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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오늘] 품위 있는 죽음 '존엄사' 넘어 '적극적 안락사'까지

연명치료 중단 사회적 합의…연명치료 중단 결정 임종기 환자 8만500여명

추민선 기자 | cms@newsprime.co.kr | 2020.07.14 07:25:08
[프라임경제] 10년 전 오늘 2010년 7월14일은 임종 직전의 식물인간을 포함한 말기환자에 대한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도록 하는 연명치료 중단의 구체적인 범위와 내용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단순 생명 연장을 위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는 '존엄사'(웰다잉)가 가능해진 것인데요. 10년이 지난 현재,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임종기 환가는 8만여명에 달하고 있죠. 또, 이러한 존엄사에 더해 죽음을 앞당기는 '적극적 안락사'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2010년 7월14일 보건복지부는 연명치료 중단의 제도화에 필요한 쟁점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2009년 12월부터 종교계와 의료계, 법조계, 시민단체, 국회 등에서 18명의 인사로 구성해 운영해온 사회적 협의체 활동을 종료하고 주요 협의사항을 발표했습니다. 

사회적 협의체의 합의안은 지속적 식물상태로 있다 임종 직전의 환자를 포함한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 등 특수연명 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다만 말기환자에 대한 수분이나 영양공급, 진통 등 일반적인 연명치료는 중단될 수 없도록 했습니다. 

합의안은 말기환자가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민법상 성인이 작성 전 담당 의사와 상담 후 2주 이상의 숙려기간을 거쳐 작성할 수 있도록 했죠. 

당시 사회적 협의체에 위원으로 참여한 고윤석 한국의료윤리학회 회장은 "우리의 사회문화 구조에서 연명치료 중단 판단에 있어 가족 간 협의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인한 환자나 가족의 피해도 감안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폐암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식물인간이 됐다. 자녀들은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의 중단을 요구해 재판 끝에 2009년 5월21일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이는 국내에서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례이다. © 연합뉴스


반면 이상원 총신대 교수는 "환자 자신의 명확한 의사표시가 없는 한 누구도 환자의 진정한 의사를 추정할 수 없을 것"이라며 "연명치료 중단 후 201일 만에 숨진 김 할머니 사례에서 보듯 환자 상태에 대한 의료진의 판단도 불확실성이 많고 환자 본인의 의사보다도 남은 가족들의 입장이 반영될 소지가 더 크다"고 추정에 의한 의사표시 인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전했는데요.

김 할머니 사건은 2008년 2월 폐암 여부를 확진 받기 위해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김 할머니가 18일 조직검사를 받다가 과다출혈로 인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사건입니다. 가족들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병원에 요청했으나 병원은 의사에게 살인죄를 물은 보라매병원 사건을 예로 들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가족들은 연명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소송을 냈는데요. 법원은 "인공호흡기 도움 없이 생존 가능성이 없고, 연명치료도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며 "연명치료를 중단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 판결은 2009년 5월21일 대법원에서 확정됐죠. 

병원 의료진은 2009년 6월23일 오전 10시 22분경 인공호흡기를 제거했지만 김 할머니는 의식불명 상태에서도 자발호흡으로 연명하다 2010년 1월10일 201일 만에 사망했습니다.

당시 법원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는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상규에 부합하고 헌법 정신에도 어긋나지 않다고 판단했는데요. 결과적으로 존엄사를 인정한 첫 판례로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9년 대법원이 존엄사를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진은 박창일 전 연세대 의료원장이 병원의 존엄사 기준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후 존엄사법은 2016년 1월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말기 환자 퇴원을 허용한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논란 이후 19년 만이죠. 당시에도 중단 가능한 연명 의료는 심폐소생술과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네 가지로 한정됐는데요. 통증 완화 의료나 영양분 공급, 단순 산소 공급 등은 중단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또 연명 의료를 중단하려면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야 하고,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스스로 밝히거나 이런 의사를 문서로 남겨야 하죠. 문서가 없으면 가족 두 명이 평소 환자의 뜻이라고 진술해야 하는데 본인 의사를 추정할 수 없는 경우 가족 전원이 합의해야 의료가 중단됩니다. 

이러한 존엄사법은 2016년 국회를 통과한 후 유예기간을 거친 뒤 2018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해외의 경우 네덜란드에서 최초로 허용된 이후 유럽의 일부 국가와 남미의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미국의 몇 개의 주가 존엄사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존엄사 시행 2년 만에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한 임종기 환자는 8만500여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치료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을 때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정한 사람도 누적으로 57만명에 이르고 있죠. 

성별로는 남성 5만1016명(60.0%), 여성 3만4060명(40.0%)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1.5배 많았는데요. 연령별로는 60세 이상이 6만8058명으로 80.0%를 차지했습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를 연도별로 보면 2019년 43만2138명으로, 2018년 10만529명보다 약 330% 급증했고, 담당 의사와 함께 이른바 '연명의료계획서'(말기 환자 등의 의사에 따라 담당 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사항을 계획해 문서로 작성한 것)를 쓴 환자는 3만7321명이었습니다. 

이 같은 증가 추세에는 본인의 결정으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면서 삶을 마무리하는 인식과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는 분석인데요. 한발 더 나아가 일각에서는 '적극적인 안락사'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사단법인 착한법만드는사람들(착한법)은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존엄사 입법촉구'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직접적·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존엄사 입법안을 제안했습니다. 

김재련 착한법 이사는 발표문을 통해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소극적·간접적 안락사만 인정하고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직접적·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새로운 존엄사법(연명의료결정법) 도입을 촉구했습니다. 연명치료를 위한 약물 투입의 중단뿐 아니라 의사의 도움으로 약물을 주입해 죽음을 앞당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죠. 

그러나 단순히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죽음을 앞당기는 것과 적극적이고 인위적으로 죽음을 맞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시각도 있는데요. 

안락사(조력자살)를 결심한 호주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104세) 박사. 안락사를 위해 스위스를 찾았던 구달 박사는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의 마지막 부분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눈을 감은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안락사의 경우에는 신체적 고통은 없지만 전신마비로 식사나 보행, 대소변 등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 또 상당한 중증 치매환자 같은 경우 품위 있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으로 사망에 이르는 결과가 되지는 않기 때문에 안락사를 도입해야 하느냐 하는 부분에 적극적 존엄사, 안락사와는 차이를 가지고 있죠. 

해외의 경우 캘리포니아에서는 '엔드 오프 라이트 액트(End of life Act)라고 해서 일정한 요건을 갖췄을 때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에도 당사자의 명시적인 동의를 전제로 안락사를 허용한다고 하고 있으며 네덜란드의 경우 '조력 자살'이라고 의사들의 도움을 받는 안락사 집행을 허용하고 있죠. 

각국의 예에서 광의의 안락사를 인정하기는 하지만 보편적인 적극적 안락사와 존엄사에 대한 정의는 내려지지 않고 있는 것이죠. 

과거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 이후 이제는 '적극적인 안락사'로 죽음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나의 삶과 죽음은 나의 선택"이라는 생각은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지만 '안락사'에 대한 정의에는 깊은 고찰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합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품위 있는 죽음' '인간다운 생의 끝'이라는 존엄사의 의미가 퇴색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의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10년 후 우리 사회는 '적극적인 안락사'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내리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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