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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이낙연안' '서병수안' 개헌안 쇼핑 필요하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0.06.02 10:12:29

[프라임경제] 헌정사를 배우다 보면 건국 초기 '유진오안'이니 '권승렬안'이니 하는 개헌 논의를 접합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일찍이 선진 시스템을 마련한 나라가 아닌 후발 국가에서는 헌법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학자나 정치인이 개헌안을 일필휘지해 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엔 당시 국왕이 마련해 "이런 건 어떻겠나?" 하는 '흠정 헌법'이라는 케이스까지도 존재합니다.

그러니까 유진오나 권승렬 이 분들은 그 당시 한국이 정치나 법률 분야에서 가장 믿고 중대사를 맡겨볼 만한 스타플레이어들이었던 것이고, 그 흔적이 나중에 대학생들이 배우는 책에도 나오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영예지요.

다만 오늘날의 사람들로서는, 아무리 걸출한 학자나 선견지명이 있는 이라도 한두 사람에 의해 주도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합심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걸 또 여론을 수렴해 수정하는 식으로 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당연히 들게 마련인데요. 그래서 대체로 배울 때 그런 신기한 개념이 있었다는 정도의 기억만 남게 되지요.

그런데 요새 이 유진오안이니 권승렬안이니 하는 단어들을 다시금 곱씹어 보게 됩니다.

이번 총선에 '180석 슈퍼여당'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개헌 말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석이지요. 이를 놓고 친여권에서는 정책적 자신감과 아이디어가 백출하는 양상입니다. 우선 일각의 움직임이지만, 기본소득 등 다양한 경제 및 사회복지적 개념들을 거론하는 기류도 일고 있어 신선하고요. 경제 시스템을 한층 더 분배 구도로 옮기는 각종 법안들이 제출될 것이라는 조짐이 감지된다는 기자들의 이야기도 나옵니다.

정치나 사회 그리고 통일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 기업이 한국 내 사업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을 가능케 하자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 최근 알려졌습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하기 위한 세부 법률 보완에 대한 요구도 높습니다. 여권에서는 상임위워장직을 모두 자기들이 가져와 정책에 힘을 싣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한명숙 전 총리 재심 주장' 등 사법 질서를 흔드는 거냐는 우려를 사는 대담한 주장들마저 나옵니다. 좀 거북한 이야기지만 '윤미향 사퇴 거부'도 결국엔 슈퍼 여당의 힘, '바뀐 세상'을 입증하는 증거 아니냐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해 봅니다. 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안해 본다고 해야 맞겠군요. 사회와 경제의 근간을 전체적으로 파천황하는 것은 180석 슈퍼 여당 자격(법률안을 다수 밀어붙이는 힘)만으로는 안 되고 개헌을 시도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이지요.

아까도 언급했듯 사회적 공감대를 다양한 정치 세력과 학술적 논의 등으로 다듬고, 여론을 마지막 단계에서까지 반영해 개헌안이 숙성돼 나오는 게 가장 적합하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20대 국회 말미에 개헌안 해프닝이 일어났다 폭삭 사그라든 걸 생각해 보면, 과연 시민단체에서 개입한다 한들 만점짜리겠는가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됩니다. 

대국민적 공감대는 커녕 대부분 처음 듣는다는 식으로 필요한 수의 의원들의 도장만 찍어서 접수되는 경우마저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것이지요. 물론 이 안은 일정수 이상 국민들의 개헌안 발의를 가능케 하자는 원포인트 아이디어였으니 그렇게 추진해도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는 해야겠습니다.

정권 후반기가 되면 여권 내에서도 이른바 '잠룡'에 대한 거론이 부각되게 마련입니다. 야권에서도 '이번 대선에서만큼은'이라는 생각으로 반격의 주력을 맡을 공격수들이 자천타천 부각되기도 하지요.

그런 분들에게 국민들이 숙제를 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현재 우리나라는 극심한 아이디어 전쟁 중임은 위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우리가 통일 정책을 저렇게 강력하게 밀어붙이면 (주변 국가들은 모두 북한을 고사시키겠다고 하는 와중에) 우리의 글로벌 입지는 어떻게 될 건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경제 펀더멘탈이 그렇게 탄탄한 편도 아닌데 예를 들어 전국민 기본소득 같은 걸 추진할 수 있는 건지 또 그렇게 해도 다수 국민이 정말로 찬성하는 건지 한 번 국민투표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죄형법정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말이 쏟아지는 상황에 여당이든 야당이든 앞으로 헌정과 법치를 어떻게 수호할 건지 떳떳하게 논쟁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문재인 대통령과 정치 거물들이 한 차담회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문 대통령 좌우로 각각 잠룡으로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낙연 민주당 의원이 보인다. 가장 왼쪽에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 함께 찍힌 것으로 보아 시간이 좀 지난 사진임을 알 수 있다. ⓒ 연합뉴스

많은 이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번 코로나19 정국에서 과단성 있는 조치로 인지도가 상승했습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지사와 총리를 지낸 경륜으로 여권의 황태자로 질주 중이지요.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이 3선의 초절정 신기록에 빛나는 행정과 정치의 기린아이자 아이디어의 은행임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부겸·김영춘 등 '전 장관' 주자들도 중앙부처 경험은 물론 '지역 구도'를 깨기 위해 노력하며 근육을 길러 왔죠.

반대 진영에서도 '반값 아파트' 등 톡톡 튀는 생각이 워낙 풍부한 홍준표 무소속 의원부터 이번 총선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한 서병수 미래통합당 의원, 연구원이자 학자로 이름났던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 의원 등이 정국을 주시하면서 나름대로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에서는 지난 번 무산된 원포인트 개헌 시도에 자극받아 기왕 할 거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개헌 버스 시동'이나 '연구 착수'에 나섰음을 시사하기도 합니다. 

유력 인물들이 자신있게 이름 석자를 내건 'ㅇㅇㅇ안' 혹은 '***안'들을 여럿 내놓고 국민들이 헌법 쇼핑 즉 치열한 토론과 고르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불필요한 논란과 과도한 열정을 정리해 유의미한 에너지로 바꾸는 게 식견있는 거물 정치인들의 과제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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