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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준불연·난연 '말장난'…업계입김에 놀아난 화재대책

'중소기업 생존' 주장하는 업계…생명경시 풍토 언제까지?

장귀용 기자 | cgy2@newsprime.co.kr | 2020.06.22 14:31:50
[프라임경제] 정부가 지난 18일 발표한 '건설현장 화재안전 대책'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국무조정실 △법무부 △소방청 등 관계기관이 총 동원돼 합동으로 마련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결국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우려가 현실화 됐다. 결국 이번에도 마감재와 단열재를 '불에 타지 않는' 불연재로 하도록 강제하는 법은 만들어지지 못했다.

정부는 대책 발표 전 전문가와 업계관계자 의견청취를 실행했었는데 이미 관련 전문가들과 업계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규제 강도가 '준불연'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말이 돌았었다.

유기단열업계, 특히 스티로폼이나 우레탄폼 같은 발포플라스틱업계가 최근 소재 개선으로 '준불연' 등급을 취득했고 이 때문에 '준불연' 수준까지는 양보할 것이라는 것이 근거였다. 실제 발표된 정부대책의 내용은 이러한 소문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유기단열업계가 '준불연'인증을 받지 못한 2018년 1월 밀양 세종병원 화재 당시에도 난연성능에 관한 개선안이 나왔지만, 국토교통부에서 결국 관련 문구를 삭제하고 현행규정을 유지시켰던 전례가 있다.

이를 돌이켜 보면 업계입김에 정부의 안전문제에 관한 판단과 대책이 흔들렸다는 소리다.

이번에 발표된 '준불연'이라는 문구도 사실 따지고 보면 말장난에 불과하다. 불에 타지 않는 자재를 테스트하는 '불연성 시험'과 불에 타는 정도를 시험해 준불연·난연 등급을 매기는 '연소성성능시험'은 시험의 목적과 방법 자체가 다르다. 동일하게 적용되는 '내장재료 및 구조의 난연성 시험방법'이 겨우 연결고리일 뿐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불연성 시험은 돌멩이에 열을 가해서 20분 이후에도 절대온도 20K(켈빈 온도)를 넘지 않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다. 다시 말해 정말 안 타는 물질인지 시험하는 것이다.

하지만 연소성성능시험은 나무나 판자를 가져다 놓고 열을 가해서 10분(준불연)이나 5분(난연) 동안 불에 타 부서지거나 구멍이 뚫리거나 소멸되는지를 보는 시험이다. 타는 것을 얼마나 지연하느냐를 보는 것이다.

마감재와 단열재는 그간 법률로 불연재 사용을 강제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재 개발이나 연구에 소홀한 측면이 많다. 미국 등지에서 주로 사용되는 그라스울도 최근 국내 업체에서 개발을 해 보급하고 있지만 유리가루 등이 날린다는 단점이 지적된다.

정부에서는 이번 대책의 말미에 그라스울과 같은 불에 타지 않는 '무기질' 심재를 사용하도록 단계적 전환하겠다면서 최초 시행을 2년 뒤인 2022년으로 명기했다.

그간 화재로 사망한 사람은 국내사례만 살펴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정부는 또다시 유예기간을 두고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정부의 대책을 신뢰해야겠지만 2018년의 사례가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말미에 붙인 이러한 대책에도 스티로폼업계는 정부의 규제가 유례가 없는 것이며 중소기업을 죽이는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소기업=약자'라는 프레임과 '준불연·난연 성능 확보'라는 자구노력을 내세워 스티로폼 단열재에 부여되고 있는 화재사고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이다.

공장 창고 뿐 아니라 대부분 수도권 거주 청년들의 주거지인 원룸·오피스텔도 스티로폼과 우레탄 폼이 단열재로 쓰이고 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안타까운 청춘들이 목숨을 잃는 일들은 '업계'라는 사람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故 안치범 군이 서교동 원룸 빌라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이웃을 대피시키고 빠져나오지도 못할 정도로 화재위험에 노출된 집에 언제까지 우리 이웃과 자식들을 살도록 할 것인가?

안전과 손익은 '공학윤리'의 오래되고 깊은 화두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자손들이 걱정 없이 살아가도록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둘 중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정부의 반성과 후속 대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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