다. 홍 부총리의 그린벨트해제 가능성 발언 이후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은 다음날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홍 부총리의 발언을 부정했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이 홍남기 부총리의 그린벨트 해제 가능성 발언을 부정한 뒤 나온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 공동 입장 보도자료. ⓒ 국토교통부


박 차관은 "(그린벨트 해제는) 정부 차원에서 아직 검토하지 않았고, 서울시와도 협의가 시작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후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는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 그린벨트 등에 관해서 논의한 바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런데 기재부와 국토부, 서울·경기·인천이 참여하는 '주택 공급을 위한 실무기획단' 회의에 참석하고 나온 박 차관은 또 입장이 바뀌었다. "그린벨트의 활용 가능성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세간에서는 이번 정부 들어서만 22번이나 부동산대책을 낸데다, 이마저도 대책 이후 땜질식으로 보완책을 내놓는 등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한 불신이 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부처 최고위관계자들의 엇박자 발언과 너무 쉬운 입장 변화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 쉽다.

그간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두고 '두더지잡기식 정책'이라거나 '검토 없는 마구잡이 하향식 정책'이라는 세간의 입방아가 줄을 이어 오고 있다. 이제는 여기에 "아침에 령을 내리고 저녁에 바꾼다"는 '조변석개(朝變夕改)'까지 더해지는 판국이다.

중국 천하를 처음으로 통일한 '진(秦)'에서 법가의 기초를 닦았다고 평가되는 공손앙(일명 상앙)의 일화가 있다.

당시 진나라는 자주 법과 명령이 바뀌고 상벌도 일정하지 못해, 법에 대한 불신이 깊었다. 공손앙은 수도 남문에 나무를 심고 나무를 옮기는 자에게 금 10근을 수여하겠다는 령(令)을 붙였다.

그러나 지나가는 이들 모두 령의 내막을 의심해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없었다. 이후 포상금이 50근으로 올라갔지만 마찬가지였다. 

이후 타지에서 온 사람이 의심 속에서도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나무를 옮기자 공손앙이 그 즉시 그를 포상했다. 이후 진나라에서는 법령이 세워지면 백성 모두 충실이 따랐다고 한다.

령이 무너져서는 어떤 법도 소용이 없다. 자주 법을 만들고 바꾸거나, 당국자들의 입장이 밤낮으로 바뀌는 모습에 령이 제대로 설 수 없다. 정부 스스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데 일관적인지, 제대로 된 방향성을 설정했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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